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2003.01.02

개혁의 칼 ‘민주당’을 겨누다

盧心 등에 업고 쇄신파 전위대로 등장할 듯 … 반노·비노 세력 숨죽인 하루하루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2-12-26 1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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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시대’가 개막됐다. 세계화, 정보화 등으로 무장한 시민사회의 선택은 변화와 개혁이었고 그 중심에 노무현이 서 있었다. 50대 대통령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3김 시대의 퇴장을 동반한다.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장한 20, 30대가 신파워그룹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정치개혁과 사회변혁을 강력히 주문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로서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노무현 시대, 과연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개혁의 칼 ‘민주당’을 겨누다

    당선 확정직후 악수하고 있는 노무현 당선자와 김원기 고문(위).12월19일 저녁 TV를 통해 개표 상황을 지켜보는 민주당 당직자들(아래).

    정동영 의원과 추미애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공인을 받은 ‘차기’주자로 등장했다. 비주류인 김원기, 정대철, 김상현 고문도 이번 선거를 통해 꿈을 펼칠 무대를 마련했다. 노당선자를 둘러싼 이들은 이제 개혁의 기치를 내건 민주당의 핵심주역으로 등장, 당 개혁의 전위대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민주당을 떠난 이인제 의원과 김민석 전 의원은 ‘생사’의 기로에 섰다.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도 마의 ‘1시간30분’을 앞두고 추락의 반열에 동승했다. 숨죽인 세력은 또 있다. 한화갑 대표와 동교동계, 후보단일화협의회(이하 후단협) 등 반노(反盧) 비노(非盧) 세력의 하루하루도 고단하기 짝이 없다.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민주당 내부에는 승자와 패자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 냉정한 권력의 법칙은 이들을 갈라놓고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을 종용하고 있다. 조용하지만 급격한 힘의 이동현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미 흐름은 일부 감지된다.

    노당선자의 당선 일성(一聲)은 ‘정치개혁’이었다. 노당선자는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민주당을 지목했다. 노당선자는 12월20일 첫 내외신 기자회견과 민주당 소속 의원 초청 오찬에서 “민주당은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임 전(2003년 2월25일)에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집권에 성공한 노당선자가 개혁바람을 동반한 정치권의 숨 가쁜 빅뱅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민주당이 개혁을 앞세운 새로운 정당으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정치개혁추진위(이하 정개추)의 신기남,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추미애 의원 등 쇄신파가 개혁의 전위대로 등장할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정풍을 주도한 이들의 손에는 이미 ‘권력의 칼’이 쥐어져 있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정개추와 정권인수위가 개혁의 양대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 개혁과 관련 내부 논의를 거쳐 취임 전 당을 새롭게 변모시킨다는 구상이다. 재창당을 염두에 둘 수도 있다. 노당선자는 19일 밤 당선이 확정된 뒤 개혁당을 방문, “살림을 같이 하든 따로 하든 여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 개혁세력의 역할과 진로가 숨어 있다. 이런 구상은 11월 말부터 당내 일부 세력들을 중심으로 조용하게 추진됐다. 대선 승리와 실패라는 양극단의 상황을 전제, 개혁신당의 틀을 짰었다.

    호남세력 물갈이론·DJ와의 관계 설정 등 회자

    승자의 시각으로 보면 당내 최대 파워그룹이었던 동교동계와의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당선자와 동교동계는 애증의 관계를 반복했다. 한화갑 대표를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 인사들은 그동안 사사건건 노당선자의 진로를 방해했고 때로는 무리한 태클도 예사였다는 게 노당선자측 시각이다. 노당선자측 일부 인사들은 동교동계와의 관계에 대해 “원칙의 범위 안에서 물 흐르듯 갈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부기류는 이와 다르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낡은 정치세력은 당내에도 많다”고 우회적으로 ‘피아’에 대한 개념을 정리했다.



