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0

2005.04.12

아주 특별한 어머니의 여행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4-08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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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특별한 어머니의 여행
    영화 ‘엄마’의 설정은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어지럼증 때문에 차를 타지 못하는 노모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나 결혼식이 열리는 목포까지 4박5일간 도보 여행을 떠난다.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차로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내연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전의 길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갑자기 길어진 여로는 삶을 마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한 사람에게 과거를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엄마’는 고두심이라는 훌륭한 배우에게 또 다른 연기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손병호나 김유식, 이혜은, 최정안 같은 배우들도 영화와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 확신을 갖고 성실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엄마’의 장점은 여기에서 끝난다.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그것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배우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그냥 진부하고 평범하며 서툰 영화로 남는다.

    문제는 많다. 예를 들어 감각이나 경험이 풍부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양의 코미디를 쏟아 부은 건 엄청난 실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서툰 코미디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화가 제1 주제로 삼은 ‘어머니’와 ‘모성’이라는 단어에 있다. 영화는 그렇지 않아도 일반화와 동어반복에 빠질 수 있는 이 단어들에 아주 작정하고 매달렸다. 그렇다고 영화가 여기에서 새롭거나 깊이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매달릴 뿐이다.



    그 결과 영화의 드라마와 캐릭터는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개성적이고 독립된 개체로 그려져야 마땅한 주인공이 어머니와 모성을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건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편견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작법의 문제다. 흐릿한 관념만으로는 생생한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고 싶다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캐릭터에 부여해야 한다.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가상의 영화를 끌어들이며 대상이 되는 영화를 비판하는 건 그렇게 공정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엔 가상의 영화를 가져와 비교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한 번 생각해보시길.

    어머니라는 명칭과 가족 관계의 복잡한 굴레 속에 갇혀 자기 이름마저도 잃어버린 한 사람의 여성이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4박5일의 도보 여행을 하는 동안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과 이름을 되찾는다. 그리고 여행의 종착지에 다다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당당한 자유인이 되었다. 물론 딸의 결혼식장을 찾아서.

    이것이야말로 쓸 만한 영화가 되지 않았겠는가.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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