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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vs 정치인’ 부산의 혈투

허남식 시장, 권철현 의원 한나라당 후보 경선 물밑 경쟁 … 각각 ‘세력 부족’ ‘反權’ 약점 꼽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관료 vs 정치인’ 부산의 혈투

‘관료 vs 정치인’ 부산의 혈투

허남식 부산시장.

‘관료 vs 정치인’ 부산의 혈투

권철현 의원.

부산의 최다선(4선)인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의 꿈은 장관이 되거나, 부산의 살림을 맡는 것이었다. 김 의원은 ‘감시(의원)’가 아니라 ‘집행(자치단체장)’하는 자리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초·재선 땐 경력이 짧아서 어려웠고, 중진이 돼서는 야당인 데다 역학 관계가 복잡했다.”

견제와 반목의 역학 관계는 부산 정치권의 키워드다. ‘부산의 거목’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정치권을 떠난 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없다. 김무성, 김형오, 정의화, 권철현(이하 한나라당) 의원 등은 견제를 통해 힘의 쏠림을 막았다.

부산시장이 되는 건 부산·경남(PK)에서 ‘큰 정치인’이 되는 지름길. 그러나 부산 중진들은 기득권이 한쪽으로 몰리는 걸 껄끄러워했다. 문정수 전 시장을 제외하면 역대 부산시장 중 정치인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다.

한나라당 중진들, 불편한 권철현? 만만한 허남식?



지방선거 출마를 노리는 각 당 후보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가운데 부산에서도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의 강세가 예상되는 터라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의 출마설이 나올 뿐 여권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 반면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은 물밑에서 불을 뿜고 있다.

2005년 12월 중순 부산의 한 식당. 권철현 의원(한나라당)과 허남식 현 부산시장이 저녁상을 놓고 마주했다.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만큼 기회를 한 번 더 달라.”(허 시장)

“미안하다. 출마하겠다.”(권 의원)

권 의원이 장고 끝에 출마 의사를 굳히면서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은 권 의원과 허 시장의 양강 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허 시장이 권 의원에게 조금 앞서 있다”는 게 양 진영의 공통된 평가. ‘현역 시장’ 프리미엄과 APEC 성공 개최의 후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권 의원이 우려하는 것은 김무성, 김형오, 정의화 의원 등 부산 출신 중앙 정치권 인사들의 견제다. 그는 2002년 이들의 견제를 뛰어넘지 못하고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바 있다. 당시 경선 후유증으로 안 시장과는 줄곧 소원한 관계였다는 후문이다.

권 의원은 출마를 결심한 뒤 특별한 의회 일정이 없으면 부산에 머무른다. 그는 12월27일 전화 인터뷰에서 “배수진을 쳤다”고 말했다. 후보 경선에서 또다시 패배하면 정치 이력에 흠집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진들이 ‘불편한 권철현’보다는 ‘만만한 허남식’을 고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부산 출신 A 의원은 “부산 정치권은 ‘반권’(반권철현)과 ‘친권’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시당 한 관계자도 “권 의원이 당선되면 자연스럽게 부산의 맹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중진들이 비토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정통 행정관료 출신인 허 시장의 아킬레스 건은 ‘세력’이다. 허 시장은 공무원 출신으로 정치권 경험이 전무하다. 따라서 경선에서의 승부를 가름 짓는 당원들에 대한 장악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11월 부산시청에서 만난 허 시장은 재선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정치권 인사들을 꾸준히 만나고 있다. 여러 분들이 도와주고 있다.”

허 시장은 지난해 여름부터 중앙 정치권 인사들과의 접촉을 눈에 띄게 늘렸다. 부족한 세를 키우기 위한 포석이었다. 권 의원의 대척점에 선 김무성 의원과는 출장길에 동행했을 만큼 사이가 좋다고 한다. 부산시 한 관계자는 “반권 세력이 권 의원을 비토하면 승산은 허 시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허 시장은 ‘부산의 고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통 행정관료답게 행정력이 뛰어난 데다 관직 운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조직 장악력이 다소 떨어지고 장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으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개최 이후 이러한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정치적 무게감에선 ‘힘 있는 시장론’을 내건 권 의원에게 밀리는 게 사실이다.

“부산의 유권자들은 중앙 정치에서 영향력을 가진 인사를 원한다. 또 부산은 2007년 대선의 전진기지가 돼야 한다. 한나라당이 승리하는 데 중추적 구실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시장을 맡아야 한다.”(권 의원)

‘큰 인물론’을 내세운 권 의원은 앞서 언급한 대로 중진들과의 역학 관계가 가장 큰 약점이다. 최소 이들을 ‘중립’으로는 만들어놓아야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친권 대 반권’ 구도로 경선이 꾸려지면, 4년 전의 패배를 답습할지도 모른다. 권 의원은 자기주장이 강해 동료 의원들의 호불호(好不好)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부산 출신 의원 중 권 의원의 확실한 우군으로 평가되는 인사는 박형준, 이성권, 김희정 의원 정도. 이들은 2004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권 의원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권 의원은 총선 과정에서 부산시당 위원장을 맡아 공천에 상당한 입김을 행사했다는 후문이다. 김무성 의원은 당시 이들의 공천에 반대했다.

권 의원은 “친권, 반권은 다 옛날 얘기”라면서 역할 분담론을 들고 나왔다. 중진들의 ‘경쟁 속 공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반권 정서를 뚫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총선 직후 내가 백의종군하면서 정형근, 김무성, 정의화 의원이 당직을 갖는 역할 분담이 이뤄진 예가 있다”고 말했다. 김무성, 정의화 의원이 원내대표에 출마할 경우 도와주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대선 주자들과의 관계도 또 다른 중요 변수

부산 정치권의 친권 및 반권 분할 구도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중진들이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협력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옴에도 교통정리가 쉽지 않아 보인다. 상대적으로 개혁적 행보를 보여온 권 의원은 다른 중진들과 ‘친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김무성 의원이 권 의원을 돕는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나라당 부산 경선의 또 다른 변수는 대선 주자들과의 관계 설정이다. 권 의원의 반박 이미지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미지수다.

10월15일 오후 부산 사상구 사상교회에서 권 의원은 큰아들 결혼식을 치렀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직접 찾아왔고, 이명박 서울시장은 아내를 대신 보냈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한나라당 부산시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권 의원은 반박 아닌가? 반박이라는 점이 장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될 수 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입김이 후보 경선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관측도 있다.”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엔 이렇듯 복잡한 역학 관계가 얽혀 있다. ‘권철현’ ‘허남식’이라는 상수보다 역할 분담론이나 대선 후보군의 입김 등 변수가 경선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배수진을 치고 허 시장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권 의원의 추격전은 급박하게 전개될 듯하다.



주간동아 518호 (p8~9)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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