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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유혹’ 뒤로 악몽의 그림자

SF 영화 속 통제불능 과학과 자본 결합 공포 … 기술과 법적 제한 넘어선 인간 욕심 뭐로 막나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복제 유혹’ 뒤로 악몽의 그림자

‘복제 유혹’ 뒤로 악몽의 그림자

영화 ‘아일랜드’에서 복제인간은 장기이식을 위해 만들어지는 ‘상품’이다.

여러분이라면 30~40년의 수명 연장을 위해 여러분과 똑같은 클론을 만드시겠습니까? 저희는 관객들이 환상적인 미래공간과 멋진 액션을 감상하면서 이와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005년 7월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 ‘아일랜드’의 시사회는 감독 마이클 베이의 메시지로 시작했다. 블록버스터 감독이 일부러 만든 이 뜻밖의 영상물은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됐다. 병에 걸린 젊은 억만장자와 교통사고를 당한 톱스타 등이 장기를 구입한다는 설정이 더 리얼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칼 든 ‘망나니’가 아니었다. 이들은 돈을 내고 메릭 바이오테크라는 회사와 건강을 위한 계약을 맺었을 뿐이다.

이 영화가 개봉될 즈음 우리나라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젓가락 기술’이 전 국민의 자부심으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영화 ‘아일랜드’는 인간 배아복제 기술이 인류의 비극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담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370만 관객을 동원하여 2005년 외화 부문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성적이 저조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예외적’이었다.

관객 출구조사를 실시했던 워너브라더스사의 관계자는 “황우석 신드롬 덕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응답자 중 상당수가 ‘스토리에 흥미를 느껴 영화를 보러 왔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워너브라더스사는 현재 진행 중인 줄기세포 사건이 1월 초로 예정된 비디오와 DVD 출시에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충분한 복제인간



‘사이언스’ 논문의 진위 공방에서 결정적인 과학적 증거를 제시해 유명해진 ‘브릭(생물학 정보센터)’에도 영화 ‘아일랜드’에 대한 글이 올라 있다. ID가 ‘학부생’인 이용자는 ‘하나의 줄기세포가 복잡한 내부구조를 가진 (인체) 기관으로 변하려면 얼마나 어려울까… 그것을 인공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지… 따라서 ‘아일랜드’와 같은 형태의 장기 이식이 유혹받는 것이 아닐까’라는 ‘감상’을 올렸다. 그 아래에는 ‘무서운 소리 하지 마셈. 그런 건 ‘기술’이라고 말하면 안 되삼’이란 댓글이 달려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과학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복제인간이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단계이며 지금 추출 여부조차 불확실해진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배양접시 위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기관의 정상 세포로 키우는 ‘먼 길’보다는 면역 거부 반응이 없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욕심나는 기술’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는 점이다.

현란한 액션들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아일랜드’는 미래 ‘기술 제국주의’에 관한 비극적 시나리오다. 줄기세포 논란은 그 미래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시점으로 다가왔음을 알린 셈이다.

과학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그린 영화나 문학작품은 SF라는 하나의 장르를 이룰 만큼 길고 풍부한 역사를 갖고 있다. 멀리는 근대 사상가 프란시스 베이컨이 쓴 ‘뉴 아틀란티스’(1627)와 시인 마리네티의 ‘미래파 선언’(1909)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들은 과학과 기계 시대를 낙관했다. 그러나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으로 사람들은 통제 불능의 과학기술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 영화 ‘그날 이후’ ‘매드맥스’ ‘포스트맨’ 등이 과학에 의한 인류 멸망을 소재로 한 SF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복제 유혹’ 뒤로 악몽의 그림자

기술제국주의 시대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 ‘6번째날’.

이 시기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인간이 부품으로 전락한 ‘포디즘’이 지배할 미래를 예견하고 걸작 ‘멋진 신세계’(1932)를 펴냈다. ‘멋진 신세계’는 전 지구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수백년 후의 미래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은

5등급으로 분류돼 공장에서 ‘부화’되는데, 피지배계급은 ‘부화’ 단계에서 산소결핍을 통해 왜소한 신체를 갖고 평생 노동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의식과 무의식에 걸친 교육과 ‘소마’라는 환각제, 임신 걱정 없는 섹스라는 오락 덕분에 사람들에겐 불만도 갈등도 없다.

