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9

2005.01.18

경보기 도입 사업 열기 ‘후끈’!

한국 EX 사업 따내기 보잉 vs IAI 대결 볼 만 … 보잉은 경보기 제작 심장부 공개 선수 쳐

  • 시애틀 볼티모어=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5-01-13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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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보기 도입 사업 열기  ‘후끈’!

    보잉 측은 경보기 내부에 설치하는 콘솔과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공개했다.

    2002년 약 4조원의 예산으로 40대의 전폭기를 확보하는 FX 사업을 시작할 당시 정치권과 언론은 지나칠 정도로 달아오른 바 있다. 반면 2조~3조원의 예산으로 4대의 경보기를 도입하는 EX(경보기) 사업이 진행되는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경보기는 대당 가격 면에서 한국 공군이 보유할 항공기 중 가장 값비싼 항공기가 될 텐데, 정치권과 언론은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경보기의 중요성은 전투기 이상이다.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경보기와 데이터링크 시스템이 연결돼 있는 전투기는 그렇지 않은 동급의 전투기보다 주간에는 2.8배(3.0대 8.1), 야간에는 2.6배(3.6대 9.4) 전투력이 강하다. 간단히 말하면 4조원을 들여 40대의 전투기를 더 확보하는 것보다 2조~3조원으로 경보기를 도입하는 것이 전력 증강에는 더 나은 것이다.

    보잉은 세계 최초로 경보기를 만들었다. 1971년 보잉은 4개의 엔진을 가진 대형의 B707기에 회전식 레이더를 올리는 방법으로 최초의 경보기를 제작했다. 이 경보기는 68대가 제작돼 미 공군 34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공군 18대, 사우디아라비아 공군 5대, 영국 공군 7대, 프랑스 공군에 4대가 인도되었다. 미 공군에 납품된 것 중 한 대는 95년 9월22일 알래스카에서 오리와 충돌해 추락했고, NATO 공군이 갖고 있던 한 대도 추락했다. 한 마디로 보잉은 경보기에 관한 한 제작과 추락을 모두 경험한 ‘백전노장’인 것이다.

    세계 최초 경보기 제작 등 경험 풍부

    경험 많은 보잉은 더욱 가벼운 회전식 레이더 개발을 구상했다. 이것이 성공을 거둬 B707기보다 훨씬 작아 단 2개의 엔진만으로도 비행할 수 있는 B767기에 회전식 레이더를 올린 경보기를 제작했다. E767로 명명된 이 경보기는 4대가 제작돼 전량 일본 항공자위대에 납품되었다(1999년). 그런데 바로 이 시기 이스라엘의 IAI는 회전식보다 훨씬 더 가벼운 고정식 레이더를 탑재한 경보기를 개발해 칠레 공군에 납품했다.



    경보기 도입 사업 열기  ‘후끈’!

    부챗살처럼 공중과 해상을 감시하는 보잉경보기.

    이에 자극받은 보잉과 레이더 제작사인 노스롭그루먼은 고정식 레이더 개발에 도전해, B767기보다 훨씬 더 작은 B737기(엔진 두 개)에 고정식 레이더를 올린 경보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2000년 호주(6대), 2002년 터키(4대)에 이 경보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세 번째 시장으로 한국을 공략하고 있다. 그 사이 IAI는 인도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스라엘과 한국 공군 동시 공급을 목표로 도전하고 있다.

    경보기의 생명은 레이더에 있다. 과거의 회전식 레이더는 빙빙 돌아갈 때마다 한 번씩 목표물을 추적했다. 그러나 노스롭그루먼이 제작한 고정식 레이더는 회전식보다 훨씬 빨리 전파를 쏜다. 그러다 뭔가 수상한 것이 포착되면 부챗살처럼 360도로 퍼져나가던 전파의 출력을 줄이고, 대신 수상한 존재가 있는 방향으로 강하게 전파를 쏴 단숨에 정체를 파악해버린다. 그리고 ‘잡아야 한다’고 판단되면 아군 전투기와 방공미사일 기지에 알려 요격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보기 도입 사업 열기  ‘후끈’!

    호주공군에 제공하기 위해 제작 중인 경보기 내부 모습.

