주간동아 520

2006.01.24

캐릭터로의 완벽 잠입 관객을 인질로 잡다

  • 입력2006-01-23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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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로의 완벽 잠입 관객을 인질로 잡다
    그는 직장인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정확하게 퇴근하지 않을 뿐이지, 배우 이성재는 가장 모범적이며 성실한 영화 직장인이다. 캐스팅이 되면 그때부터 자신이 맡은 배역을 연구하고, 캐릭터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 성실하고 안정된 직장인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배우의 신비감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촬영 끝나고 피곤할 때 통닭에 생맥주 한잔 하면 시원하고 기분이 좋죠.”

    그가 영화 촬영장에 나타나는 것은 직장에 출근하는 것이다. 스캔들도 없다. 가정에 충실하고 동료 배우들 간에 불화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1970년 서울 출생인 이성재는 2남2녀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가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MBC 공채 탤런트가 된 것이 95년이다. 그는 탤런트가 된 다음 해인 96년 2월 결혼했다. 안정된 직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성실한 영화 직장인, 제2 안성기



    이성재가 대중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열혈 마니아를 만들어냈던 노희경 작가의 TV 드라마 ‘거짓말’(1998년)부터였다. 그전에도 ‘산’이나 ‘예스터데이’ 같은 드라마를 했지만 ‘거짓말’의 준희 역으로 그는 한 사람의 연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스크린 진출의 계기가 된 ‘미술관 옆 동물원’(1998년)의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연기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 심은하와 공연한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이성재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이사 간 줄 모르고 심은하의 방으로 무단 침입해 들어간 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을 하게 되는 철수 역을 놀랍도록 힘 있게 표현했다.

    이성재라는 새로운 배우가 등장한 1998년은 한국영화가 비약적인 발돋움을 하던 시기였다. 이듬해 ‘쉬리’가 터지면서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은 껑충 뛰어올랐고, 그해 이성재는 두 번째 영화 ‘주유소 습격작전’을 찍었다. 심야의 주유소를 아무 이유 없이 습격한 불한당들의 리더인 노마크 역으로 이성재는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는 성격적 결함이 있는 캐릭터인 유지태나 유오성 등이 더 인기를 모았지만 전직 야구선수인 노마크는, 도대체 왜 저런 청춘들이 주유소를 털어야 하는지 설명되지 않아서 ‘묻지마 영화’라 불리기도 했던 ‘주유소 습격작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영화는 중심을 잃고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자귀모’ ‘플란다스의 개’ ‘하루’ 같은 작품이 이어졌지만 이성재가 출연한 영화는 크게 나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의 연기가 돋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지나치게 모범생이었다. 관객들은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가 그리워졌다. 그때 그에게서는 낯익은 방법론 안에서도 창의력과 상상력이 느껴졌다. 그 당시 나는 심혜진이 진행하던 ‘파워 인터뷰’의 패널로 출연하면서 이성재를 분장실에서부터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돌발적인 질문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했다. 조금도 자신의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성재가 나온 파워 인터뷰는 재미없었다. 의외성이 없고 활기나 새로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캐릭터로의 완벽 잠입 관객을 인질로 잡다
    그래서 이성재가 ‘신라의 달밤’(2001년)에서 차승원과 코미디를 찍은 것은 의외였다. 고교 동창인 차승원과 이성재가 훗날 교사와 조폭으로 만나는 이야기인데, 캐스팅은 허를 찌르며 이루어졌다. 학창시절 조폭 같았던 차승원은 고교 교사로, 모범생이었던 이성재는 조폭으로 등장한다.

    이성재의 변신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다음 작품은 ‘공공의 적’(2002년)이었다. 이성재는 부모를 살해하는 냉혹하고 비정한 패륜아 역을 차가운 이성으로 표현해냈다. ‘바람의 전설’(2003년)에서는 춤판의 전설적인 고수 박풍식 역을 맡아 3개월 동안 학원을 다니며 춤을 배웠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왈츠, 자이브, 파소도블레 등 라틴 댄스는 대역 없이 이성재가 직접 연기한 것이다. 물론 이성재는 뻣뻣하다. 이성재가 아닌, 전문 댄서가 춤을 추었다면 ‘바람의 전설’이 시각적인 화려함으로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신라의 달밤’ 등의 각본을 쓴 박정우 작가의 감독 데뷔작이었지만 ‘바람의 전설’은 연출력 부재로 혹평을 받아야 했고, 춤까지 배우면서 연기한 이성재도 나무토막이 춤추는 것 같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이성재의 악수가 이어진다. ‘빙우’(2003년)의 중현 역도, ‘신석기 블루스’(2004년)의 신석기 역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영화는 대참패였다. 특히 ‘신석기 블루스’에서는 추남으로 망가뜨리면서까지 열연했지만, 작품의 코드가 너무 낡았고 연출도 신선하지 못했다. 이성재는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가 한국 남자배우의 최정상으로 오르는 동안 그 뒤편에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만 했다. ‘홀리데이’(2006년)의 지강혁 역이 아니었다면, 그는 상당 기간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서울올림픽이 있던 1988년 10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로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였던 탈주범 인질극 사건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교도소 이감 도중 탈주해 8박9일간 숨어 살던 지강헌 일행은, 수많은 언론사 카메라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인질극을 벌이면서 두 명은 자살했고, 가장 어린 한 명은 자수를 시켰으며, 주범 지강헌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치고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달라고 요청한 뒤 유리를 깨 자신의 목에 박으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밀항을 꿈꾸던 다른 두 명은 인천항에서 사살되었다.

    그러나 양윤호 감독의 ‘홀리데이’는 소재가 주는 충격을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했다. 특히 아쉬운 것은 몸짱으로 변신한 이성재의 놀라운 연기에도 대본상으로나 연출상으로 지강헌(영화 속에서는 지강혁)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독창적으로 해석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재의 연기는 눈에 들어온다. 이성재는 지강헌이 되기 위해, 지강헌의 영혼을 뒤집어쓰기 위해, 촬영 내내 캐릭터의 육화를 시도하며 모든 행동을 ‘지강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자문하며 했다.

    잇따른 흥행 참패 딛고 다시 열연

    이성재는 “동료 배우, 스태프들에게 미안하다. 마지막 장면 촬영 때 나는 실제 지강헌처럼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라고 말했지만, 시사회에서 본 그의 모습은 지강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촬영이 끝났지만 아직도 지강헌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높았다는 증거다. 멋진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이성재에게서는 비극적인 탈주범의 모습이 배어나왔다.

    다음 작품으로 정우성, 전지현과 촬영한 ‘데이지’가 2월에 공개된다. 2006년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실패를 거친 이성재가 배우로서 다시 일어서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그 시작이 ‘홀리데이’다. 영화적 완성도는 뛰어나지 않지만 캐릭터의 내면적 깊이까지 전달하는 힘 있는 연기에, 창의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배역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성재의 연기 행보를 우리는 따뜻하게 지켜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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