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5

2005.10.11

문화재 과학적 보존과 故 최광남 소장

  • 전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입력2005-10-05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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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과학적 보존과 故 최광남 소장

    경남 창녕에서 발견된 8000여년 전 배 유물.

    9월 초, 경남 창녕 비봉리 고분에서 신석기시대의 나무배(木舟)가 출토됐다. 8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니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배 유물인 셈이다. 이번 창녕에서의 발견뿐만 아니라 2005년 2월에는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고려시대의 배가 출토된 적도 있다. 이 배는 8월에 인양됐고, 곧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창녕의 배’나 ‘신안의 배’는 앞으로 상당 기간 과학적인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다음에나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출토 유물의 보존처리는 비교적 최근에 발달해온 과학 분야다. 1976년부터 8년 동안 계속된 신안 ‘보물선’ 발굴에서 그 중요성이 싹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청자 1만2000개 이상, 동전 28t 등 엄청난 분량의 보물이 쏟아져나왔는데, 가치가 막중했기 때문에 82년 6월부터 약 1년에 걸쳐 ‘보물선’ 선체가 해체 인양되기에 이른다. 유물 가운데 ‘지치(至治) 3년’이란 연호(年號)가 기록된 나무패로 인해 이 배는 중국에서 이 보물을 싣고 일본으로 가다가 1323년쯤 침몰됐음이 밝혀졌다.

    이 발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해양유물 보존처리 문제가 부각됐다. 그리고 1981년 목포에 보존처리장이 세워진 것이다. 필자는 최근 옛 배들의 발굴 소식을 접하면서 당시 첫 해양보존처리장 소장을 맡았던 최광남(1947~90) 박사를 떠올린다. 복원 경험이 전무하던 당시의 젊은 연구자들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720조각의 배 파편을 소금기를 빼 말리고 보관 처리한 다음 사라진 부분은 남아 있는 부분을 바탕으로 만들어 배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일을 해냈다. 축소 모형을 만드는 데만 4년이 걸렸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사라진 부분을 복원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 전 과정을 최 소장이 주도했다. 이렇게 복원된 신안 ‘보물선’은 V자 모양의 바닥이 뾰족한 중국식 선박으로, 아랫부분이 7개의 칸막이 벽으로 구성돼서 일부에 물이 들어와도 배 전체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필자는 그 보존처리장을 1986년 2월에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무처장으로 해마다 2월에 열리는 교수협의회를 주재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남 광주에서 회의가 개최된 것이다. 당시 신안 보물선이 세간의 화제였기 때문에 100여명의 교수들이 함께 ‘보물선 보존처리장’을 찾았다. 최 소장은 우리를 맞아 복원 중인 배와 축소모형 제작 과정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필자는 최 소장과 그 전에 몇 차례 과학사 학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노고와 열정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가 1990년 8월,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47년 광주에서 태어난 최 소장은 한양대 공대를 나와 일본에 유학,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보존과학을 공부했다. 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과학을 연구하면서 다시 일본에서 공부한 일도 있고, 신안 보물선 복원 작업 이후에는 외국의 옛 배 복원을 공부하러 연구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가 주도해 복원한 신안 보물선은 지금 목포해양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또 그는 일찍이 ‘문화재의 과학적 보존’이란 책을 남겼다.

    필자는 옛 배의 발견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국의 문화재 복원의 개척자 최광남 소장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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