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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 | ‘영어 종주국 역전’

미 TV·할리우드서 새 단어 양산 … 영국도 따라하기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mjlee@donga.com

미 TV·할리우드서 새 단어 양산 … 영국도 따라하기

미 TV·할리우드서 새 단어 양산 … 영국도 따라하기
요즘 일본어 인기가 말이 아니라고 한다. 대신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는데, 그 같은 ‘역전’을 불러온 것은 역시 뒤바뀐 양국 경제의 위상일 것이다. 일본 경제가 잘나가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어는 영어에 필적하는 새로운 국제어로 대접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지금은 휘청거리는 일본 경제처럼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중국어와 일본어의 달라진 처지는 어떤 특정 언어가 국제적으로 전파되고 세력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언어 자체의 문화적 가치와 별개로 사회·경제적 요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를 잘 보여준다. 힘 있는 나라의 언어가 언어세계에서도 패권을 차지하는 게 당연한 이치임을 세계사는 경험으로 확인해주고 있다.

지금의 세계 패권 언어인 영어의 세계 정복 과정도 그 같은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어는 16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2류 언어에 지나지 않았다. 영어의 위상이 눈에 띄게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후반 이후다. 이 시기는 영문학자들이 근대영어의 태동기로 보는 시기이기도 한데, 정치·사회적으로는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 시기와 일치한다. 즉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때다. 이 시기 영어의 융성은 두 가지 요인이 바탕이 됐다. 엘리자베스 1세라는 강력한 군주의 등장으로 인한 국운 상승과 때마침 나타난 셰익스피어라는 걸출한 극작가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여왕과 젊은 극작가의 ‘콤비플레이’는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사진)에 잘 나타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쓸 당시 셰익스피어가 사랑에 빠져 있었을 거라는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한 이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자주 극장을 찾는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대단한 연극 후원자로 매주 극장을 찾아 연극을 즐겼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지만 여왕은 퇴폐적인 연극 상연에 반대하는 청교도파의 주장이나, 일요일의 연극 상연을 중지해야 한다는 의회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적극적으로 연극을 옹호한다.



물론 여왕의 연극 보호 의지에는 순수한 예술적 관심뿐만 아니라 치밀한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사형수(아버지 헨리 8세의 둘째 부인 앤 불린)의 딸로 태어나 극적으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으로서는 시민 세력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확보해야 했다. 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흥시민계급과 평민들이 많이 찾았던 극장은 여왕에게 평민들과 접촉하고 자신의 대중적 인기를 높일 수 있는 ‘정치적 무대’였던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셰익스피어의 걸작들은 영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셰익스피어는 무려 2만개 이상의 단어를 새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그 어휘들이 뛰어난 작품들 속에 빛나는 문구들로 녹아 있으니, 이는 영어의 격을 한 단계 높여놓기에 충분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영국 국력의 팽창과 함께 유럽 각지로 전파됐다. ‘정치와 언어의 2중주’였던 셈인데, 이를 통해 영어는 ‘강대국의, 문학적 언어’로 새로이 대접받게 된 것이다.

20세기 들어 영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현상은 영어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의 지위가 역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양국의 뒤바뀐 국력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특히 1920년대 유성영화가 보급되면서 영국영어가 미국영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나온 영어 교재도 자존심을 버리고 미국식 영어를 따르고 있다.

언어학자들은 영어의 강한 전파성의 요인 중 하나로 영어의 ‘잡종성’을 든다. 즉 외세에 침입받고 대외적으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다른 어느 언어보다 개방적인 언어가 됐다는 것이다. 잡종성에서는 이민의 나라 미국을 따라갈 수 없으니 미국이 영어의 새로운 종주국이 되고 있는 건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오늘날 영어는 영국보다 미국에서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단어가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탄생하고 있는 것. 이 신조어들은 특히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그 점에서도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의 전도사인 셈이다.



주간동아 389호 (p85~85)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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