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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러시아 마피아

부산 겨눈 ‘러시아 마피아 총구’

감천항 주변 5~6개 조직 암약 추정 … 국내 조직과 ‘검은 카르텔’ 형성 비밀 아닌 비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부산 겨눈 ‘러시아 마피아 총구’

부산 겨눈 ‘러시아  마피아 총구’
4월24일 오후 8시경 부산 동구 초량동 속칭 ‘텍사스촌’. 이곳엔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한 유흥업소 상점 등이 똬리를 틀고 있다. 험악한 인상의 러시아인들이 삼삼오오 오갈 뿐 내국인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이곳에선 총기를 구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러시아제 총기가 100~600달러에 거래된다. 상인 K씨(44)는 “텍사스촌에선 권총은 물론 마약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수년 전부터 이 지역 일대에선 러시아 마피아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유흥업소 종업원들이 러시아 마피아로부터 대마초를 얻어 피우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역상인들에 따르면 텍사스촌 유흥업소의 일부는 러시아 마피아가 직접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러시아인 무용수들의 대부분도 러시아 마피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텍사스촌 일대가 러시아 범죄조직의 ‘해방구’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4월17일 발생한 나우모프 와실리씨(54) 피살사건 이후 부산이 러시아 마피아들의 극동지역 본거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또 이들 마피아가 수년 전부터 국내 범죄조직과 검은 카르텔을 형성해왔다는 소문도 여러 정황을 미뤄볼 때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텍사스촌 일대를 관할하는 일선 경찰서는 물론 부산경찰청도 부산에서 암약하고 있는 러시아 마피아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제 총기 100~600달러에 거래 ‘공공연’

부산 겨눈 ‘러시아  마피아 총구’

부산 영도구 A아파트 CCTV에 잡힌 사건현장. 경호원은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다리만 공격하고 범행에 사용한 총기를 현장에 버리고 가는 것이 러시아 마피아의 불문율이다.

러시아 마피아는 현재 6200여개 조직과 약 50만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150여개 조직이 세계 50여개국에 진출, 각국 수사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인터폴에서 4년간 근무한 경찰대 이종화 교수는 “150여개의 대형 연합조직들이 국제 범죄조직과 연계해 매춘 마약 인신매매 등 온갖 불법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러시아 마피아가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세계 50여개국 폭력조직과 연계, 국제적인 범죄조직으로 변모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 마피아는 느슨한 연계망을 갖고는 있지만 전국적으로 통합된 조직은 아니다. 모스크바 등 유럽지역에는 ‘전국구 주먹’이 존재한다. 그러나 극동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국구 주먹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극동지역 마피아들은 은행을 소유하며 대량살상무기를 밀매하는 모스크바 마피아보다는 ‘수준’이 다소 떨어진다. 극동지역 마피아들은 마약·무기밀매 등에도 손을 대고 있지만 주업은 ‘생선장사’와 ‘여자장사’다. 정보당국은 극동지역의 ‘지역구 주먹’들이 하나 둘씩 아시아지역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살해된 와실리씨가 두목 노릇을 하고 있는 야쿠트파도 극동지역에서 악명이 높은 마피아 조직이다.

극동지역 러시아 마피아들이 부산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러시아 어선과 상선들이 부산을 선박 수리와 수산물 유통기지로 삼으면서부터다. 러시아 마피아의 국내 진입은 95년 7월 러시아 선원 2명이 국내 폭력조직에게 권총 2정을 밀매하려다 적발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99년 마피아 중간보스가 구속된 데 이어 2001년 국제 마약 밀매조직인 러시아 마피아 ‘바소와 가족들’ 조직원들이 수사망에 걸려들기도 했다. 현재 부산에선 5~6개 정도의 러시아 마피아 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피살사건을 계기로 야쿠트파와 노부후브스카니파 등 러시아 마피아 2개 파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부산 감천항엔 늘 50척 정도의 러시아 선박이 정박해 있다. 이들 러시아 선박 지분의 20~30%를 러시아 마피아가 쥐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 두목급 인사들은 수산회사 간부 신분으로 국내에 상시 출입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수산물 유통회사들은 대부분 마피아 소유다. 여러 개의 마피아 조직들이 유통시장을 분점하고 있는데 이들 마피아 사이에서는 종종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실리씨는 지난해 11월 동해에서 일어난 러시아 트롤망어선인 툴룬호 납치사건에도 관련돼 있는데, 납치사건은 마피아 수산회사들 간의 ‘나와바리 전쟁’(영역다툼)이었다.

감천항 주변 수산업 종사자들 사이에 최근 러시아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러시아어 열풍도 러시아 마피아와 무관치 않다. 러시아 마피아와의 수산물 밀매를 통해 큰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극동지역 ‘수산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 마피아들에게 러시아 물동량의 중간기착지로 각광받고 있는 부산은 주요한 사업처가 될 수밖에 없다.

부산 겨눈 ‘러시아  마피아 총구’

러시아 마피아의 ‘무용수 수출’은 국내 범죄조직과 연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왼쪽). 국제범죄 사각지대로 변하고 있는 부산 동구 초량동 속칭 텍사스촌(오른쪽).

