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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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뒤 숨은 권력 그리고 암투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2-12-27 1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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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뒤 숨은 권력 그리고 암투
    모임은 이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의 비밀결사 같은 것이다. 정치, 경제, 학술, 문화, 연예계를 망라해 유명인사들이 가입해 있는, 사실상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조직’이다. 겉보기에는 친목모임 같지만 서로가 서로를 키워주는가 하면 선거 등 국가 대사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고원정의 소설 ‘네트워크’는 권력의 우산 속에서 대통령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 한 정권이 물러나면 새 옷을 갈아입듯 새로운 이념과 논리로 무장한 채 또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실패한 대통령은 법정에 서기도 하지만 이들은 책임을 지는 법이 없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대통령 당선자의 오른팔 최실장이 내민 리스트를 본 김의원의 뒷덜미가 서늘해진다. 그 모임 회원들의 명단이다. 그동안 모임이 관여해온 일들도 사안별로 빈틈없이 정리돼 있었다. 이번에는 김의원이 양복 주머니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상대에게 내민다. 봉투를 받은 최실장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대선 기간은 물론이고 지난 4~5년 동안 대통령 당선자 주변에서 오간 정치자금 내역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선 자체를 무효화할 만큼 폭발력이 강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김의원이 빈정거리듯 말했다. 김의원이 다시 새로운 봉투를 꺼낸다. 서류에는 모임에서 바라는 입각 희망자 명단이 적혀 있었다. 난색을 표하는 최실장. 이윽고 두 사람은 정보원의 이름을 교환한다. 홍전무와 한준서 PD. 며칠 후 두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이것은 소설 속 상황이다. 소설 ‘네트워크’의 시점은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발표되고 막 정권인수 절차가 시작된, 바로 현실과 절묘하게 겹친다. 모임을 이끄는 김연곤 의원와 핵심 멤버인 양용문 전 장관, 여기에 막 이 모임에 가입한 이명세가 관찰자로 등장한다. 이명세는 정치학계의 소장파 학자로 텔레비전 정치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명세는 자신의 모임 가입 축하 리셉션에서 본의 아니게 대산그룹 김회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이후 사건에 휘말려 든다.

    김대산 회장은 한때 엄청난 규모의 해외사업을 추진하다 외환위기 때 하루아침에 부실기업으로 몰려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오연호를 중심으로 김회장의 귀국과 명예회복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이명세에게 접근한다. 그 사이 네트워크 회원이었던 여배우 한미나가 의문의 자살을 한다. 한편 김회장의 경영 실패로 구조조정 당해 결국 이민을 선택한 경대와 일문, 달수, 도빈 등 네 친구가 모여 “이놈의 나라를 떠나기 전 한국을 망친 놈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하나 골라 해치우자”고 결의한다. 그들의 목표는 김대산 회장이었다. 그러나 대산그룹 문제는 대통령 당선자와 네트워크 간의 힘 겨루기 양상으로 번져간다. 대통령 당선자가 대산그룹 정리는 지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발언하자 네트워크가 반발하고 나선 것. 한편 대산그룹 옹호파들은 한미나의 편지와 테이프, 녹취록을 무기로 네트워크를 조여온다.



    누구나 이 소설에서 대산그룹 김회장은 바로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김회장도 결국 이 나라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네트워크의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이 소설의 해석이 과연 옳은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소설처럼 이번 대통령선거 이후 김회장이 귀국해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구체적 에피소드가 모두 허구라고 설명하지만 특정인, 특정세력의 냄새가 풍기는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의 세상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이 바뀌어도 핵심 권력층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저자는 한때 대통령 한 사람의 능력과 도덕성에 의해 이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었지만, 줄줄이 실패한 대통령들을 지켜보면서 대통령 뒤 숨은 권력의 존재를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파워 엘리트든 이너 서클이든 네트워크든 그들을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들은 존재한다.

    새 정부의 탄생을 지켜보는 이 시점에서 소설 ‘네트워크’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냥 재미로 보기에는 찜찜한 구석들이 너무 많다.

    네트워크(전 2권)/ 고원정 지음/ 지구촌 펴냄/ 1권 310쪽, 2권 275쪽/ 각 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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