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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포트

“휴~ 오늘도 집 지키는 ‘낮다마’ 신세”

함경북도 청진 심재철 씨의 하루 … 아내는 장마당 장사, VCD로 한국 드라마나 볼까

  • 곽대중 keyseditor@hotmail.com

“휴~ 오늘도 집 지키는 ‘낮다마’ 신세”

“휴~ 오늘도 집 지키는 ‘낮다마’ 신세”

몰래카메라로 찍은 평남 안주시 남흥 장마당(2005년 4월). 국밥, 고기, 국수 등을 파는 아낙네. 한국, 일본, 미국이 지원한 쌀이 거래되는 현장. 장마당의 꽃제비(왼쪽부터).

“휴~ 오늘도 집 지키는 ‘낮다마’ 신세”

북한 정부에서 공포한 가격표. 그러나 이 가격으로 거래되는 물품은 없다.

청진시는 함경북도의 도청소재지며 항구도시다. 북한에서 가장 큰 김책제철소가 자리 잡고 있어 지리적인 위치나 북한 내에서의 경제적인 위상으로 보면 남한의 포항이나 울산쯤에 해당하는 도시다.

또 청진항을 통해 외국 선박이 들어오고 북-중 국경과도 4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대륙과 바다 건너 소식이 모두 들어오는,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더불어 가장 개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주민들의 생활수준도 어느 지역보다 높다.

청암구역은 청진시의 중심에 있다. 이곳 주민인 심재철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2005년 8월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가늠해보기로 하자. 북한 중류층 남성의 생활 실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58살인 심재철 씨는 두 살 아래인 아내와 슬하에 29살, 26살 된 아들과 딸이 있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심 씨는 닭과 돼지에게 여물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심 씨의 집은 방 두 칸에 조그만 부엌이 하나 딸려 있다. 닭과 돼지는 이 부엌 안에 칸막이를 치고 키운다. 물론 마당 한쪽에 작은 막사를 만들 수도 있지만 도둑이 워낙 많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북한 대부분의 가정은 돼지·개·닭·염소 등 가축을 키우고 있는데 아파트는 베란다, 단층집은 부엌 안에 우리를 만들어놓았다. 당연히 집 안에는 분뇨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북한 중류층 남성의 평균 생활



이렇게 착실히 가축을 길러 장마당에 내다 팔면 몇 달 먹고살 식량은 마련할 수 있다. 부엌엔 아궁이가 세 개인데 밥솥, 국솥과 여물 솥이 각각 올려져 있다. 여물은 각종 풀과 강냉이 껍질 같은 것을 섞어 만든다.

심 씨 가족의 아침식사는 쌀과 강냉이를 절반씩 섞은 ‘오대오(5대 5) 밥’에 시래깃국, 간장과 두부 한 모가 전부다. 아내와 딸이 장마당에서 쌀과 두부 장사를 하기 때문에 두부 반찬은 수시로 올라온다. 청진에서 ‘오대오 밥’을 먹는 가정은 절반가량, 북한 전체로는 20~30% 정도다. 형편에 따라 ‘삼대칠’로 먹기도 하고 아예 강냉이밥만 먹는 집도 있지만, 전혀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집은 이제 거의 없다. 1990년대 중·후반의 대기아와 대량 아사사태 이후 모두가 ‘먹고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죽이라도 쑤어 먹는다.

“휴~ 오늘도 집 지키는 ‘낮다마’ 신세”
아침 8시가 되면 심 씨는 출근길에 나선다. 그는 30여년간 제지공장에서 일해왔다. 일반종이는 물론 다이너마이트 외관을 씌우는 특수종이까지 제작하는 공장인데, 가동률은 20% 미만이다. 원자재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공장의 모든 생산라인이 돌아가본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긴 식량난 때 일부 주민들이 공장 기계의 부속품을 도둑질해간 바람에, 이제는 원자재와 전기가 있다 해도 기계가 제대로 돌아갈지 장담할 수도 없다.

오늘도 공장에 나갔지만 기계는 멈춰서 있다. 심 씨는 출근부에 도장 찍고 동료 몇 명과 둘러앉아 담배 한 대씩 피우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공장 노동자 가운데 출근하는 사람은 절반 미만이다. 모두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거나 어디론가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심 씨는 ‘나도 지배인에게 돈 바치고 출근하지 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기 생산 할당량에 해당하는 액수의 돈을 바치면 출근하지 않아도 한 것으로 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 씨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배급도 월급도 나오지 않는 직장이지만, 가족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는 출근부에 꼬박꼬박 도장 찍는 일뿐인 탓이다.

