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1

2005.06.28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강한 구술성이 즉시 문자화돼 … 논리·추론 없고 찬양·비난 일색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입력2005-06-23 16:2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수도원에서 책을 베끼는 필경사(위)와 독서대.

    오늘날 필자와 독자의 구별은 신분적인 것에서 기능적인 것으로 변했다.” 독일의 평론가 발터 벤야민의 말이다. 필자에 씨가 따로 없어 누구나 필자가 되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이 1930년대, 대체 뭘 봤던 걸까? 일간신문의 독자투고란을 보고 한 얘기란다. 독자가 필자가 되는 시대가 왔다는 그의 앞선 진단은 오늘날 인터넷 글쓰기의 등장으로 확고한 현실이 되었다.

    뜨거운 인터넷

    우리처럼 인터넷에 목매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를 빼면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하루의 상당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시간을 인터넷에 들어가 산다. 메신저로 타인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다른 이의 블로그, 기관이나 단체 홈페이지로 마실 다니기를 즐긴다. 서구의 인터넷 이용이 ‘정보적’이라면,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이렇게 ‘친교적’이다.

    사이버 공간의 온도도 다르다. 가령 독일 인터넷에서 벌어진 논쟁. 사형제에 반대하는 이가 말한다. “누가 당신에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를 주었는가?” 찬성론자가 반박한다. “그럼 사람을 잡아가둘 권리는 누가 주었는가?” 서구의 인터넷 논쟁은 이렇듯 논리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터넷 온도는 뜨겁다. “그런 놈은 쳐 죽여야 해.” 언어는 감정적이고, 논증은 감정이입적이다. “네 가족이 그놈한테 살해당했다고 생각해봐라.”

    디지털 복제시대의 구술문화



    이렇게 소통에서 친교성이 중시되고, 논쟁에 감정이 실리는 것은 구술문화의 특징이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90%. 그때만 해도 인구의 대부분이 구술문화에 속해 있었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맹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서구에서 몇백 년이 걸린 과정을 우리는 몇십 년 만에 뚝딱 해치워버렸다. 구술문화의 특성을 완전히 지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 우리 의식에 아직 구술적 특성이 강하게 남은 것은 이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의 인터넷 글쓰기를 보라. 논리나 추론은 없고 찬양이나 비난만 있다. 차가운 비판은 없고, 넘치는 것이 뜨거운 욕설이다. 자신의 인격을 책임진 개인은 사라지고, ID 뒤에 숨은 익명의 집단들이 떼를 이뤄 사냥감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공격 대상을 발견하면, 디지털 멍석말이에 들어가 마음껏 원시적 감정을 분출한다. 우리의 인터넷에서 너무나 자주 보는 이런 현상은 분명 문자문화 이전의 습성,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하지만 ‘후발의 이점’이라고 할까? 정보화 시대를 맞아 이 정신적 낙후성이 외려 기술적 선진성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인터넷 자체가 새로운 구술성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글쓰기는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을 글로 타이핑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묘하게 뒤섞인다. 우리가 그토록 인터넷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전히 강한 구술성이 남은 우리의 의식이 거기에 적합한 첨단매체를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쓰기, 의식을 재구조화하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거기서 다시 구술문화로. 하지만 인터넷이 열어준 이 새로운 구술문화는 문자 이전의 것과는 다른 제2차 구술성의 문화다. 문자성과 구술성이 뒤섞인 이 디지털 구술성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그것을 알려면 먼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 고전이 된 텍스트가 바로 캐나다의 영문학자 월터 J. 옹이 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다.

    사회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선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넘어왔다. 하지만 ‘말하기’에서 ‘글쓰기’로 넘어가는 것은 그저 의사소통의 수단을 교체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니다. 월터 J. 옹에 따르면 새로운 매체는 “인간의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한마디로 글을 쓰느냐, 안 쓰느냐에 따라 사람의 사고방식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옹은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 이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은 멍석말이의 디지털 버전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어느 연구를 인용하는 부분. 1917년 혁명 직후 러시아에는 아직 문자문화를 모르는 농촌 공동체가 남아 있었다. 루리아라는 이름의 언어학자가 그런 마을 중 한 곳에 들어가 그곳 농민들을 상대로 필드 워크(현지조사)를 했다. 연구의 결과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아직 구술문화 단계에 있는 농민의 사고방식은 문자문화에 속한 이들의 것과는 주목할 만한 차이를 보였다.

