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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로 갔노라 243km 달렸노라”

‘지옥의 레이스’ 사하라 사막 마라톤 완주기 … “일주일간 나와의 처절한 싸움 이젠 그리움”

  • 사진·‘오아시스’제공 글·손종태 동아일보 광고국 차장runsahara@donga.com

“사하라로 갔노라 243km 달렸노라”

“사하라로 갔노라 243km 달렸노라”

동아일보 깃발을 날리며 사막 한가운데 선 손종태씨(작은 사진).‘지옥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참가자들.

출근 채비를 한다. 말끔히 면도하고 세수도 했지만 어쩐지 거울 앞의 내 모습이 어색하다. 시계는 새벽 5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사하라에서였다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울 시간이다. 오전 6시면 어김없이 들이닥쳐 텐트를 걷어버리는 베르베르인들을 피해 덜덜 떨며 출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훈련을 위해 끊었던 담배를 6개월 만에 피워 문다. 머리가 핑 돌며 허탈감이 밀려온다. 정녕 내가 그곳에 갔다 왔던가.

4월6일부터 12일까지 북아프리카 모로코 서사하라 사막에서 제18회 사하라사막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일주일 동안 220~250km를 완주하는 이 서바이벌 마라톤은 음식과 비상용품을 채운 12kg 안팎의 배낭을 메고 뛰어야 한다. 주최측(프랑스 MDS)이 제공하는 것은 하루 9ℓ의 물과 하늘을 겨우 가리는 수준의 텐트. 나머지는 모두 참가자가 준비해야 한다. 50℃가 넘는 무더위와 심한 일교차, 발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물집, 모래바람 등과 싸우려면 강인한 체력과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 지구 최악의 레이스에 매년 40여개국 700여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한국에서도 이번 대회에 사하라사막마라톤동호회 ‘오아시스’ 멤버 19명을 비롯해 24명의 철각(鐵脚)들이 참가했다. 우리는 4월2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이튿날 모로코 카사블랑카 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국내선을 갈아타고 와자자테에 도착한 것은 자정 무렵. 다음 날 다시 사하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4월5일 사막에서 첫 밤을 보낸 후 텐트촌 일대를 조깅하며 사막의 풍광을 감상했다. 아침식사로 벌꿀과 빵, 치즈 등 ‘열량 덩어리’를 먹으며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이번 대회는 총 243km로 최근 3년 중 가장 긴 코스라고 한다. 코스는 모래언덕과 자갈밭, 구릉, 암석지대, 돌산으로 이어지며 1박2일간 달리는 ‘롱데이’와 42km 풀코스가 필수다.

4월6일 첫째 날: 오전 9시 반 출발선에 섰다. 오늘의 목표량은 25km. 장송곡 같은 샹송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670여명의 다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팽팽하다. 비둘기떼가 하늘 높이 날면서 출발했다. 하지만 출발한 지 10여분쯤 지나자 곧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다.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장비묶음과 보조가방이 덜렁거리고 12kg의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키가 190cm쯤 되는 서양인들의 쭉쭉 뻗은 다리에 주눅이 든다. 첫날 기록은 3시간44분30초. 336등이다. 팀 성적은 46개 팀 중 40위.

12kg 배낭 메고 ‘1박2일’ 뛰고 또 뛰고



“사하라로 갔노라 243km 달렸노라”

거대한 모래능선을 따라 달리는 참가자들(왼쪽). 카메라 앞에서 완주를 다짐한 ‘오아시스’ 회원들. 이번 대회에 총 19명이 참가했다.

4월7일 둘째 날: 오전 8시 반. 또다시 출발을 알리는 공포의 샹송이 들려온다. 오늘은 34km코스. 16km까지 거대한 듄(모래산)의 연속이다. 프랑스인 여성 참가자가 코피를 흘리며 걷는다. 지름길을 개척하려다 더 고생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있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척추가 휜다는 말을 실감하며 또 뛴다. 하염없이 넓은 사막, 거대한 모래산을 넘으며 잠깐 선글라스를 벗고 황금빛 아름다운 사막의 지평선을 기억 속에 담는다. 양말까지 파고든 모래가 물집을 헤집는다. 의료용 반창고로 신발을 둘러싸서 더 이상 모래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모래산을 보며 묵묵히 걷는다. 점심은 걸렀다. 오후 4시인데도 바로 옆 자칭 ‘떨거지팀’ 텐트에는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오후 4시5분 김경기, 김경수씨 연속 골인. 이제부터 물집 터뜨리기에 바쁘다. 끝내 6명이 탈락했다. 레이스를 마치고 텐트에 들어와 보니 김보승씨의 발톱이 덜렁거린다. 해병대 출신인 건장한 체격의 김씨와 ‘광야에서’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싱가포르 최초의 출전자라는 폴(변호사)은 유난히 한국에 관심이 많아 우리 텐트에 자주 놀러 온다. 9월 고비사막에 간다는 말을 듣고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단단히 미쳤구나.

