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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난나의 실글&징글

봄처녀, 결혼을 꿈꾸다

봄처녀, 결혼을 꿈꾸다

봄처녀, 결혼을 꿈꾸다
노처녀 가슴에도 봄이 찾아온 걸까. 주말을 이용한 소개팅 자리에서 ‘필이 꽂혀버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누드부터 떠올린다는 남자들의 반대편에서 나는, 그 남자에게 상상의 연미복을 입혀보기 바빴다.

야호! 올해와 내년에 결혼 수가 있다더니, 정말 용하게 들어맞는구나. 다니엘 클리버와 농담 몇 마디 나눈 뒤 바로 결혼 피로연의 수줍은 신부부터 공상하던 브리짓 존스의 꼴이라도 어떠랴. 참한 남자가 씨가 마른 상황에서 희망은 오직 ‘한참 연하’와 외국인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근사한 남자를 만났으니, 뭔가 분주해져야 할 것만 같은 다급함이 든다.

오랜만에 들떠 있는 나를 본 친구들의 반응은 먼저 ‘정상적인’ 남자인지부터 따져보라는 것이다. 삼십대 중반을 넘은 남자가 흠 없이 멀쩡해 보이는 건 태풍 전야의 고요와도 같다나. 이혼을 했거나 경제 사정이 바닥을 기는 그럴듯한 사연 때문이 아니라, 성격 문제로 결혼이 늦어진 거라면 손쓰기 어렵다나. 수학적 통계를 들먹이며 ‘게이’ 또는 성기능 장애일 가능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끼어든다. 후배로서 오래 지켜봤다는 소개팅 주선자가 나서서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자 이제는 내 편에서 결혼에 적합한 인물인지 스스로를 점검해볼 차례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나 내가 유지해온 경력 모두 잘 추스르며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골치 아플 문제가 뭐 있겠어?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맹랑한 결론에 앞다투어 나선다. 이 봄, 유난히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긴 하다. 경기가 풀려 관련 행사도 많은 김에 결혼을 결심했다거나 “30대 초반의 싱글까지는 그럴싸해도 30대 중반은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는 친구들 모두 겨울 날씨가 풀리던 즈음 결혼을 준비하게 된 경우다. 결혼은 곧 비용이란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혼수와 예물, 결혼식 및 신혼여행, 신혼살림의 견적을 내보기 시작한 내가 한심하다며 아우성이다.

신부의 경우 결혼 비용을 평균 3000만원 정도 잡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어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친구들을 ‘족쳐’ 적나라한 내용을 살피니 어림도 없다. “나이가 들어버린 처지”라 마냥 가볍게 시작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한숨 섞인 설명들이다. 아무리 간소하게 하자는 합의가 있었더라도 뒤탈을 생각하면 빠질 것 없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 십년지기 회계사 친구와 결혼하는 후배는 소박하고 합리적인 결혼을 위해 힘쓰다 5000만원을 넘기는 선에서 어렵게 결정해야 했고, 1억원이 넘는 적금을 준비해두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던 친구는 결국 ‘서로 편하기 위해’ 어머니와 강남권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한 살이라도 적은 나이에 결혼했으면 부담도 그만큼 적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으니, 나의 불안한 프리랜서 생활과 은퇴한 지 오래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앞이 캄캄해진다. 심지어 “결혼은 작업실 보증금 빼서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큰소리치며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던 것이 불과 두 달 전이다. 묵직한 통장이나 안정된 직장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도 힘든 처지에 감히 신부의 미소를 꿈꾼 것이 가당키나 했던가! 결혼을 위해선 오랜 기간 숙성된 준비와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뼈저린 각성에 괴로워하던 차, 행인지 불행인지 소개팅의 상대방은 다음 약속을 청하지 않았다. 주선해준 친구는 낙담한 나에게, 조건 좋고 매력적인 사람인 만큼 따지는 게 많아 더 이상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뒤늦은 고백을 한다. 짧지만 찬란했던 웨딩드레스의 설렘은 빈 지갑처럼 봄 하늘로 날아가버리고, 바야흐로 남의 꽃밭에는 황금빛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다.



주간동아 2005.04.12 480호 (p6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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