집에 와보니 아내와 딸이 막 장마당에 장사를 나가려는 참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을 심 씨가 지킨다. 식량난 이후 북한에서 남편을 ‘낮다마’ ‘멍멍이’ ‘열쇠’ 등으로 부르는데, 여기에는 낮에 켜져 있는 전등처럼 아무짝에도 쓸모 없으면서 가산만 축내는 사람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다.

“지배인에게 돈 바치고 출근 말까”

심 씨는 억척스런 아내 덕분에 5장 6기를 모두 갖춰놓았다. ‘5장’은 이불장·양복장·책장·신발장·찬장, ‘6기’는 텔레비전 수상기·냉동기·세탁기·재봉기·사진기·선풍기(혹은 녹음기나 재봉틀)를 가리킨다. 전에는 이것을 갖추면 부잣집에 속했지만 요새는 VCD(비디오 CD) 기계는 갖고 있어야 ‘좀 사는 집’에 속한다.

은밀히 빌려주고 빌려 보는 VCD에는 별의별 게 다 있다. 중국·러시아는 물론 인도·중동의 드라마도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한국 드라마다. 걸리면 예전에는 바로 정치범으로 취급되었지만 요새는 대강 뇌물로 웬만한 일은 다 해결된다. 음지에서 ‘VCD 대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보위부나 보안서 간부의 아내들이니 발각될 일도 거의 없다.

대여료는 일주일에 500~1000원. 요새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는 ‘올인’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이다. ‘송혜교’라는 배우의 이름은 아내와 딸에게서 하도 많이 들어 알고 있다. 최근에는 ‘파리의 연인’이 재미있다는 말을 들었다. 송혜교가 얼마나 유명한지 젊은 애들은 드라마 속 대사를 줄줄 외우고 ‘송혜교 머리 모양’을 따라한다. 당국에서는 그것을 단속하라는 지시문건까지 내렸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색깔 영화(포르노 영화)’도 비싼 값에 거래된다. ‘색깔 영화’는 발각되면 심한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차라리 구입해 본다. 가격이 보통 5000~10000원으로 노동자 월급의 5배 이상, 쌀로 치면 10kg에 해당하지만 그래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심 씨의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은 해가 지는 시각과 일치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해가 지면 일과도 자동으로 끝난다. 청진시의 경우 하루에 5시간 정도는 전기가 들어오지만 불규칙하다. 그래서 깜빡거리는 희미한 전구에 의존하는 것보다 호롱불을 밝히는 편이 오히려 낫다. 연료는 석유를 사용하는데, 자고 일어나면 그을음 때문에 얼굴이 온통 새까맣게 변해 있다.

아내와 딸이 장사에서 돌아왔다. 오늘 ‘1만원 벌이’를 했다고 좋아한다. 예전에 노동자의 월급이 100원 미만이던 시절 1만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조치’라는 것이 발표된 뒤 물가가 폭등하면서 이젠 쌀 1kg이 1000원이 넘는다. 매일같이 물가가 오르는 식이라 하루에 ‘1만원 벌이’는 해야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되거리 장사’를 하는 아들은 오늘도 타지에 머무르려나 보다. 아들은 청진항을 통해 들어오는 일본 옷이나 생필품을 구입해 다른 지역에 더 높은 가격으로 내다파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도매 유통업을 북한에서는 ‘달린다’라고 표현하는데, 청진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청진달리기’라는 속어가 있을 정도다.

심 씨는 부엌에 있는 가축을 한번 살펴보고, 아내와 딸이 장사 나갈 때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건넌방에 넣어둔 뒤 이불을 펴고 누웠다. 조선중앙방송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과는 인연을 끊은 지 오래됐다.

자유롭게 채널을 돌릴 수 있는 대만산, 일본산 단파 라디오가 요즘 장마당에서 은밀히 거래된다고 한다. 세계 온갖 나라 방송이 다 들리니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에 그만이다.

한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 방문을 열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깜깜한 청진시내에서 멀리 김일성 동상에만 환히 조명이 비춰져 있다. 거리에는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는다.



주간동아 2005.08.23 499호 (p56~57)

곽대중 keyseditor@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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