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1

2005.09.06

‘올드 배우’ 되고픈 ‘만인의 연인’

  • 입력2005-08-31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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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배우’ 되고픈 ‘만인의 연인’
    알려져 있다시피, 강혜정의 연인은 단 한 사람이다. ‘말아톤’을 통해 올해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송강호·최민식·설경구의 뒤를 이어 한국 영화 차세대 기대주 1순위로 떠오른 조승우다. 강혜정-조승우 커플이 올해 동원한 관객 수는 1000만이 넘는다. 조승우가 ‘말아톤’으로 518만, 강혜정이 ‘연애의 목적’으로 200만, 그리고 다음 작품인 ‘웰컴 투 동막골’이 현재 470만을 넘어서 500만 고지로 향하고 있다. 더구나 입소문이 좋아서 ‘웰컴 투 동막골’의 흥행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돼 얼마나 많은 관객이 동원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조승우와 강혜정은 각각 자폐아와 광녀라는 비정상적 캐릭터의 어려운 연기에 도전해 거둔 성과여서 보람이 더욱 크다. 8월22일 밤 서울 메가박스에서 열린 시각 장애우와 청각 장애우를 위한 ‘웰컴 투 동막골’의 특별시사회에서 강혜정은 수화로 인사를 했다. 챙 넓은 검은색 모자에 블랙 앤 화이트의 인상적인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강혜정은 ‘시사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장애우들에게 수화로 인사하며 눈물을 글썽거려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영화의 흥행세와 함께, 동막골의 주민 여일 역으로 활력소를 불어넣으며 가장 인상적 연기를 보여준 강혜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가고 있다. 특히 독특한 억양의 강원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때 묻지 않은 무공해 이미지를 보여준 여일은, 약육강식의 도시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청량제 구실을 하고 있다. 이제 대중은 강혜정이 조승우 단 한 사람의 연인이 아니라 만인의 연인이 되기를 원한다.

    ‘은실이’ 출연했던 아역스타 출신 … ‘나비’로 영화 데뷔

    내가 강혜정을 처음 만난 것은 문승욱 감독의 디지털 영화 ‘나비’가 막 극장 개봉을 하던 서울극장 앞에서였다. 그녀를 인터뷰하는 자리였는데, 이상한 것은 그녀가 그때는 나이보다 성숙해 보였는데 지금은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것이다. 그녀는 1982년 1월4일생이다. 올해 스물세 살. 산양좌, 나와 별자리가 같다. ‘은실이’에서 착한 은실이를 괴롭히는 심술궂은 영채로 나온 뒤 3년 동안 연기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와서 잡지 모델을 했으며, 영화 첫 데뷔작은 ‘나비’였고, 거기서 그녀는 상처를 잊고 싶어하는 김호정을 망각의 바이러스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가이드 유키 역을 맡았다. 강혜정은 이 작품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강혜정의 첫인상은 고집스럽다는 것이었다. 아직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혹은 일부러 배우지 않은 아이처럼 꽉 다문 입술에 초롱한 눈은 마치 타협이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CD 한 장에 가려질 정도로 작지만 눈·코·입은 모두 크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돌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CIA 요원들처럼 비밀스러운 직업을 갖고 싶기도 했고, ‘분노의 역류’를 보고서는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는 강혜정은 ‘올드보이’ 오디션 때는 박찬욱 감독, 최민식과 함께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올드 배우’ 되고픈 ‘만인의 연인’

    강혜정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모두 개성이 강했기 때문에 그녀의 연기가 더욱 빛났다. ‘나비’‘연애의 목적` ‘웰컴 투 동막골’(위부터).

    강혜정은 미도 그 자체였다. ‘연애의 목적’이 개봉하기 전까지 강혜정은 그녀의 가장 성공적인 영화이며 대중에게 자신을 널리 알린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올드보이’ 속의 미도였다. 미도 역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개봉한 강혜정의 첫 주연작인 ‘연애의 목적’에서 그녀는 동료 교사 박해일이 작업을 거는 교생 최홍 역을 맡았다. ‘연애의 목적’은 노골적인 대사와 성 담론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제 대중은 그녀를 미도나 최홍보다는, 여일로 기억한다.

    출연작마다 색다른 캐릭터 ‘완벽 소화’

    장진 각본,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에서 강혜정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해맑은 이미지를 가진 여일로 등장한다. 그녀는 정신세계가 약간 이상한 여자다. 6·25전쟁 도중 인천 상륙작전으로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길을 잃고 강원도 깊은 산골 동막골로 접어들면서 만나게 되는 여일은, 머리에 꽃을 꽂고 독특한 강원도 사투리로 동족상잔의 전쟁에 상처 입은 젊은 영혼들을 달래준다. ‘근데 있잖아, 쟈들하고 친구나?’ ‘뱀에 물리면 마이 아파’ ‘내가 좀 빠르지’ ‘내가 팔을 막 이렇게 하믄 다리가 빨라지고, 다리를 빨리 하믄 팔이 이렇게 해서 막 빨라진다. 그러믄 막 땅이 뒤로 가’ 같은 동막골의 명대사들은 모두 강혜정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를 끌고 가는 중심축은 국군 장교 신하균과 인민군 장교 정재영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여일의 대사가 강하게 남는다.

    현재 강혜정은 자신의 전속 계약사인 ‘밀크&스위티’를 상대로 전속 계약 해지 소송을 낸 상태다. 소속사도 이에 맞서 강혜정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2002년에 전속금 3000만원을 받고 5년 전속계약을 했는데 “소속사가 의무를 게을리 하고 연예활동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여러 번 시정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소송을 내게 됐다”고 강혜정 측은 밝혔다.

    강혜정의 다음 작품은 신인 감독 강지은의 로맨틱 멜로 영화 ‘도마뱀’이다. 상대 배우가 캐스팅되는 대로 촬영에 들어가서 내년 초 개봉될 ‘도마뱀’에서 강혜정이 맡은 역은 신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아리라는 여자다. 초등학교 단짝친구인 조강과 러브스토리를 펼칠 그녀는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노란 우비를 입고 다니는 등 엉뚱한 캐릭터여서 강혜정은 강렬한 개성을 갖고 있는 배역에 연이어 캐스팅되고 있다.

    나는 2005년 1월 방콕 국제영화제에 갔다가 현재 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세계영화계에 알려진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사무실에서 강혜정 사진을 봤다. 펜엑 감독은 최근 국내에서도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라는 작품이 개봉되었는데, 차기작으로는 그 영화의 주인공인 일본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를 다시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서 ‘인비서블 웨이브’라는 영화를 찍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올드보이’에서 강혜정을 보고 자신의 영화에 캐스팅하려고 사진을 붙여놓았다고 말했다. ‘도마뱀’과 함께 강혜정은 스케줄을 조정해서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한다. ‘인비서블 웨이브’는 왕자웨이 영화의 촬영 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을 맡고, 해외 영화제를 겨냥하여 촬영되고 있어서 강혜정은 ‘올드보이’에 이어 국제적인 관심을 또 한 번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혜정은 충무로 여배우 캐스팅 1순위다. ‘연애의 목적’, ‘웰컴 투 동막골’의 눈부신 성공도 있지만,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과 독특한 개성이 대중이 원하는 새로운 시대의 스타상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한 강한 집념은 박찬욱 감독이 “혜정아, 넌 늙은 배우가 되라”고 말하자 그녀가 “네”라고 대답하면서 미소를 지은 데서도 알 수 있다. 난 그녀의 대중적 인기가 일회적이지 않고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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