부산에서 국내 범죄조직과 러시아 마피아가 만나는 접점도 바로 수산물 유통을 둘러싼 이권이다. 폭력조직은 철저히 이권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이권을 찾아 움직이던 폭력조직들은 접점에서 만나 협력하거나 대립한다. 수산물 이권을 장악한 러시아 마피아들이 국내 범죄조직의 지원을 받으면서 위조여권 등을 이용해 부산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며 활개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 마피아와 국내 폭력조직은 공생관계에 가깝다.

와실리씨는 지난해 12월 입국 당시 부산지사격인 `‘콘코리아서비스’에서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이모씨로부터 선박감독관으로 초청받았다. 이씨는 부산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의 전 조직원으로, 부산 동구 범일동이 주무대인 폭력조직 H파의 두목과 친분이 깊다. 야쿠트파와 H파가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현재 부산에선 칠성파 신칠성파 신20세기파 영도파 유태파 물개파 온천장파 등이 할거하고 있는데, 그중 칠성파 신칠성파 신20세기파 영도파가 4파전을 벌이고 있다. 모 체육협회 부회장을 지낸 칠성파 두목 이모씨는 부산 주먹계의 대부이자 전국에서 이름이 통하는 ‘전국구 주먹’이다. 영도파는 이씨의 친구인 천모씨가 만든 조직으로 칠성파에 밀리고, 신칠성파는 칠성파에서 분가한 조직으로 한동안 칠성파와 ‘전쟁’을 치렀다.

야쿠자·삼합회 등 국제 범죄조직 진출도 늘어

이들 조직들은 하나같이 90년대 초반 ‘범죄와의 전쟁’ 당시 두목이 구속된 전력이 있다. 두목들의 구속과 세력다툼으로 부산의 조직들은 와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냉동창고 운영, 수산물 수입업 등은 부산에 터를 잡은 폭력조직들의 주요 자금줄이었다. 러시아 마피아의 ‘나와바리’와 일치하는 셈이다. 현재 칠성파와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여온 S파 출신 간부가 수산업을 하고 있는 등 폭력조직 관련자들이 수산업 관련 업종에 대거 진출해 있다.

부산은 이처럼 ‘수산물 이권’을 매개로 국내 주먹들이 러시아 마피아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조건이 갖춰진 상태다. 따라서 와해 위기까지 겪었던 이들 조직들이 러시아 마피아 조직과 결탁해 돌파구를 찾았을 개연성이 있다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경찰대 이종화 교수는 “러시아 마피아를 비롯해 모든 범죄조직은 이권을 공유할 수 있는 경우엔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며 “수산물이라는 돈줄을 갖고 있는 부산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마피아가 국내 범죄조직과 손잡고 확장하려는 이권은 인신매매와 수산물 밀매 마약거래 총기밀매 돈세탁 등이다. 국내 폭력조직들은 러시아 마피아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반대 급부로 러시아 극동지역의 이권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 또 ‘유사’시 도피처로 러시아 극동지방을 활용할 수도 있다.

러시아 마피아가 국내에서 벌이는 사업은 국내 조직과의 연줄이 없으면 불가능한 게 대부분이다. 초량동 텍사스촌에서 일하는 러시아 무용수는 1000여명에 이른다. 텍사스촌을 비롯해 전국 나이트클럽 무용수들을 러시아 마피아가 국내 폭력조직을 통해 공급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 마피아 조직 ‘KGB’ ‘사할린’ ‘가라데’ 등이 무용수를 수출하는데, 한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지역은 사할린 계열의 조직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사할린 마피아가 보낸 여성들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국내 폭력조직과 연계된 ‘보도방’ 업주들에게 넘겨진다.

러시아 마피아에 의한 마약 밀매사건은 그동안 심심찮게 발생해 왔다. 2001년 9월 러시아 마피아 ‘바소 패밀리’ 조직원 8명이 텍사스촌 일대를 거점으로 삼아 헤로인과 해시시 등 수억원대의 마약류를 외국인 선원 등에게 판매하다 적발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내수시장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앞으로 러시아 마피아들이 국내 폭력조직과 연계, 한국을 마약 판매처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총기는 주로 러시아 선박에 은닉돼 감시가 허술한 감천항으로 들어온 후 세관 단속을 뚫고 시내로 반입되거나 심야에 감천항 주변의 철조망을 통해 유입된다. 최근엔 러시아제 권총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산 나무총과 플라스틱총도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마피아를 통해 총기를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국내 폭력조직들이 와실리씨 사건과 같은 총기범죄를 일으키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러시아 마피아뿐만 아니라 야쿠자 삼합회 등 국제 범죄조직의 부산 진출도 늘고 있는 추세다. 야쿠자는 ‘자금’ 형태로 부산에 들어와 있다. 재일동포 출신 야쿠자들은 국내 폭력조직과 함께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고, 합법적인 투자를 가장해 국내에 침투하고 있다. 마약 통과국으로 한국을 이용해 왔던 삼합회도 국내 폭력조직의 도움을 받아 한국을 자금세탁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 와실리씨 피살사건은 국제 범죄조직과의 전쟁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간동아 2003.05.08 383호 (p40~42)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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