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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러시아 마피아

킬러 탕탕! 러시아 쓰러진다

청부살인 마피아 손에 각계 인사 잇단 희생 … 탱크까지 밀매 ‘전국구’ 조직 상상 초월

  •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킬러 탕탕! 러시아 쓰러진다

마피아, 청부살인, 전문 킬러, 소음권총…. 외신 보도나 영화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이런 오싹한 단어들이 매일같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날이 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그런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4월18일 부산에서 일어난 러시아 마피아 두목 총격 피살사건은 한국 범죄사에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조폭들끼리 기껏해야 회칼이나 들고 ‘나와바리(영역) 다툼’을 벌이던 한국에서 외국 범죄조직끼리 총을 들고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국은 총기 범죄가 드문 나라였다. 그러나 드디어(?) 한국에서도 첩보영화에서나 보던 소음권총이 등장했으니 앞으로 기관단총 같은 자동화기까지 동원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부산 피격 사건 하루 전날 1만여km 떨어진 모스크바에서도 흡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러시아 정계의 거물인 유셴코프 하원의원이 자택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다가 네 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것이다. 킬러는 소음권총을 사용했고 범행 후 현장에 총을 버리고 도망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호원과 운전사도 손쓸 수 없었다. 두 사건 모두 전형적인 러시아 킬러의 솜씨다.

유셴코프 의원은 소련 붕괴 후 피살된 10번째 의원으로 기록됐다. 사실 러시아에서 의원이 살해되는 정도는 큰 뉴스거리도 못 된다. 군 장성도 마피아의 마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에 부산에서 살해된 사할린 야쿠트파 두목 바실리 나우모프는 러시아 국경경비대의 사할린 지역 책임자였던 발레리 가모프 장군의 살해를 지시한 혐의로 그동안 러시아 당국의 추적을 받아왔다.

가모프 장군은 지난해 6월 관사(아파트)에 화염병이 날아들어 중화상을 입은 채 일본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나우모프가 가모프 장군 살해의 배후로 지목된 것은 그의 주된 ‘사업’ 분야가 수산물 밀수였기 때문이다. 국경경비대가 수산물 밀수 단속을 강화하자 나우모프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가모프 장군을 살해한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법보다 총’으로 해결 … 방탄차·경호업체 호황

또 지난해 중앙정부와의 업무 협의를 위해 모스크바에 출장왔던 극동 마가단주(州)의 발렌틴 츠베트코프 주지사도 아르바트 거리에서 총격을 당해 숨졌다. 2000년에는 이오시프 오르드조니키드제 모스크바 부시장이 차를 타고 가다 습격을 당해 사망했다. 1996년에는 미국인 사업가 폴 테이텀이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모스크바 래디슨 슬라반스카야 호텔 앞에서 자동소총 세례를 받고 숨졌다. 러시아에서는 국영방송사 사장, 은행장, 기업인 등 각계 인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목숨을 잃는다.

물론 이들 모두가 범죄조직에 의해 살해된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정적(政敵)에게, 기업인들은 사업상의 이권 다툼으로 희생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러시아에서는 몇 만 달러만 있으면 얼마든지 직업 킬러를 고용할 수 있고 몇 백 달러면 총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문제만 생기면 법보다는 총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나 총참보부정찰국(GRU) 등 특수부대 출신들이 마피아나 직업 킬러로 변신했다는 소식도 새삼스럽지 않다.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웬만한 거물들은 방탄차를 타고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다닌다. 경호전문회사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 열린 자동차쇼에서는 시내 주행용 장갑차까지 선보였다.

그럼 부산에서 피살된 나우모프는 누가 죽였을까? 사할린에서 이권을 다투는 반대파의 소행일 수도 있지만 모스크바의 ‘전국구 마피아’ 조직이 사주했을 가능성도 높다. 사할린과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주 무대로 수산물이나 석유 밀수, 매춘, 마약, 무기 밀매 등을 하는 극동 마피아들은 전국구 마피아들에 비하면 동네 건달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 당국에 따르면 모스크바 마피아 조직들이 나우모프가 이끄는 야쿠트파에 복종을 요구했는데 나우모프가 이를 거부했다. 나우모프는 이때부터 독일 일본을 전전하다 한국으로 왔는데 수사당국의 추적보다는 모스크바 마피아가 더 무서워서였다고 한다. 나우모프는 2001년 일본에서도 공격을 받아 부하 2명이 중상을 입는 위기를 겪었다.

모스크바 마피아는 ‘생선 밀수’나 하는 극동 마피아와는 사업 분야나 규모부터가 다르다. 광물이나 에너지, 무기, 돈세탁 등에 주로 손을 댄다. 중간 보스쯤만 돼도 아예 러시아에 살지 않는다. 이들은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에 수백만 달러짜리 저택을 사서 철통 경호를 받으며 호의호식한다.

러시아 마피아 두목 아림잔 토크타쿠노프는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저명인사 행세를 하다 지난해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승부조작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주변에 정체가 드러났다. 러시아의 전국구 마피아들은 95년 시베리아의 한 소도시에서 알루미늄 이권을 둘러싸고 박격포를 동원한 ‘진짜 전쟁’을 벌인 일도 있었다. 이들이 밀매하는 무기는 권총 몇 자루 수준이 아니다. 휴대용 미사일이나 탱크를 판다. 러시아 마피아들은 유고내전 당시에도 무기장사를 했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게도 무기를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셴코프 하원의원 살해사건의 범인은 과연 잡힐까? 러시아에서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러시아는 연간 인구 10만명당 34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두 번째로 살인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다. 지난해 7000여건의 살인사건이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으며 전국에서 3만9000여명이 행방불명됐다.





주간동아 383호 (p44~45)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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