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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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잡았던 고기 놓치고 ‘한숨’

류시훈 9단(백) : 뤄시허(羅洗河) 9단(흑)

  • 정용진/ 바둑평론가

    입력2005-09-14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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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잡았던 고기 놓치고 ‘한숨’
    삼성화재배는 ‘꿈과 파란의 기전’으로 불린다. 일찍이 오픈전을 표방하여 아마추어 고수들에게도 문을 열었고, 바둑계 관행으로는 상상 못할 자비(自費) 출전 방식을 도입해 국내외 기사들이 한데 어울려 치르는 통합예선을 선보였다. 이것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프로바둑에서는 어떤 바둑이든 대국료 지급은 불문율이었는데 이를 깨고 순위에 따른 상금제를 시행했다. 이렇게 되자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선수들이 나왔다. 그리고 대국 제한시간도 현대 흐름에 맞게 2시간으로 줄였다.

    10회째를 맞은 올해 통합예선에는 한국 176명, 중국 40명, 일본 60명, 대만 16명, 아마추어 선수 5명 등 296명이 출전하여 16명의 본선 진출자를 가렸다. 본선 티켓은 한국이 10장, 중국 4장, 일본이 2장을 나눠 가졌다. 이 가운데 가장 아까운 바둑이 일본선수로 출전한 류시훈 9단의 바둑. 당시 맞수인 이창호가 조훈현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가자 이에 자극을 받고 86년 일본으로 건너간 류시훈은 이후 조치훈의 뒤를 이을 기대주로 떠오르며 94년 천원, 96년 왕좌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였으나 3대 타이틀 도전에 실패하면서 근래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 잡은 고기였다. 흑 의 대마가 두 눈이 없는 상황. 그렇다면 우변 백대마만 무사히 살아난다면 ‘상황 끝’이라는 얘기인데, 이 대마는 비빌 공간이 많아 결코 죽을 말이 아니다. 알기 쉽게 백1~7로 두기만 해도 알뜰하게 산다. 그런데 안 될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류 9단은 백1로 궁도를 잡았고, 이에 흑이 재빨리 A로 파호하면서 믿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된다. 이 뒤로도 백은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몇 번 있었으나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지는 코스’만을 밟아갔고, 결국 우변 백대마를 살리기 위해 그물에 가뒀던 흑 를 놓아줄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274수 끝, 흑 5집 반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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