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3

2003.05.08

“사스 어 … 어… 억” 중국은 없다?

겉잡을 수 없는 공포 사회 시스템 근본 위기 … 은폐 주도 장쩌민 계열 정치부담 가중

  • 강현구/ 베이징사회과학연구원 박사 191710@hanmail.net

    입력2003-04-30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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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안먼 사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베이징은 지금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으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유학생과 주재원, 사업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포사회도 빠르게 사스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사스의 심각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지난달, 베이징에 사는 한국인 김모씨는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베이징 시내를 헤매야 했다. 찾아간 병원마다 사스 증상이라고 진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3개의 지정병원에만 사스 환자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김씨의 아이는 외국계 병원에서 맹장염 진단을 받고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그러나 김씨는 청구된 의료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비가 무려 한화로 1500만원. 중국 병원이라면 30만원, 중외 합작병원이라면 100만원이면 족할 치료비였다.

    정부 발표·의학적 조치 못 믿어

    올 초 교환학생으로 온 이모씨는 학교로부터 갑자기 귀국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힘든 가정형편에 무리해서 왔는데 몇 개월도 안 돼 돌아가자니 그 비용이 너무 아까웠다. 학교측에 귀국유예를 부탁했지만 학교측은 귀국하지 않으려면 휴학하라고 했다. 이씨는 결국 휴학을 감수하면서까지 베이징에 남는 길을 택했다.

    올해 박사과정을 마칠 예정인 박모씨는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만 귀국하게 할 계획이었다. 위험하긴 하지만 논문발표를 한 달 앞두고 귀국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씨의 굳은 결심은 동북지방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화로 무너지고 말았다. 동북지방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왜 아직 안 나갔느냐. 우리 병원에도 환자가 네 명이나 있지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빨리 나가라”고 충고한 것이다.

    정부의 발표만 믿고 안심하던 한국 교민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대학가에 환자가 발생했다는 풍문이 간간이 들리더니 동네에 197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소독차가 다니고, 아파트 단지마다 출입문 하나만을 남기고 모든 출입구를 폐쇄하더니 급기야 외부인 출입금지 푯말이 나붙었다. 이런 상황은 중국 정부가 사스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 급속하게 악화하고 있다. 동네 약국의 마스크가 순식간에 동이 났고, 사람들은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 곧 재래시장이 폐쇄될 거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베이징 일대 쇼핑센터가 사재기에 나선 시민들로 북새통이라는 소식은 이미 한국에도 전해졌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상황에도 시민들이 공식발표가 아닌 소문으로만 정보를 얻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위기상황을 단계적으로 설정하고 시민들에게 각 단계에 따른 행동요령을 숙지시켜야 하는데도 지금까지 사후조치로만 대응하고 있다. 또 사스 위험에 대한 의학적 조치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실례로 지금 베이징에서 팔리고 있는 마스크는 대부분 전염병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지난주부터 각급 학교에 등교시 병원에서 소독한 마스크를 착용하게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지금 베이징 시내에서 어렵게 구할 수 있는 마스크들은 10겹으로 처리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12겹은 돼야 전염병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홍콩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사스 전용 마스크나 사스 세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대로 소독된 마스크만이라도 공급하는 것이 사스의 확산을 막는 최소한의 조치다. 하지만 베이징에서는 허술하게 만들어진 마스크조차 매점으로 품귀현상을 빚어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부랴부랴 베이징시가 내린 조치라고는 마스크의 상한가를 인민폐 4원으로 정하는 게 전부였다.

    특히 사스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이 대학가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이런 집단생활은 전염병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베이징의 일부 대학만이 휴교령을 내렸을 뿐 대부분 출입을 통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스는 중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사스가 관광, 상업, 교통운수 등 관련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심리적 위축 등으로 인한 투자 위축은 물론이고 무역마찰의 원인으로까지 작용하리라는 전망이어서 중국 경제계 역시 바싹 긴장한 상태다. 사스의 확산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휴일경제’라 일컬어져 온 노동절 연휴(5월1일부터 7일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가 경기침체를 우려해 다시 5일로 단축한다고 수정 발표한 것만 보아도 사스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사스의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중국의 권력층이다. 중국은 사스 발생 초기 은폐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난주 장원캉(張文康) 위생부장과 위생부 당위원회 부서기직을 겸직한 멍쉐눙(孟學農) 베이징 시장의 당직을 해제했다. 중국에서 당직 해제는 곧 경질을 의미한다. 문제는 멍쉐눙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최측근이라는 것. 이에 최근 베이징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권력암투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즉 후진타오가 이번 은폐를 실질적으로 주도했다고 알려진 장쩌민 계열에게 칼을 들이대기 전에 자신의 최측근인 멍쉐눙을 읍참마속했다는 해석이다.

    사스에 대한 대응에 대해 테크노크라트 출신인 신지도부는 중국이 성실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사스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신속하고 정확한 진상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장쩌민 계열은 사스의 진상 공개가 자칫 불필요한 불안을 야기하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실추할 수 있다며 은폐·축소를 주장했다.

    물론 이런 은폐의 배경에는 지난달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와 권력이양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전인대 기간에는 좋지 않은 소식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권력을 물려주는 장쩌민의 측근들이 장쩌민이 사스로 인해 오점을 남기는 것을 꺼렸음은 물론이다.

    베이징 정가엔 ‘권력 암투설’

    하지만 이런 관례가 사스의 확산을 방치하게 했고 결국 장쩌민 계열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후진타오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물론 사스대책본부의 사령탑에 오른 우이(吳儀) 부총리 등 신지도부는 연일 병원과 연구소, 학교 등을 방문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장쩌민과 그 측근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어 더욱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이제 사스는 중국에 거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그것은 위기상황에서의 중국의 서투른 대처와 함께 중국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불거진 은폐 논란은 결국 중국 내부에서 정치지형의 변화로, 국외에서는 국가신인도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임이 틀림없다. 중국은 새로운 시험에 직면해 있다. 개혁·개방으로 깨온 낡은 사회의 잔재를 완전 소멸시키고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오랜 중국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역사적 반동에 무너지느냐. 중국에게 선택할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어쨌든 사스는 중국에 더욱 급진적인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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