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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명품인간과 짝퉁인간

  • 최윤희 / 카피라이터

명품인간과 짝퉁인간

명품인간과 짝퉁인간
얼마 전 만난 광고회사 후배는 온몸을 완전 명품으로 휘감고 나타났다. 20만원짜리 셀린느 넥타이, 25만원 아르마니 와이셔츠, 35만원 베르사체 지갑, 20만원 구찌 벨트, 300만원 까르띠에 산토스 시계, 250만원 랑방 신사복, 50만원 페라가모 구두…. 매달 월급의 35%를 아낌없이 명품 구입에 쓴다는 그는 명품 예찬론자였다. 명품은 별로 유행을 타지 않을 뿐 아니라 한번 사면 오래 쓰기 때문에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명품 알기를 우습게 알고 짝퉁만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도 가했다. 자기 같은 명품족들이 있기에 한국 브랜드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글로벌 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친절한 보충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무식하게 물었다. “아니, 사람 한 명 ‘달랑’ 움직이는 데 ‘물경’ 700만원씩이나 들었단 말야?”

물론 명품 소비도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요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했기에 국산 브랜드의 고급화가 빨리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현실을 무시한 명품 선호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연봉의 35%를 미래를 위한 저축, 자신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오직 명품 구입에 사용한다는 것은 내 생각에 분수를 모르는 ‘오버’였다.

삶에 최선 다하는 ‘명품’ 나쁜 짓 일삼는 ‘짝퉁’

자나깨나 명품만 밝히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 친구도 있다. 물론 일이 잘 풀릴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거의 도산 직전임에도 그의 명품 선호는 왕성해지기만 했다. 초라하게 다니면 사람들이 무시할 뿐 아니라 사업자금도 빌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보란 듯이 외제 대형차를 몰고 다니고 패션도 비싼 외제 명품을 사 입는다고 했다. 결국 그는 부도가 났고 신용불량자 명단에 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자기 경제력에 따라 명품이냐, 짝퉁이냐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현실을 망각하고 오버한다면 반드시 후회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인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남의 시선에 얽매여 살기 쉽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나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이 내 인생의 주 테마였다. 머리 모양을 바꾸고 싶어도 남의 시선이 먼저 신경 쓰였다. 옷을 입는 데도 남의 평가가 가장 두려웠다. 남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그러나 이제는 ‘절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이면 충분하다. 머리도 내 스스로 자른다. 예전의 나는 미용실에서만 머리를 자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요즘은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일정 때문에 그보다 일찍 문을 닫는 미용실에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머리를 청학동 총각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불현듯 어느 날 가위를 들었다. 최악의 경우 민머리밖에 더 되겠는가? 머리를 잘라보니 뜻밖의 즐거움이 있었다. 내 맘대로 자를 수 있다는 것이 짜릿했다. 머리가 꼭 반듯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비뚤비뚤한 것이 차라리 개성적이었다. 방송국 대기실에서 잠깐 만난 우리나라 톱 모델 이희재 씨가 내 머리를 보고 격찬을 했다. “어머, 너무 멋있어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나는 까르르 뒤집어졌다. 소가 뒤로 자빠지다가 파리 잡은 격이네?

나는 명품은커녕 짝퉁도 안 사 입는다. 길거리 리어카에서, 또는 아웃렛(상설 할인 판매점)에서 그것도 파격세일할 때 사 입는다. 싸구려 브랜드라서 부풀이 일어나면 TV 보면서 뜯는 재미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강의할 때 해주면 사람들은 박수를 쳐준다. “맞아요, 맞아!”

나는 명품으로 전신을 휘감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인간명품’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명품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겠다.

최근에 영화 ‘말아톤’과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딱 하나다. ‘말아톤’의 주인공은 장애인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행복을 ‘제작생산’하는 명품인간이다. 그러나 ‘주먹이 운다’의 주인공은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 나쁜 짓만 일삼는 짝퉁인간이다.

재미교포 이승복 씨도 빼놓을 수 없는 명품인간의 대표선수다. 여덟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서툰 영어 때문에 친구들에게서 놀림을 받았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 선수가 되면 나를 무시하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체조선수가 될 것을 결심하고 맹훈련에 돌입한다. 그러나 추락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만다. 혼자 힘으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놀랍게도 의사가 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존스 홉킨스 병원의 재활의학과 수석전공의가 되었다.

현재 미국 전 지역에 장애인 의사는 딱 두 명이라는데 한국인 이승복이 바로 그 주인공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부모님까지도 자신을 포기했지만 자기 자신만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방긋 웃었다. 그 웃음이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을 높이는 진짜 ‘명품인간’의 자격증은 아닐까?



주간동아 2005.04.19 481호 (p92~92)

최윤희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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