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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ㅣ열여덟 아빠, 열일곱 엄마

“아가야, 우리 아가야”

‘애’가 아기 키우기 가시밭길 현실 … 국가·사회 지원 미흡 기댈 곳은 가족뿐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아가야, 우리 아가야”

“아가야, 우리 아가야”

어린 며느리 김영희 씨를 사랑으로 맞아들인 양성환(앞줄 왼쪽), 변화숙 씨 가족. 뒷줄 맨 왼쪽이 김영희 씨, 그 옆이 남편 양재필 씨다.

대구시 상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양성환(53), 변화숙(51) 씨 부부에게는 올해 갓 스무 살이 된 어린 며느리가 있다. 양 씨 부부가 며느리 김영희 씨를 맞아들인 것은 3년 전. 17세이던 김 씨가 외아들 재필(21) 씨의 아이를 가진 때문이었다.

“영희가 우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고3 학생이던 아들이 영희와 사귀는 게 솔직히 맘에 들지 않았죠. 그런데 설상가상, 임신했다는 고백을 하더군요.”

어머니 변 씨는 “아들이 워낙 고지식해서 그런지 처음부터 (아기를) 지울 생각은 하지 않더라”고 했다.

“화가 났지요. 속도 많이 상하고요. 하지만 생명은 귀한 것 아닙니까. 그 앞에서는 어떤 벽도 다 소용없어지더라고요. 순리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변 씨는 “혹 너무 어린 나이에 하는 결혼이라 나중에 한쪽 맘이 변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며 “하지만 뒷일은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 쓸데없이 미리 머리 쓰면 오늘의 기쁨을 못 나누게 된다”고 덧붙였다.



양 씨 가족은 영희 씨의 힘든 임신·출산 과정을 사랑으로 함께했다. 산후 몸조리를 맡아 했음은 물론이다. 변 씨는 “며느리가 아니라 딸 하나가 더 생긴 것”이라며 “철은 없지만 무엇이든 ‘예’ 하고 따르는 착하고 애교 많은 아이”라며 며느리 자랑을 한껏 했다. 또 “생후 14개월 된 손녀가 너무 예쁘다. 우리 부부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이라며 즐거워했다.

청소년 성상담 기관 “낙태·입양 권할 수밖에…”

재필 씨는 4개월 전 군대에 갔다. 일본으로 요리 유학을 떠나려던 학창시절 계획은 결혼과 출산으로 제대 뒤로 미루게 됐다. 입대 전 이들 부부는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하고 혼인신고도 마쳤다.

“아가야, 우리 아가야”

씩씩한 엄마(오른쪽)와 그 딸(왼쪽)의 이야기를 담은 미국 인기 드라마 ‘길모어 걸스’.

영희 씨의 생활은 재필 씨가 있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시부모와 손위 시누이 모두 그를 ‘영희야’라고 부른다. 16세인 손아래 시누이와는 친구처럼 지낸다. 손위 시누이인 양정원(24) 씨는 “친동생이랑 똑같이 대한다. 청소 안 하고 놀면 큰소리로 나무라기도 한다. 부모님은 영희가 실수해도 늘 너그럽게 감싸주시는 편”이라고 말했다.

양 씨 가족의 사례는 10대 부부가 안정적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가족의 따뜻한 배려와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 부부의 강한 책임감이며 서로에 대한 애정이다. 미혼모나 미성년 가정에 대한 국가·사회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어린 부부들이 기댈 곳은 가족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린 엄마’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다. 때문에 청소년 성상담 기관에서는 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낙태를 권한다. 한 청소년상담소 상담팀장은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하면 솔직히 말린다. 은근히 입양을 권할 수밖에 없다. 또 10대 임산부의 상당수가 빈곤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 자녀라 여건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10대 남녀가 아기를 직접 키우려면 먼저 호적 정리부터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적 혼인 가능 연령은 남자 만 18세, 여자 만 16세다. 다만 만 20세 미만일 때는 양쪽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부모가 이혼을 했을 때는 친권자의 동의로 가능하다. 그러니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려면 양가의 동의부터 받아야 한다.

