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8

2006.01.10

빈곤 굴레서 허덕 … 잊혀진 8억의 중국 농민

  • heb8610@donga.com

    입력2006-01-04 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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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농민 폭발, 중국 농민 침묵’.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근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열린 홍콩에서 한국 농민시위대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을 때, 침묵으로 일관한 중국 농민을 ‘잊혀진 8억인’으로 묘사한 이 잡지는 그동안 소외돼온 중국 농촌과 농민, 농업의 현실을 신랄하게 파헤쳐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 농민의 현실은 소득수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개혁개방 이후 소득이 크게 향상된 도시민과 달리 농민의 대부분은 아직도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민의 연평균 소득은 2936위안(약 365달러)으로 한국 농민의 약 19분의 1에 불과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연간소득 668위안(약 9만원) 이하의 절대빈곤 농민은 2600만명이나 되고, 669~924위안의 저소득 농민도 무려 4977만명에 달한다.

    이런 실정이고 보니 상당수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의 막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웬만한 농촌 마을에서는 젊은 남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이 농사를 지으며 노인과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형편.

    그리고 농민들은 질병에 걸리면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할 정도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의료실태 조사자료에 의하면 농촌 인구의 40~60%는 병에 걸려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질병으로 인해 더욱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서부 미개발지역의 농민 환자 중 60~80%는 집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교육수준도 크게 뒤떨어져 있다. 중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제창한 ‘9년 의무교육’도 빈곤한 농민층에는 그림의 떡.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한 농촌문제 전문가는 중국 농민의 운명을 “상상할 수 없는 빈궁, 상상할 수 없는 죄악,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의 농촌이 이처럼 피폐해진 것은 수천년간 위정자들이 농업을 근본으로 한다며 중농(重農)정책을 표방했지만, 생산 증대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근본적으로 농민의 이익은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권력을 가진 주류사회가 만든 불리한 제도를 감수한 채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것. 단적인 사례로 농촌에 지원하는 정부 재정이 계속 줄어들어 3%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마저도 농촌의 기초 행정을 유지하는 데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농업의 현대화를 촉진해 소득을 높이기에는 요원하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는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다짐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집권 후 ‘농업이 공업을 지원하고, 시골이 도시를 보완하는(以農補工 以鄕補城)’ 기존의 발전전략을 ‘공업이 농업을 뒷받침하고, 도시가 시골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임을 천명했다.

    또 한국의 새마을운동(新村運動) 성공 사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훌륭한 모델이긴 하나, 중국의 오늘날 현실이 한국의 당시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장 한국의 새마을운동 경험을 중국에 적용해 추산해보면 향후 십수년간 농촌에 약 6조 위안의 거액을 투입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 더욱이 새마을운동이 농민들의 자주적 참여로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자생적 농민 조직이 미약한 것도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농촌문제 해결은 단순히 경제개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치개혁을 포함한 사회운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게 아주주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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