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0

2003.01.30

대박 잡고도 ‘인생 추락’많다

당첨금 관리 못하고 낭비·외도하다 파탄 … 7000여만원 1주일 만에 날리고 ‘알거지’ 전락도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01-24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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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 잡고도 ‘인생 추락’많다
    드라마 같은 실화 하나.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A씨(40대)는 몇 년 전 길몽을 꾼 다음날 우연히 복권을 샀는데 기적처럼 1등에 당첨돼 20억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쥐었다. 세금을 제하고도 15억원 넘게 거머쥔 A씨는 세 형제에게 2억원씩을 나눠줬다. 형제들 역시 이 놀라운 행운에 대해 어쩔 줄 몰라 했다. A씨 형제는 모두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해오던 터라 집도 없는 상황이었다. 형제들은 이 ‘공돈’으로 저마다 아파트 한 채씩을 장만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굴러들어 온 복이 화근이 된 것이다. 형제들은 돈을 모두 집 장만하는 데 쏟아붓고 나자 욕심을 더 내기 시작했다. A씨에게 가게 장만할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생활비를 요구하기도 하며 계속 손을 벌렸다. 이에 A씨는 형제들을 미워하게 됐고 형제간 우애가 깨져 급기야 서로 다시 안 보게 되고 말았다.

    당첨금 놓고 형제들 손벌리기 … 결국 우의 깨져

    서울에 사는 B씨(54)의 경우도 A씨 못지않게 비극적이다. B씨가 복권에 당첨된 것은 1984년. 길거리에서 장신구를 팔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B씨는 그 전에도 한 달에 한두 번씩 복권을 사봤지만 번번이 허사였다. 평소 복권 구입을 반대하던 부인 C씨(50)가 간밤에 돼지꿈을 꿨다며 이날 따라 복권을 사자고 우겼다.

    대박 잡고도 ‘인생 추락’많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됐다. 세금을 떼고 8400만원을 받아든 B씨 부부는 서울 강북지역에 자그마한 건물을 구입했다. 이후 건물 임대 수입, 부동산 시세 차익 등으로 돈은 금세 불어났지만 가정은 파탄으로 치닫고 있었다.



    B씨는 바람을 피우면서 집에는 생활비조차 내놓지 않고, 심지어 부인을 폭행하기까지 한 것. 참다 못한 부인은 남편을 폭행죄로 고소했고, B씨는 1년6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기도 했다. 부인 C씨는 끝내 1999년 초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그해 말 법원은 이혼이 유일한 해결 방법임을 인정했다. 서울가정법원은 “남편은 남아 있는 재산 1억여원 가운데 재산분할로 4000만원을 부인에게 주고 그동안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3000만원 및 자녀양육비로 앞으로 3년간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 결국 거의 전재산을 C씨에게 주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파산선고뿐이었다.

    복권이나 도박 등 사행성 오락을 통한 대박이 반드시 이런 불행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흔하게 이런 결말을 목격할 수 있다. 가난하게 살던 이에게 갑자기 굴러들어 온 큰돈은 그만큼 큰 화근을 불러오기 십상인 것이다. 복권보다 사행성이 더 높은 카지노의 경우는 이런 사례가 더 흔하다.

    2000년 11월16일 오후 3시 강원 정선군 고한읍 스몰 카지노. “터졌다”라는 30대 중반 손님의 외침에 카지노 모든 고객들의 눈길이 한곳에 집중됐다. 대구에서 개인화물업을 하는 D씨(35)는 이날 슬롯머신에 1500원을 넣어 5만배가 넘는 7707만원의 잭팟을 터뜨렸다. 당시는 내국인용 카지노인 정선 스몰 카지노가 개장 1개월이 채 안 되는 상황이라 D씨의 잭팟이 당시까지 가장 큰 당첨액이었다. 강원 강릉으로 화물 운송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소문으로만 듣던 내국인용 카지노를 구경이나 하고 가자는 생각에 들렀다가 뜻밖의 횡재를 한 것이다.

