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5

..

농협공제, 왜 미운 털 박혔나

생보업계, ‘보험’ 명칭 사용에 반발 ‘법적 대응’… 실상은 ‘특혜(?)’ 속 밥그릇 키우기에 대한 견제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5-13 15: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농협공제, 왜 미운 털 박혔나

    2003년도 ‘농협보험’ 연도대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정대근 농협 회장(위). ‘농협 보험’ TV CF의 한 장면.

    ”왜 자꾸 ‘보험’이란 용어를 쓰나.”(생명보험업계)

    “보험을 보험이라 하는 게 뭐가 잘못인가.”(농업협동조합중앙회)

    생명보험(이하 생보)업계와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농협) 간 다툼이 전면전으로 격화되고 있다. 논쟁의 시작은 지난해 3월, 농협이 공제(유사보험)사업 부분 명칭을 ‘농협생명’ ‘농협화재’로 바꿔 대대적인 광고에 나서면서부터. 농협 측은 “공제라는 용어가 보험과 바로 의미 연결이 되지 않아 광고 효과 극대화를 위해 취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생보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보험업법 8조에는 보험사업자가 아닌 자가 그 상호 또는 명칭 중 보험사업자임을 표시하는 문자를 사용치 못하도록 명시돼 있다. 농협공제의 움직임은 명백한 위법 행위이므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다툼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개입(농림부에 ‘농협생명’ 명칭 사용 중지 지도 요청)으로도 해결되지 않아, 지난해 9월 대한생명 등 국내 23개 생보사가 서울지방법원에 ‘표장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를 법원이 기각하고 농협이 보란 듯 다시 ‘농협생명’의 대대적 홍보에 들어가자 지난 3월8일, 생보업계는 결국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본격적인 법정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방카슈랑스 전면 허용과 같은 특혜”

    농협공제, 왜 미운 털 박혔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 교보생명, 대한생명 사옥(왼쪽부터).

    일반인이 보기엔 ‘그게 뭐 어때서’ 싶은 용어 사용 문제로 양측이 격전을 벌이는 이유는 그 속에 숨은 뜻 때문이다. 2003년 12월 현재 농협의 공제사업은 전체 생보시장의 9.3%를 차지하고 있다. 수입보험료만 6조3800억원.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에 이어 업계 4위다. 5위 또한 민영이 아닌 정부(정보통신부)가 직접 운영하는 우체국보험이다. 시장점유율 8.8%, 수입보험료 5조9000억원에 이른다.

    농협공제와 우체국보험은 이렇듯 큰 시장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의 감독과 검사를 받지 않는다. 보험업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금융기관이기보다는 (공제)조합으로서 각기 농림부와 정보통신부의 관할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은행과 마찬가지 일을 하며, 동시에 보험상품을 직접 개발·판매하는 사업까지 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호받고 있다.

    결국 ‘보험’ 용어를 둘러싼 공방은 농협공제의 생명보험시장 잠식에 대한 민영 생보업계의 위기감, 농협공제가 받고 있는 ‘사실상의 법적 특혜’에 대한 반발 등이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생보협회 측 인사는 “우체국보험도 같이 문제삼고 싶으나 관련법에 ‘우체국보험’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는 데다, 정부가 직접 하는 사업이라 아무래도 껄끄러워 일단 거론치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생보업계가 주장하는 농협공제의 구체적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농협이 방카슈랑스 전면 허용과 동일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 증권사, 상호저축은행이 보험사의 ‘판매 대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현행 방카슈랑스의 주 내용. 또 자산규모가 2조원이 넘는 금융기관은 특정 보험사 상품을 50% 넘게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일종의 독점방지 규정인 셈이다. 그러나 농협은 유사 보험상품을 직접 계발·판매함은 물론 자사 상품만을 100% 취급하면서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둘째, 농협은 금감원의 감독 범위 밖에 있어 요율 결정 등에서 상대적 자유를 누리는 까닭에 각종 입찰에서 저가 공세를 펴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 3월 배찬병 생명보험협회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1월28일 행정자치부의 공무원 선택적 복지 관련 입찰 때 농협공제는 삼성생명 등 민영보험사가 제시한 가격의 70% 수준을 제시해 낙찰받았다”며 “농협공제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농협공제, 왜 미운 털 박혔나

    2001년 3월 서울역에서 열린 ‘생명보험 강제 퇴출 저지’ 집회 장면.

    생보협회 측은 “금감원 감독을 받지 않음으로 써 생기는 더 큰 문제는 공제가입자 보호장치가 미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영 보험사는 민원이 발생할 경우 금감원에 설치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서 객관적 조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농협은 자체 운영하는 ‘공제분쟁심의위원회’에서 분쟁을 심의한다. 또 금감원 감독을 받는 생보사와 달리 지급여력 기준, 자산건전성 분류기준, 조기경보제도 등 건전성 감시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의 이면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농협공제가 급격히 성장한 배경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한 생보사 임원은 “생보사들이 금감원의 엄격해진 감독 기준을 맞추지 못해 줄도산하고 외형 성장보다 지급여력 확보에 급급하는 동안, 농협공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물론 방만한 경영을 한 생보사들에 일차적 책임이 있으나 농협이 ‘특혜’ 속에서 어부지리한 것 또한 공정경쟁 보장 및 소비자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악재”라고 주장했다.

    농협 측 “비영리인데 금감원 감독 받으라니”

    이 같은 비판에 대한 농협 측의 반론은 단순명료하다. “농협은 비영리사업체이며 공제사업 또한 비영리다. 그런데 생보사와 같은 기준의 적용을 받으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금감원 감독이 없더라도 농협은 엄격한 내부 감독을 통해 투명성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으며 외부로부터도 이를 인정받고 있다”는 논리다.

    박인희 농협 기획부장은 “가격이 낮은 것 또한 농협이 주주 배당 등을 고려할 필요 없는 조합인 데다, 별도의 인건비 등이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협은 생활설계사 등 직원을 따로 둘 필요 없이 기존 직원이 기존 점포에서 부수적으로 보험상품을 판매한다. 원가가 크게 절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더욱 낮은 가격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는 것 아니냐. 따라서 ‘농협생명’이라는 용어가 소비자에게 혼란과 피해를 준다는 생보사 측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지방법원이 생보사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험학회 소속의 한 대학교수는 “농협공제의 저렴한 가격이 소비자에게 득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또한 농협이 은행업 보험업 등을 함께 영위하며 금감원 감독도 받지 않는 것은 공정경쟁 원칙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 때문에 금감원과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는 몇 해 전부터 보험업법 개정 등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농협, 농림부, 정보통신부는 물론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비영리라고 하는데 지금 농협공제가 조합원들만을 상대로 상품을 팔고 있나. 더 이상 부처 이기주의나 정치적 논리를 방패막이 삼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홍주 성균관대 보험문화센터장은 “장기적으로는 프랑스 농협처럼 보험 부분을 자회사로 분리, 정식 보험업 인가를 받고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생보사의 이득이 아닌 공정경쟁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농협 측 고위인사도 “자회사 분리를 검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많아지다 보니 만일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금감원 감독을 받을 생각도 있다. 그러나 조직 내부의 문제가 만만치 않은 데다, 가격 경쟁력 약화는 물론 농협지점에서의 우리 보험상품 독점판매도 불가능하게 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