4월8일 셋째 날: 오늘 코스는 38km. 오전 8시45분 출발이다. 모두들 얼굴과 발이 퉁퉁 부어 있다. 저놈의 샹송 소리 때문에 미치겠다. 오늘은 징그러운 듄이 없기를 기대하며 달린다. 7km에서 15km 지점까지 모래폭풍이 분다. 이라크에서 미·영 연합군의 발을 묶은 바로 그 모래폭풍이다. 김경기, 김경수씨가 감기와 발톱 부상이 심한 것 같다. 골인지점에 다다르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사하라의 빗방울, 거기에 눈물이 섞인다. 오늘은 239등을 했고 5명이 탈락했다. 입 안에서는 버석버석 모래가 씹힌다.

의료센터 앞에 참가자들이 장사진을 친다. 다음 날 있을 82km, 1박2일 코스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어깨에 부항을 떴더니 거머리 같은 먹피가 쏟아졌다. 김경기씨가 호랑이기름과 저주파물리치료, 지압으로 치료해줬다.

“사하라로 갔노라 243km 달렸노라”

끝이 보이지 않는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참가자들(왼쪽). 이글거리는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로 무장한 참가자들. 앞줄 왼쪽부터 유지성, 권순덕, 필자, 뒷줄은 강영선씨.

4월9일 넷째 날: 이번 대회의 분수령인 롱데이가 시작됐다. 아침에 김경기, 김보승씨의 구령에 맞춰 유격체조로 몸을 풀었다. 누적기록을 앞당겨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다. 체크포인트(이하 CP)1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좋았는데 CP2에 이르자 지치기 시작했다. 튜브에 든 고추장을 짜 먹으니 조금 힘이 솟는다. 맞바람의 연속인, 기가 막힌 코스였다. 진통제 4알을 삼킨다. 누군가 ‘꼬레, 서울’을 외치며 배낭을 툭 쳐준다. CP3에 이르니 낙타뼈가 널브러져 있다. 그 옆에 네댓 살짜리 꼬마 두 명이 서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이들의 집은 어디일까. 사방 어디를 봐도 집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발톱이 빠지려는 듯 통증이 심했지만 이내 무감각해졌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얼쩡거리지 말고 빨리 달리라고 재촉한다. 미리 알파미(여섯 가지 곡류로 된 동결건조 식량)에 물을 부어놓았다. 다음 CP4에서 먹을 식량이다. 기록 단축을 위해 먹으면서 달린다. 추워져서 긴 셔츠를 겹쳐 입었다. 코피가 터지고 허리 통증이 재발해서 신경이 쓰였지만 안개가 낀 듯 어슴푸레한 왼쪽 지평선이 바다와 섬으로 보일 만큼 환상적이다. CP5에서 분실한 모자를 찾으러 100m쯤 후퇴했다. 사방은 컴컴한 밤,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에 우황청심환을 씹어 삼켰다. 그 사이 몇몇이 나를 추월해 간다. 저들이 정녕 인간인가 의심스러웠다.

‘모래 위의 나날들’ 내 삶엔 어떤 변화가 올까

15시간을 달려 한밤중에 골인했다. 리 오스카의 ‘Before the rain’, 김영동의 ‘어디로 갈꺼나’를 듣는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지옥의 CP6에서 목표지점까지 14km를 앞두고 몇 번이나 울부짖다 넘어졌는지 모른다. 소염진통제를 과용한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져 갈지자로 걷다가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분명히 골인지점에서 발사되는 녹색빔을 쫓아 뛰었는데 헛것을 본 것이다.

