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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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 찌르는 지식인들의 쓴소리

  • 입력2003-06-12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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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곡 찌르는 지식인들의 쓴소리
    계간지 여름호의 시선이 일제히 ‘참여정부’에 쏠렸다. 먼저 ‘문학수첩’이 이창동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 장관 인터뷰와 ‘오늘의 쟁점-문화인의 정치 참여 이대로 좋은가’를 통해 우회적으로 평가에 나섰다. 이장관은 “영화는 창부의 자식”이라고 발언해 화제를 모은 이 인터뷰에서 문광부 산하 단체장 인사를 앞두고 문화예술계 인물난을 지적하는 등 문화계 수장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장관이나 현기영 문예진흥원장 등 진보적인 문화계 인사의 잇따른 정치 참여에 대해 덕성여대 윤지관 교수는 “예술적 성과를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의 정치 참여는 문학이나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자유와 인간 해방의 꿈이 어떻게 현실정치 속에서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능케 한다”며 찬성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서울여대 이숭원 교수는 “모든 문화예술인은 억압을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무정부주의자”라며 정치 참여에 대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6월5일 참여정부 100일에 즈음해 출간한 ‘황해문화’ ‘당대비평’ ‘문학과경계’는 각각 진보, 참여, 민중성 혹은 대중성이란 화두로 노무현 시대를 평가했다. ‘황해문화’는 ‘특집-한국의 진보, 새로운 가치와 양식을 찾아서’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우리의 기대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물었다. 김명인 편집주간은 “노무현 정권이 합리적인 부르주아민주정권에 근접해 있다”고 전제하고 현정권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과도한 실망도 정서적 낭비라고 했다. 특히 진중권은 ‘노무현 시대의 진보’라는 제하의 글에서 정권을 획득하자마자 기득권 집단화하는 노무현 정권의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밖에 전성원의 ‘우리 시대 진보의 고민과 현실’, 이성민의 ‘진보,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오다’는 오늘의 진보진영이 안고 있는 고민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전성원은 노무현 정부에 기댄 개혁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노동자 민중운동 내에서 진보의 헤게모니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와 진보진영의 관계 설정을 ‘함께 가지만 따로 가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당대비평’의 평가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특집-참여민주주의와 참여정부, 그 간격에 대하여’를 마련하며 황종연 편집위원은 노무현 정부가 자칫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현재의 집권개혁 세력은 군부독재와 투쟁한 과거의 정권이 그랬듯이 자기 권력의 정의로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혹시 자신들이 처한 정치의 세계가 진보와 보수, 적과 동지, 선과 악으로 양분된 세계라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런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적 요구에 대한 응답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칫 다수 대중의 삶과 괴리된 정치적 결정을 유발할 우려가 많다.”

    ‘문학과경계’는 노무현 시대에 민중에게 시선을 돌린다. 한국사회는 대립과 갈등을 딛고 더 나은 사회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인가.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의 오일환 연구교수는 “보혁의 갈등적 공존관계는 새로운 통합과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주도하는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학과경계’의 특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대구대 홍덕률 교수의 ‘대구병론’. 홍교수는 ‘지하철 참사로 돌아본 대구와 대구 사람’이라는 글에서 내년 총선의 과제를 일당독재 구조, 수구 이념 일색의 낡은 정치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수준 미달의 무능력한 정치인들의 청산에 두고 대구의 혁신이 곧 한국사회의 거듭나기로 이어질 것을 주문했다. 참여정부 100일,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가. 노무현 시대를 향해 지식인들의 쓴소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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