    추상과 구체

    구술문화에 속하는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추상’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해머·톱·나무·손도끼 등을 보여주며 공통점을 말하라고 했더니, 그 마을의 사람들은 ‘연장’의 개념을 떠올리지 못했다. 대신에 이런 식으로 대꾸했다고 한다. “톱은 나무를 썰고, 손도끼는 통나무를 가르죠. 굳이 내게 어느 한쪽을 버리라고 하면, 손도끼가 될까? 톱은 여러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사물을 ‘정의’하는 것도 구술문화에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무’가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요구하자, 그들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어째서 그래야 하죠? 나무가 어떤 것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거든요. 누구도 나한테서 그런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되거든요.” 나무를 두 단어로 ‘정의’해보라고 요구하자, 그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두 단어로요? 에, 사과나무·느릅나무·포플러나무가 되려나?”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서구 활자 문명을 선도한 구텐베르크.

    우리의 삼단논법의 형식논리도 그들에게는 낯선 사고였다. “눈이 있는 북극지방에 사는 곰은 모두 흰 빛깔을 하고 있습니다. 노바야젬블라는 북극지방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눈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곰은 어떤 색깔을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묻자, 농민들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 까만 곰이라면 본 일이 있습니다만, 다른 빛깔을 한 것은 본 일이 없거든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개인과 집단

    우즈베키스탄의 농민들은 제 자신을 분석하는 데도 곤란을 느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들은 인격을 기술하는 대신 자신의 신상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우츠그루간 출신이죠. 무척 가난했고 지금은 결혼해서 자식도 있어요.”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너무나 구체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땅이 좀더 있어 보리농사를 지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평가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사람이 있지요. 침착한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등. 당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우리는 똑바로 하고 있어요.” 여기서 자기에 대한 평가는 집단에 대한 평가(“우리”)로 조정되고, 거기서 다시 예상되는 타인의 반응으로 환치된다. “만약 우리들이 나쁜 놈이라면 아무도 우리들을 존경하지 않겠죠.”

    자기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철학에서는 흔히 ‘반성’이라 부른다. 반성적 사유 역시 구술문화에는 낯선 것이었다. 가령 “당신의 성격은 어떻습니까?”라는 물음에 농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기의 성격은 이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딴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이라면 나에 관한 것을 당신에게 여러 가지로 말해줄 것이니까요.”

    공동체의 부활

    그 언설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라거나, 그 인격이 개성적이기보다 집단적이라거나, 혹은 그 의식이 반성적이기보다 의타적이라는 것. 이 모두는 본디 구술문화에 속하는 특성들이나, 우리는 이것들을 우리의 인터넷 공간에서 너무나 자주 본다. ‘개똥녀’를 비롯하여 인터넷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은 논증과 증거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사법체계 이전의 현상, 즉 그 옛날 촌락공동체에서 행해지던 멍석말이의 디지털 버전이다.

    서구에서 문자 사용의 보편화와 농촌공동체의 몰락은 아득한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문자문화의 일반화는 최근 60여년의 현상이고, 급속한 도시화는 최근 30여년 사이의 현상이다. 한국인들은 아직 산업사회 속에서 고립된 개인, 냉정한 주체로 살아가는 고독감에 익숙하지 못하다. 구술문화의 사유와 정서를 가진 그들에게 인터넷은 적어도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잃어버린 촌락공동체를 다시 돌려주었다. 그러니 열광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부턴가 인터넷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은 ‘싸이월드’를 생각해보라. 거기에서는 ‘1촌 맺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촌수 따지는 것은 원래 구술문화에 속한 전통사회의 특성이다. 점점 사라져가던 이 촌락공동체의 문화가 오늘날 디지털을 통해 부활하고 있다. 개인과 개인의 만남을 ‘촌수’라는 혈연으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분명히 문자문화 이전의 구술문화에 속한 현상이다.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1450년에 출간된 라틴어 성경.

    하지만 이 구술성을 그저 낙후된 ‘전근대성’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캐나다의 정치경제학자 해럴드 이니스는 ‘커뮤니케이션의 편향’에서 외려 구술문화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 그리스 문명은 문자문화의 도입이 늦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득한 고대에 ‘문자’의 도입은 지식의 독점, 글 쓰는 자들의 전제정치를 가져왔다. 하지만 문자의 도입이 늦어지는 바람에 그리스에서만은 모든 시민이 구두로 정치를 논하는 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문자의 도입과 함께 사람들은 구체적 감각보다는 추상적 사유를 발전시키게 된다. 그리스가 찬란한 조형예술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문자의 도입이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자가 늦게 도입됨으로써 추상적 사유의 발전이 늦어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예술과 같은 형상적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니스는 ‘말하는’ 매체(방송)와 더불어 제2의 구술문화가 도래하기를 희망했다.

    문자 이전과 이후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구술문화, 즉 ‘노사모’라는 사이버 공동체의 덕이다.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최초로 대통령을 인터넷으로 뽑았다. 문자문화 이전의 낙후성이 외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치문화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예술의 경우는? 지금 인터넷을 들어가보라. 카메라폰과 디지털폰,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이용한 사이버 예술이 만개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미 추상적 사유를 넘어 디지털의 형상적 사유를 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