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3

2002.12.12

“우린요 사탕보다 채소가 좋아요”

유기농 급식 ‘생태유아공동체’ 열풍… ‘세 살 적 입맛 평생 좌우’ 부모들이 더 호응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2-12-05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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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요 사탕보다 채소가 좋아요”

    부산대학교 부설 어린이집 원아들이 점심식사 때 먹을 유기농 채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와~ 잡채다! 식혜도 같이 나왔네.”

    11월28일 부산 장전동 부산대학교 부설 어린이집을 찾은 때는 마침 간식시간이었다. 당근과 시금치, 표고버섯이 풍성하게 들어간 잡채가 상 위에 오르자 아이들은 앞다투어 모여들었다. 입 안 가득 잡채를 넣은 채 재잘대는 모습은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간식은 없어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은 주위 주민들 사이에서 `‘유기농 유치원’으로 유명한 곳. 아이들에게 몸에 좋은 먹을거리만 준다는 소문이 퍼져 입학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150여명에 이를 정도다.

    이날 아이들이 먹은 간식도 물론 모두 유기농 음식. 안동의 한 농장에서 오리 재배한 쌀로 식혜를 만들었고, 잡채에는 유기농채소와 인도적으로 사육된 돼지고기만 넣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햄버거나 피자를 먹듯 맛있게 간식을 먹어치운다.

    “시금치나 당근을 골라내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죠? 올 3월 유기농 급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담백하고 씹기 힘든 어린이집 음식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사탕, 과자보다 유기농채소가 훨씬 맛있다고들 합니다.”



    부산·울산에서만 69곳 참여

    “우린요 사탕보다 채소가 좋아요”

    유기농 재료로 만든 잡채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들.

    어린이집 원장을 맡고 있는 부산대 유아교육학과 임재택 교수(53)는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우리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이 대견하지 않느냐며 웃어 보였다.

    부산대 어린이집은 현재 부산,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의미 있는 실험의 한 현장. 이곳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인 영·유아들에게 유기농 음식을 먹이는 `‘생태유아공동체’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의 유치원, 어린이집이 생활협동조합을 구성해 산지와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하고, 이렇게 구입한 먹을거리로 점심식사와 오전, 오후 간식을 제공한다.

    올 3월부터 시작한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보육시설은 현재 부산, 울산에만 69곳에 이른다. 줄잡아 7000~ 8000명의 어린이들이 인스턴트 음식 대신 유기농 현미쌀로 지은 밥을 먹고, 간식으로 고구마·수정과·호박죽 등을 먹게 된 것. 햄, 과자, 인스턴트 빵 등은 유치원 급식에서 아예 추방됐다.

    사실 생태유아공동체 운동 초기에는 이 실험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지켜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보육시설 원장들은 유기농 급식을 실시할 경우 1인당 5000원에서 최고 2만원까지 추가 부담이 생기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유치원을 옮길 것이라고 생각해 참여를 꺼렸다. 이미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유기농 음식을 먹겠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유치원 급식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생태유아공동체의 정착을 방해했다.

    생태유아공동체의 시작부터 유기농 급식에 참여한 동래새싹유치원 신숙희 원장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때는 제 자신조차 아이들이 유기농 음식을 먹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부모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유기농 먹을거리의 장점을 교육하고 생산지로 현장탐방을 나가기도 했죠. 스스로가 유기농 먹을거리의 좋은 점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생태유아공동체가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아요.”

    신원장은 “이제는 집에서도 유기농 음식을 먹고 싶다며 구입 방법을 묻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며 “좀 비싸더라도 유기농 급식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는 학부모들이 많아져 입학 대기자가 생길 정도”라고 설명했다.

    “우린요 사탕보다 채소가 좋아요”

    생태유아공동체 임재택 회장.

    생태유아공동체에서 구입하는 유기농채소는 3년 이상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 않은 땅에서 자연적 방식으로 재배한 것들. 심지어는 육류도 회원 시설의 수요가 모여 1마리 분량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최대한 ‘인도적으로’ 도살해 한꺼번에 공급한다고 한다.

    때문에 유치원에서 유기농 급식을 시작한 후부터 아이들의 알레르기나 아토피성 피부염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부산대 어린이집 튼튼반의 김준한군(28개월)도 유기농 식단으로 아토피성 피부염이 개선된 경우. 준한군은 태어났을 때부터 심한 아토피 증세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생을 했지만 어린이집 식단에 맞춰 식사를 한 후부터 상태가 급격히 좋아졌다고 한다. 김군의 어머니는 “준한이가 좋아진 것은 유기농 음식을 꾸준히 먹인 덕분”이라며 “이 때문에 식비 부담이 다소 커졌지만 다른 걸 아끼더라도 계속 유기농 음식을 먹일 생각”이라고 밝혔다.

    알레르기·아토피성 피부염 개선 효과

    이처럼 유기농 급식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최근 부산·울산 지역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이 직접 텃밭을 가꾸게 하고 소풍을 유기농 산지로 떠나는 보육시설까지 생겼다.

    부산 민들레유치원의 박영경 원장은 “매달 감자, 김치, 콩 등으로 주제를 바꿔가며 우리 먹을거리에 대한 프로젝트 교육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가꾼다”며 “원생들이 도시 아이들답지 않게 금방 흙과 친숙해지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정말 생태교육이라는 걸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부산에 있는 보육시설은 모두 1400여곳. 생태유아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임교수는 내년이면 이들 중 최소 수백 곳이 이 운동에 동참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전국으로, 그리고 초등학교 등 학교 급식으로까지 확대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린요 사탕보다 채소가 좋아요”

    어린이들이 유기농채소 산지인 언양 소래농원에서 직접 채소를 가꾸고 있다.

    “현재 수도권과 대구, 광주에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고 있어요. 좋은 유기농 산지만 확보된다면 이제 우리 아이들은 어느 유치원에서든 몸에 좋은 유기농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급식의 장점이 계속 알려지면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유기농 식단이 확대되겠지요.”

    현재 생태유아공동체의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건 부족한 유기농 산지. 대부분의 농민들이 농약과 제초제를 이용한 농업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유기농산물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유기농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농민들 사이에서 유기농업으로 우리 땅을 살리자는 움직임도 함께 일고 있다.

    생태유아공동체의 실험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유기농 음식에 익숙해져 평생 이 입맛을 지키게 된다면 유기농식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게 되고, 이와 더불어 우리 땅과 농업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생태유아공동체의 기대대로 과연 보육시설 유기농 급식이 우리 아이들과 농촌을 함께 살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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