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그러나 대개는 양쪽 집안 다 법적 혼인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아기 부모의 의지가 강하다면 차선책은 둘 중 하나가 단독 호적을 만들어 거기에 입적시키는 것”이라 말했다. 만 17세가 되면 단독 호적 작성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미혼모 시설인 ‘에스더의 집’ 조숙경 상담사는 “이때 아기 아빠나 주변에서 여자 쪽 호적에 아기를 올릴 것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 모자 가정 지정을 통해 생계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지시설 측은 이왕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면 어머니보다 아버지 호적에 올리도록 조언한다. 조 상담사는 “그렇지 않으면 가출을 하는 등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방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기 아빠 또는 엄마의 ‘동생’으로 호적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역시 전문가들은 적극적으로 만류한다. 박소현 상담위원은 “‘시댁’ 자녀가 되면 어머니로서의 친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다. 어느 쪽에 올리건 아기 부모의 책임감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혼모 시설 측은 아예 한동안 아기의 출생신고 자체를 미룰 것을 권하기도 한다. 마음이 바뀌어 입양을 시키려 할 때는 호적이 없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10대 남녀들이 “처음 생각과 달리 힘들어 도저히 못 키우겠다”며 아이를 도로 데리고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조치를 하건 어린 부모, 특히 10대 엄마가 혼자 양육을 책임질 경우 국가나 사회의 지원을 받을 길은 거의 없다. 현재로선 보건복지부의 ‘중간의 집’(양육을 원하는 미혼모와 아기를 일정 기간 보호하는 시설) 지원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측은 “현재 전국에 9곳의 ‘중간의 집’이 있고, 각 시설당 5쌍의 미혼모-아기들이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자 수를 다 합쳐 90명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늦어도 오는 6월까지 미혼모 관련 업무는 여성부를 확대 개편한 여성가족부로 넘어가게 된다. 서울시 여성복지연합회 관계자는 “그나마 보건복지부 예산이 많은 편이었는데 여성가족부로 넘어가면 지원 확대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서구 사회에서도 힘든 일 … 자긍심 가져야”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 부산대 김상용 교수(법학)는 “우리나라는 자녀 양육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개인 대 개인의 것으로 맡겨놓았다. 생부에 대한 양육 책임 부과 법령도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독일의 경우 미혼모가 국가에 신청하면 사법보좌인을 붙여 양육비 등 각종 법률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 생부를 찾아 국가가 미리 지불한 양육비를 받아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생부가 재산이 있으면서도 양육비 지급을 회피하면 법정모독죄, 경범죄 등을 적용해 형사 처벌한다. 영국은 미혼모의 신청이 있으면 아동보호국이 산정한 양육비를 주 행정장관이 나서 집행한다. 재산이 있으면서도 양육비를 내지 않으면 역시 형사 처벌을 한다.

10대 부모와 관련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국가와 지역사회가 나서 이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미국의 여러 도시에는 10대 부모를 위한 대안학교가 있고, 이들이 수업을 받는 중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아기를 봐준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웰페어(정부생계보조금)를 받는 10대 어머니들에게 출산 직후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복학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학업을 포기하면 극빈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외국과 우리나라가 크게 다른 점은 10대 부부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다. 미국에서는 10대의 결혼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며, 프랑스·필리핀 등 그외 나라들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로 죄악시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TV 채널 ‘온스타일’을 통해 방영 중인 미국 드라마 ‘길모어 걸스’는 16세에 임신한 여성이 혼자 힘으로 딸을 양육하고, 그래서 다시 16세가 된 딸과 아름답고 확고한 관계를 꾸려가는 이야기를 밝고 활기차게 그려 5년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청소년 성 상담가 구성애 씨는 “그러나 개방적인 서구 사회라도 10대 남녀의 자녀 양육은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10대면 양육은커녕 자기 정체성조차 확립이 안 된 때잖아요. 자기 실현 욕구도 강한 만큼 매사가 힘들지요. 특히 아기 아빠와는 80% 이상이 결국 헤어지게 되고요.”

구 대표는 “이왕 아기를 낳아 키우기로 결정했다면 부모 스스로가 당당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의 생명을 존중해 가시밭길을 택한 자신에게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또 사회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4.12 480호 (p46~48)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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