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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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들 물밑 ‘밥그릇 싸움’

변호사·회계사 영역 확장에 변리사·세무사 등 초긴장 … 법개정 위한 서명운동 등 맞대응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1-23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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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직들 물밑 ‘밥그릇 싸움’

    전문 자격 소지자가 크게 늘면서 직종간 영역 다툼이 치열하다. 공인회계사 합격자들이 실무 수습기관 확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장면.

    ”세법 전문가인지에 대한 검증조차 받지 않은 이들이 무분별하게 세무사 영업을 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동입니다. 공인회계사나 변호사가 왜 자동적으로 세무사가 됩니까. 서로 다른 자격증이면 적절한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에게만 발급해야죠.” (A 세무사)

    “준비서면은 우리가 다 작성하는데 소송 대리는 변호사가 해요. 과학기술 분야에 문외한이라 의뢰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못 알아듣는 변호사들이 소송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B 변리사)

    전문 직종간 영역 다툼이 치열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안정과 고수익의 보증수표였던 자격시험 합격자 수가 크게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다툼은 주로 변호사를 상대로 벌어진다. 전국 5000명을 돌파한 변호사들이 소송 업무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자 기존에 그 업무를 담당했던 세무사, 변리사, 공인중개사, 법무사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맞서고 있다.

    가장 먼저 집단적 움직임을 보인 쪽은 한국세무사회. 세무사들은 공인회계사와 변호사들의 세무사 등록이 급증하자 이들에게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주는 현행 세무사법 개정을 위해 국민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세무사회 관계자는 “최근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의 반수 가량이 실무 수습기관을 찾지 못하면서 시험만 합격하면 바로 활동할 수 있는 세무사로 개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이것은 바로 세무사의 영역 축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세무사들이 법률 개정에 적극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사의 독점적 권한 이양 요구도

    실제로 개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세무사들의 경우 공인회계사들이 설립한 회계법인에 밀려 업무 수임량이 크게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위기의식 탓인지 세무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받기 시작한 국민서명 참여 인원이 이미 200만명을 돌파했다.

    또 세무사들은 현재 변호사의 독점적 권한으로 돼 있는 세무소송 대리권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세무사들은 ‘세법에 관한 한 세무사가 최고의 전문가’라고 말하고 있다. 한 세무사는 “변호사들은 세법을 잘 몰라 자신들의 장부도 세무사들에게 맡긴다”며 “독일에서는 세무사가 제한 없이 조세 소송 전체를 대리하기도 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세무사가 소송법을 아느냐”며 반박한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소송법에 문외한인 세무사의 소송 참여는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변호사와 변리사 간의 다툼은 더 치열하다. 높은 수익과 넓은 시장을 노리고 변리사로 등록하는 변호사가 크게 늘어나면서 변리사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변호사는 사법시험 합격과 동시에 변리사 자격을 취득하고 특허청에 등록비만 지불하면 변리사로 활동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변리사는 “변호사들은 변리사 시험을 보지도 않고, 연수를 받은 적도 없어 이쪽 업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도 많다”며 “그런데도 자동 취득되는 자격을 내세워 명함에 `변리사’라고 명기하는 것은 이를 잘 모르는 국민들을 속이는 부정한 술수”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변리사 시험 합격자는 202명. 올해도 비슷한 숫자의 자격자가 배출될 전망이다. 여기에 변호사들까지 변리사로 등록하면서 현재 특허청에 등록된 변리사는 2055명으로 2000년 이후 두 배로 늘었다.

    전문직들 물밑 ‘밥그릇 싸움’

    전국적으로 5000명을 돌파한 변호사들이 소송 업무뿐 아니라 특허, 세무, 부동산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을 꾀하자 기존에 그 업무를 담당했던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등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변리사들은 `‘생존권의 위협’까지 느끼는 분위기다. 변리사회 관계자는 “현행 제도 아래서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우리와 사법제도가 다른 외국 변호사들에게까지 변리사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며 “그럴 경우 변리사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특허 관련 업무의 전문성이 크게 떨어져 결국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리사 자격 자동 부여 제도를 가능한 한 빨리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리사들은 이와 함께 변호사들이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특허침해소송대리권’을 변리사에게도 부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특허 법원 소송의 90% 이상을 변리사가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변리사가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논리다. 지난해 재판에 참가하려던 변리사가 판사의 제지로 재판정에서 `‘쫓겨나는’ 사건이 발생한 것도 변리사들의 자존심에 불을 질렀다. 해오름 국제특허 법률사무소 오세중 변리사는 “변리사 법에 따르면 변리사들도 이미 특허소송대리권을 갖고 있다. 다만 민사소송법과의 충돌 때문에 자제하고 있는 것뿐인데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권력으로 변리사를 억누르려고만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적재산권 소송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변호사와 변리사 사이의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본격 기싸움 땐 피해는 국민에게

    변호사와 공인중개사 사이에도 영역 다툼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변호사 이모씨가 “부동산 중개도 일반 법률사무인 만큼 변호사에 대해서도 부동산 중개 업무를 허가하라”며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 시초가 됐다. 대한변협도 변호사가 공인중개사 업무를 맡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공인중개사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김모씨는 “최근 한 집 건너 한 명씩은 공인중개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격증 소지자가 포화 상태”라며 “그렇지 않아도 영업에 어려움이 많은데 변호사와도 경쟁하라는 말이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협회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커지니까 변호사들까지 이 영역에 뛰어들려는 것 같다”며 “변협에서 법률 사무라고 주장하는 계약서 작성 부문은 중개 업무의 일부분으로 공인중개사의 고유 업무”라고 반박했다.

    등기 업무를 취급하는 변호사가 늘고 있는 것은 법무사측과의 갈등요인이다. 변호사가 등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관례상 법무사의 영역이던 이 분야까지 변호사가 손을 대면서 법무사들은 초긴장 상태다. 특히 수입이 많은 대형 아파트 단지의 등기 업무에 변호사가 끼어들 경우 법무사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변호사들이 ‘사법시험을 통과한 전문성’을 내세우거나 건설회사측에 로비를 해 등기 업무를 독점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법무사는 “변호사가 등기 업무로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우리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변호사들도 할 말은 있다. 약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전순덕 변호사는 “사법시험 합격 인원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변호사로 진출하고 있다”며 “이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전문 법조인으로 활동하는 것을 무분별한 `‘영역 확대’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변호사들은 오히려 외국의 경우처럼 자격증 체계를 정리해 변호사의 활동 영역 자체를 넓히지 않으면 변호사들이 생존의 문제에 부딪힐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전문직간 영역 다툼은 아직 수면 아래 잠복해 있는 상태다. 당사자들이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공개적 문제제기를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간의 기싸움이 본격화할 경우 그 피해는 어떤 식으로든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당국과 관련 전문직 단체들은 늦기 전에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에서 합리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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