    뛸 듯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간 D씨는 그러나 일주일 후 카지노에 다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1000만원권 수표 7매, 100만원권 7매, 1만원권 7매 등 당첨금이 그대로 쥐어져 있었다. 당첨금으로 다시 슬롯머신을 시작한 그는 정확히 일주일 만에 당첨금을 모두 잃고, 타고 온 1.5t 화물트럭까지 담보로 빌린 돈 300만원을 더 잃었다. 카지노측의 만류에도 그는 카지노를 계속 찾았다. 그가 대박을 터뜨리고도 카지노를 다시 찾은 이유는 어이가 없다.

    “잭팟을 터뜨리기 전날 돼지가 돈에 똥을 싸는 길몽을 꿨는데, 집에 가 생각하니 당첨금에도 행운의 숫자인 7자가 3개나 들어가 이 돈으로 다시 하면 더 많은 돈을 딸 줄 알았다.”

    이후 D씨의 삶은 어땠을까. 그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고한읍에 가면 된다. 카페나 레스토랑 주인에게 “잭팟에 당첨되고 읍내에서 잡일을 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면 금방 그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이씨는 화물트럭을 카지노에 바친 후에도 전세금을 빼고, 돈도 빌려서 1년 동안 수시로 카지노에 드나들다 결국 지난해 6월 카지노 근처 고한읍내에 정착했다. 빚도 많이 진 상태에다 더 이상 고향에 가도 발붙이고 살 곳도 없었기 때문. 숙식이 일정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한창 카지노에서 돈을 잃거나 딸 때 도와준 사람들도 있고 해서 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

    대박 잡고도 ‘인생 추락’많다
    문제는 그가 아직도 스몰 카지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는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돈 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얼마간의 돈을 얻어 다시 슬롯머신을 하는 생활을 하는 카지노의 ‘악어새’가 되어 있었다.

    강원랜드 머신게임팀의 한 관계자는 “잭팟을 터뜨리는 사람 중 70~80% 정도가 결국 그 돈으로 다시 카지노를 해 모두 잃고 간다”며 “지켜보기가 안타까워 말려보지만 한번 잭팟의 맛을 본 사람들은 주변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여름 단돈 500원으로 1억원의 메가잭팟을 터뜨린 사람이 있었어요. 손가락이 몇 개 없는 공장 직공이었는데 당첨금을 타 간 후 다시는 카지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는지 참 궁금해요.”

    비록 카지노 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지만 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고객은 뭐니뭐니해도 잭팟을 터뜨린 후 바람처럼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고객들이다.

    대박을 터뜨린 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이런 부정적인 결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외국의 한 조사결과를 보면 거액 복권 당첨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전보다 더 불행해졌다고 말한다”며 “관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큰돈이 생긴 졸부는 씀씀이가 헤퍼지고 건달이 돼 주변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카지노 경마 등 중독성이 심한 사행성 오락의 경우 시행사측에서 클리닉 등을 통해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를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액 당첨자들을 불행으로 이끄는 데는 주변 사람들의 시기심도 한몫한다. 실제로 거액 당첨자 주변에서 도와달라며 손을 벌리거나 그 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어 복권회사에서는 거액 당첨자가 돈을 타러 오면 가장 먼저 두 가지 당부를 한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주소지를 옮길 것. 당첨자들이 그렇게 잠적해도 찾아가는 이가 있어 복권회사는 종종 당첨자들의 항의전화를 받는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물론 거액 당첨자 모두가 이런 불행을 겪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행 복권사업팀 이인영 부장은 “외국의 경우 저축보다 즐기는 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파산을 하는 경우가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의 거액 당첨자들은 대개 서민층이기 때문에 이들은 먼저 주택구입이나 학자금, 불우이웃돕기 등에 쓰는 등 건실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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