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2

2005.04.26

“원유가 상승, 구조적 이유 있다”

잉여생산 능력 한계로 ‘100달러 전망’까지 등장 … “소비 줄어 안정 찾을 것” 시각도 적지 않아

  • 이준범 /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처 조사연구팀장

    입력2005-04-19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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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인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2004년 1월 국제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천명한 유가 상한선인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28달러를 넘기면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에는 배럴당 38달러를 돌파하여, 1970년대 석유위기 이래 최고 가격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고공행진 끝에 4월4일 급기야 배럴당 50달러를 돌파해 사상 최고가를 보였다.

    지난 1년간의 고유가는 석유 가격 상승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유가 상승이 철광석, 구리, 원당 및 커피와 같은 산업원료와 농산물 가격을 동반 상승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원유 가격과 이들 원자재 가격의 동반 상승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통상 원유 가격 상승은 다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천연가스 가격은 원유 가격 혹은 난방유 가격과 연계되어 있고, 석탄은 석유와 경쟁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정한 시차를 두고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처럼 원유 가격과 함께 에너지와 관련 없는 상품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런 동반 상승이 50년 만에 처음 발생한 일이며, 조선·자동차 등 원자재 사용량이 많은 기업들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 장기 강세 상황은 여러 요인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수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미국과 중국의 석유 수요가 예상 밖으로 강력한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의 경우, 2003년에는 전년 대비 27만 배럴이 증가했으나 지난해에는 두 배 가까운 50만 배럴이 증가했으며, 2004년 중국의 소비 증가는 미국보다 훨씬 큰 86만 배럴을 기록했다. 이 두 나라는 지난해 전 세계 석유소비 증가의 절반(136만 배럴)을 차지했는데, 이는 2003년 전 세계 석유소비 증가분 82만 배럴보다 훨씬 많은 물량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투기자금의 석유시장 준동도 유가 강세에 한몫

    공급 측면에서는 OPEC 국가들의 석유공급 조절을 꼽지 않을 수 없다. OPEC은 2004년의 강력한 세계석유수요 증가에도, 공급 물량을 대폭 늘리는 데 매우 인색했다. OPEC은 자신들의 공급 정책 실수에 의해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이하로 폭락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난해 5차례의 회의를 열었지만 석유생산을 평균 190만 배럴 증산하는 데 그쳤다.



    이런 OPEC 정책의 이면에는 소속 국가들의 심각한 재정적자가 도사리고 있다. OPEC 각국은 장기간의 국제유가 안정에 의해 석유판매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실례로 고유가였던 70년대와 80년대 OPEC 국가 국민들의 1인당 석유판매 수익은 1691달러였지만, 2004년 판매수익은 고작 530달러에 불과했다. 이 결과 OPEC 국가들의 재정적자는 심각해졌고, 고유가를 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안정적 석유 수급과 관련된 정치적 환경 악화도 국제유가 강세에 일조했다. 90년대 국제석유 공급의 정치적 환경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전략적 관계에 기초했다. 사우디의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통한 세계 경제 기여와 미국의 대(對)사우디 군사 안보 제공이라는 ‘석유와 안보의 교환관계’가 잘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양국 관계는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9·11 테러 가담자의 다수가 사우디 국적 보유자였고, 미국의 강력한 테러세력 응징 정책에 사우디가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한 결과, 양국 간의 ‘석유-안보 교환관계’는 사라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이라크 내정 불안 지속,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관계 등 국제정치 환경은 원활한 석유 공급에 우호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석유 수급상의 문제와 불안한 정치적 환경에 편승한 투기자금의 준동도 국제유가 강세에 한몫하고 있다. 90년대부터 석유는 과거와는 달리 국제금융자금의 투자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국제금융시스템이 잘 발달한 미국과 영국에는 석유가 금융상품의 거래 대상으로서 선물시장에 상장돼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는 금융자금, 특히 투기적 기회를 노리는 펀드들이 쉽게 석유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2000년부터 석유수급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면 일시에 대규모 투기자금이 유입돼 국제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국제유가 중 배럴당 10달러 정도가 투기자금에 의한 상승이었다는 보고도 있다.

    최근 국제유가 강세가 과거와 다른 또 하나의 특이점은 국제유가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이다. 그 변화의 핵심으로 산유국의 잉여생산 능력 한계가 거론되고 있다.

    통상 국제유가는 산유국의 잉여생산 능력이 풍부할 때 약세를 보였다. 그런데 소비국의 수요 증가에 대응한 산유국의 생산 확대로,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잉여생산 능력이 거의 소진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잉여생산 능력 보유국인 사우디의 경우, 통상 150만~200만 배럴의 잉여생산 능력을 보유했지만, 지난해의 경우 65만 배럴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는 사우디의 잉여생산 능력이 실질적으로 소진된 것을 의미하며, 사우디 상황이 이 정도면 여타 산유국은 불문가지라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잉여생산 능력 확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의 국제유가 강세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순히 ‘강세’라는 표현 그 이상을 사용하며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4월 초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전망’을 내놓아 국제석유시장에 큰 충격을 던진 골드만삭스는 현 국제유가에 대해 ‘초강세(super-spike)’라는 언급을 했다. 공공기관인 국제통화기금(IMF)도 ‘영구적인 석유공급 충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현 국제유가가 심상치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반면 현 상황이 크게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장기 고유가가 주요 석유 소비국들의 석유 수요를 위축시켜 국제유가는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석유 수요가 2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고 OPEC 국가들이 원유생산 시설을 늘리고 있는 점을 들어, 현 상황을 ‘우려는 되지만 (석유공급 위기로) 놀랄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주간석유정보(PIW)’ 최신호는 중국의 석유소비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 석유회사들이 지난해 10월과 11월 추가적 국제유가 상승을 예상해 원유를 대량 도입했지만 국내 석유제품 가격 결정권을 갖고 있는 중국 정부가 국내 인플레를 우려해 지난해 8월부터 휘발유, 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동결해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반발한 중국 석유회사들은 국내 석유제품 공급을 줄이고 오히려 수출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중국 정부가 석유제품 가격 인상을 결정할 경우 올 1, 2월에 보였던 중국의 석유 수입 감소현상은 반전돼 국제유가 상승 압박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초강세 유가가 향후 얼마나 지속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70년대 국제석유공급을 좌지우지했던 전 사우디 석유장관 야마니는 오래전 “고유가 다음에는 반드시 유가 폭락이 온다”는 말을 했다. 문제는 고유가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냐는 점이다. 경험이 풍부한 야마니도 이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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