    노당선자는 이에 앞서 “DJ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책임 있는 인사들은 법적, 정치적으로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선전포고를 해놓았다. 19일 밤 이기고 있는 선거의 개표방송을 지켜보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얼굴이 유독 ‘어두운’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11월 노당선자 참모들이 짠 정치 플랜에는 호남세력의 물갈이론이 나온다. 새로운 개혁세력을 호남에 집중 배치, 인적 물갈이를 진행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에 대해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후보를 흔드는 일부 세력과의 결별을 전제로 한 것이었을 뿐 현재의 정치상황과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당선자와 개혁세력들이 갖고 있는 동교동계 및 일부 인사들에 대한 시각은 지금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도 회자된다. 노당선자측은 “(청와대로부터) 빚을 진 것이 없다”며 홀가분해한다. 오히려 후단협의 배후가 청와대라는 감정적 언사까지 입에 올린다. 노당선자는 당선된 후 DJ 주변의 비리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국민들의 뜻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노당선자의 정무참모인 L씨는 “원칙대로 한다”는 말로 이를 의역했다.

    동교동계 및 당내 일부 세력들과의 관계 설정을 읽기 위해서는 선대위 정개추 및 젊은 의원들의 흐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개추는 조만간 당 개혁 논의를 공식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정개추 신기남 본부장은 20일 “이제 노당선자는 국민이 열망하는 정치개혁을 망설임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운을 뗐다. 개혁세력이 정풍 대상으로 지목한 인사들 대부분이 동교동계인 점도 지금으로서는 대립각을 읽게 한다.

    야당과의 관계 설정도 매우 흥미롭다. 노당선자는 “인위적 정계개편은 하지 않겠다”고 야당을 안심시켰다. 과거처럼 힘으로 정치지형의 변화를 유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거국내각 구성 등을 통해 한나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끌어들이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른바 정치권에 대한 ‘햇볕정책’이다. 햇볕정책이 효과가 있을 경우 부산 경남지역의 개혁성향 의원들과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의 핵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력을 팽창시켜야 하고 그 경우 수혈 대상은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이다.

    그러나 노당선자는 시간이 많지 않다. 당-정이 분리된 민주당의 현실이 노당선자를 초조하게 만든다. 노당선자는 대통령에 취임하면 민주당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대통령이 정치와 정당사에 개입한다는 오해는 취임 초 대통령으로서는 피해야 한다. 따라서 당선자 신분인 지금을 당 개혁의 적기로 보고 있다. “취임 전 가시적 성과를 이루겠다”는 말의 배경이다.

    보다 큰 문제는 노당선자의 취임 이후다. ‘거야(巨野)’에 발목 잡혀 국정운영과 개혁작업에 차질을 빚었던 DJ 정부 초기의 악몽을 노당선자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노당선자는 취임 1년 뒤 17대 총선을 치러야 한다. 허니문 기간 동안 성원한 국민들에게 뭔가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감도 떨치기 어렵다. 야당과 샅바싸움을 하며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이런 부담감을 떨치지 못한다면 노당선자로서는 햇볕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방법과 해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정계개편을 통해 일거에 반전을 노리는 것이다. 승부사적 기질이 있는 노당선자의 정치캐릭터를 감안한다면 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정계은퇴로 구심점을 잃은 한나라당 인사들 가운데 여권의 분위기를 정탐하는 흐름이 이미 감지되고 있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손만 내밀면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내 구주류·보수세력 반작용 가능성도 높아

    그러나 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노당선자의 개혁세력 결집과 강한 드라이브는 필연적으로 노당선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온 당내 구주류 및 보수세력의 반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당내 보수파들 사이에서는 벌써 “소수여당을 더욱 소수화한다”는 논리로 노당선자의 개혁 드라이브에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이럴 경우 신구 간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특히 한나라당이 이 싸움에 동참, 노당선자를 몰아붙이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이에 따라 노당선자 주변에서는 “개혁신당의 창당이 여의치 않으면 17대 공천을 통해 물갈이를 할 수도 있다”는 대안론이 나온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북한 핵 및 반미감정,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문제 등 현안들에 대한 입장 정리 및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치에만 몰두할 수 없는 노당선자의 입장이 정치개혁에 대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고민을 짙게 한다.

    노당선자는 50대 중반이다. 그의 등장으로 3김 시대는 조종을 울렸다. 노당선자는 이제 3김이 남긴 유물인 ‘낡은 정치’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중이다. 노무현 정권의 승패를 가늠하는 이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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