‘멋진 신세계’에는 전체주의적 사회상뿐 아니라 인공수정과 할구 분할에 의한 배아복제로 일란성 쌍둥이들을 만들어내는 ‘생명공학’ 기술도 등장한다. 이는 헉슬리의 조부와 형제들이 모두 저명한 생물학자(1963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줄리언, 앤드류와 형제)였던 덕분인 듯하다. 아마도 그의 세대엔 끔찍하게 보였을 인공수정 기술은 그가 죽은 뒤 불과 15년 뒤 최초의 시험관아기 루이스 브라운의 탄생(1978)으로 현실이 되었고, 난자 추출이 “사회의 공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시행되고 6개월치 급여에 해당하는 보너스가 제공될 뿐”이라는 ‘인공부화소장’의 말은 오늘날의 난자 매매를 예고한 듯하다.

결국 SF 장르는 통제 불능한 과학과 거대 자본이라는 두 가지 ‘공포’를 내포하게 되는데, 그 기저에는 인간성에 대한 짙은 회의가 깔려 있다.

복제인간 영화의 고전이라 할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타이렐이라는 대기업이 만든 복제인간들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묘사돼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로 읽힌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는 “복제인간은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정체성을 묻는 소재로 흔히 쓰였지만, 모습이 같다고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므로, 인간복제의 문제는 자본과 결탁했을 때 장기 이식, 신체 매매 등이 야기할 상황을 다루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병만 고치겠다는 생각과 돈 있다면…”

‘엠브리오’, ‘저지 드레드’, ‘닥터 모로의 DNA’, ‘6번째날’ 등이 인간복제의 부작용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저지 드레드’나 ‘닥터 모로의 DNA’는 기형으로 태어난 복제인간이 주인공으로, 오늘날 동물 복제로 기형들이 태어나는 것으로 볼 때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주목할 만하다.

또 ‘6번째날’은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복제인간의 입장에서 생명공학을 다룬다. 평범한 가장인 내가 퇴근해 집에 오니, 또 다른 내가 있다. 이는 금지된 인간복제를 실험하던 바이오 회사의 착오에 의한 것으로 이 회사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복제인간인 ‘나’를 제거해야만 한다.

인공수정을 위해 인간 배아를 만들어내면서 성별과 특정한 질환 유무 등을 미리 알아내 ‘불필요한’ 배아는 없애는 것이 지금도 가능하다. 이처럼 인간 배아복제 기술이 필연적으로 우수한 유전자의 인간들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영화가 ‘가타카’이다.

1999년에 배아복제로 만든 이식용 장기 시장을 독점한 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한 SF소설 ‘바이너리코드’를 써내 화제를 모았던 노성래 씨는 “생명공학은 대기업의 실험실로 넘어가면 통제가 불가능하다. 양심적인 과학자도 연구성과에 골몰하면, 윤리는 망각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복제 유혹’ 뒤로 악몽의 그림자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

2005년 우리나라에서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발효됐다. 그러나 생명윤리연구소 부소장 권복규 박사는 “현재 ‘생명법’이 동물의 난자에 인간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행위에 대해 명문 규정이 없고 경과 규정을 통해 사실상 체세포 복제 연구를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 이는 체세포 복제 연구를 금지하려던 취지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라고 말한다. 줄기세포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러나 우리가 잊었던 것도 생명윤리다.

과학자들은 과학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 현실적 한계와 기술적 어려움에 대면해 있으므로 ‘아일랜드’ 같은 영화가 ‘비현실적’ ‘비과학적’ 혹은 ‘불법’이라고 말한다. ‘아일랜드’에 대해 한 배아연구학자는 “한 명의 복제인간을 만들기 위해 최소 20명의 대리모가 필요하고 그중 19명은 사산하거나 기형아를 낳게 되는 ‘재앙’ 앞에서 누가 복제인간을 만들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병만 고치겠다는 잘못된 생각과 충분한 돈이 있다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에 비해 예술가들은 인간의 욕망을 알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야말로 기술적 한계와 법적 제한을 넘어선다고 생각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공부화소장’은 “전문적 지식은 사회와 개인의 행복에 기여하나 보편적 지식은 필요악일 뿐”이라고 말한다. 과학 지상주의의 디스토피아가 인간에게 얼마나 은밀한 유혹으로 다가올 것인지에 대한 역설적 경고인 것이다.



주간동아 2006.01.03 517호 (p70~7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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