4월10일 다섯째 날: 새벽 5시30분. 피곤하지만 그래도 저절로 눈이 떠진다. 새벽 별이 내게 이른다. “어제는 고생을 많이 했다. 이제 돌아가면 이웃에게 베풀고 겸손하게 살라.” 의료텐트 앞에 선 참가자들의 모습은 상이용사 같다. 한 미국인 참가자가 “Never come again!”이라고 외친다. 나는 아무 생각 안 하고 하루 종일 자기로 했다. 오전 9시31분, 박민석씨가 지열의 아지랑이를 뚫고 들어왔다. 오후 2시37분 장지애, 이윤희씨가 들어왔다. 그 사이 총 21명이 탈락했다. 나의 누적등수는 246등.

4월11일 여섯째 날: 롱데이 다음 날이라고 텐트 철거시간을 좀 늦춰준 듯 아침시간이 여유롭다. 오늘 목표지점에 이르면 콜라가 지급될 거라는 소문이 돌아 텐트촌에 잠시 활기가 돈다. 그 사이 배낭이 9kg으로 가벼워졌지만 그만큼 내 몸무게도 준 것 같다. CP1 코스는 지겨운 돌산과 뾰족한 자갈밭이었다. CP2에서 남루한 베르베르인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의 기준이 뭘까 잠시 생각했다. 휴식시간에는 대추야자나무 밑에서 발가락의 물집을 터뜨리며 딸 예린이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 괜히 눈물이 난다. CP3 코스에서 마을을 지나는데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잡아끈다. 사탕이라도 하나 꺼내주고 싶지만 배낭을 내릴 힘조차 없다. 손등에 입을 맞추고 그냥 달린다. 어느새 대회 본부의 하얀 텐트와 참가자들이 머물 검은 텐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다가 실성한 듯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그 순간 안치환의 ‘고백’을 불렀다. 그런데 빤히 보이는 골인지점에 가도 가도 다다르지 않았다. 어라, 또 신기루인가. 500m쯤이라고 생각했는데 거리가 3km는 족히 됐다. 25분을 더 달려서야 골인했다. 5시간27분을 뛰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지열을 뚫고 속속 선수들이 뛰어 들어온다. 귀국하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컷오프 20여분 전인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동료들이 있다. 불안한 마음에 골인지점으로 마중을 나간다. 저녁 8시37분, 드디어 효정씨가 골인했다. 이어 이탈리아인 살바토레가 다리를 절룩거리고 통곡을 하며 골인했다. 조용필의 ‘무정 블루스’와 합창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참, 기타로의 ‘실크로드’도 위안이 된다. 사하라의 마지막 밤, 왠지 잠이 오지 않는다. 내 평생 이곳에 다시 올까. 오늘 끝내 콜라는 지급되지 않았다.

4월12일 마지막 날: 오늘은 22km 코스다. 사막에서의 마지막 밤을 꼬박 새웠다. 새벽 5시37분, 사막의 어린왕자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일어났다. 텐트 철거를 맡은 베르베르인들에게 이것저것 다 줘버렸더니 더욱 홀가분하다. 아침 PT 체조시간에 김보승씨가 해병대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팔각모자, 붉은 티, 붉은 호각. 외국선수들이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몰려들어 야단이다. 뛰다 보니 어느새 마을이다. 곧 이어 타자렌느 시내 아스팔트가 나타났다. 골인지점이 보인다.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 범벅인 흥분 상태에서 방송국 취재팀과 인터뷰를 하고 나니 권순덕씨가 콜라를 한 병 사다 준다.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콜라맛.

내 귀에 울려 퍼진 ‘환희의 송가’는 분명 환청이었으리라. 누군가 ‘코리아 넘버원’이라며 치켜세운다. 종합성적 231위. 전 국가대표 마라토너 안기형 선수(현대모비스)가 종합성적 38위, DMZ 지뢰제거반 팀이 팀 성적 34위를 기록,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물론 오아시스의 한규식 회장을 비롯해 이용호, 이승규, 박재성, 손호승, 강명구, 강호, 유영대, 김보승 … 그들 모두 승자다.

어느 날 신내린 듯 사하라가 나를 불러 그곳에 섰다. 삶의 애증을 지고, 지구촌의 불행을 끌어안고, 한반도의 갈라진 허리를 생각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주간동아 383호 (p68~70)

사진·‘오아시스’제공 글·손종태 동아일보 광고국 차장runsaha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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