    노스롭그루먼이 만든 고정식 레이더의 이름은 MESA(Multirol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다기능 전자주사 배열’). 노스롭그루먼 측은 “MESA는 항공기나 크루즈 미사일뿐만 아니라 바다에 떠 있는 함정도 추적할 있다”고 밝혔다. 작고 빠른 항공기를 추적하는 레이더로 크고 느린 함정을 발견하는 것은 일도 아닐 터인데 노스롭그루먼은 왜 이를 자랑하는 것일까.

    하늘에서 봤을 때 바다는 거대한 반사판이다. 바다를 향해 쏘는 전파는 전부 수면에 반사되므로 함정을 발견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 따라서 함정을 찾는 레이더는 허공을 수색하는 레이더와 달리 수면 반사를 지워주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공대함용 레이더는 성질이 다르므로, 미국과 한국 해군은 P-3C로 대표되는 별도의 초계기를 운용하는데 노스롭그루먼의 MESA는 이 두 기능을 다할 수 있다고 하니 가벼이 넘길 수 없다.

    미래 대비한 확장성 갖춰

    경보기가 있어 적을 빨리 발견하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적(敵)은 이 장점을 역이용해 단숨에 무력화할 수도 있다. 한꺼번에 수백대의 전투기를 띄워 집단으로 공격해오는 것이다. MESA 레이더에 수백개의 점이 나타나면 경보기 요원들은 이를 긴급히 지상 기지로 알려줘야 하는데 이를 무선(無線)으로 한다면 경보기 요원 수도 수백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반드시 실수가 일어난다. 수백명의 요원 중 일부는 맨 앞에 오는 적기를 가장 위험한 것으로 보고 똑같은 정보를 지상기지로 날린다. 그에 따라 여러 대의 아군기와 미사일이 맨 앞에 오는 적기를 공격하는 ‘중복사격’ 현상이 발생한다. 반면 몇몇 적기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공격을 당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려면 경보기와 지상기지, 그리고 전투기와 방공미사일 사이에 컴퓨터가 중심이 된 데이터링크 시스템이 설치돼 있어야 한다. 데이터링크 시스템이 있으면 무선 통신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에 ‘한 대의 적기에 대해 단 한 발로 대응’하는 경제적인 방어망이 구축된다. 따라서 경보기에는 고정식 레이더 이상으로 데이터링크 시스템이 중요하다.

    한국이 도입하려는 경보기에는 데이터링크 시스템이 탑재돼 있다. 새로 도입하는 F-15K에도 데이터링크 시스템이 깔려 있으나 KF-16을 비롯한 다른 전투기에는 깔려 있지 않다. 따라서 EX 사업과 별도로 공군은 KF-16 이하의 전투기에 대해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깔아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경보기 도입 사업 열기  ‘후끈’!

    보잉 공장에서 수리를 받기 위해 와 있는 NATO 공군 소유의 회전식 레이더 탑재 경보기와 호주로 인도될 고정식 레이더 탑재 경보기(오른쪽). 한국에는 호주 경보기와 같은 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 공군의 주력기인 KF-16은 JDAM을 달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도 갖고 있다. KF-16 도입 당시에는 JDAM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KF-16에 JDAM을 탑재하려면 내부 개조를 해야 하는데 KF-16의 컴퓨터는 용량의 상당 부분이 차 있는 상태고, KF-16의 기체 또한 JDAM 발사 시스템을 달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KF-16이 직면한 공간 문제는 경보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보잉 경보기는 새로 나올 장비나 프로그램을 탑재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다. 보잉사 경보기에는 10개의 콘솔이 탑재되는데 각각의 콘솔 용량에는 여유가 있으며 새로운 콘솔을 설치할 공간도 있다.

    경보기는 한 번 이륙하면 8시간 이상 비행하게 된다. 항공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요원들을 고려해 보잉은 휴식공간까지도 확보해놓았다. 생체 리듬까지 고려해 공간을 만들다 보니 보잉의 경보기는 상대적으로 비싸졌는데, 이것이 한국 공군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기자는 이러한 사정을 염두에 두고 보잉 측에 “한국의 민간 항공사는 많은 B737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중고 B37기를 경보기로 개조해줄 수는 없는가”라고 물었다. 보잉 측은 “고정식 레이더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내부를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한다. 중고 B737기를 토대로 경보기를 만들면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들고 성능도 보장하기 힘들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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