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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저주’, 첨단 기술엔 안 통해!

英 과학자, 슈퍼컴 이용 관 속 미라 손 안 대고 재현… ‘파라오 잠 깨우면 죽는다’는 說 사라질 듯

  • 허두영/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 huhh20@hanmail.net

‘미라의 저주’, 첨단 기술엔 안 통해!

‘미라의 저주’, 첨단  기술엔 안 통해!

미라 네스페레너브를 3차원 영상으로 재현한 결과 미라의 외형(위)뿐 아니라 뼈와 혈관 등 미세한 부분까지 되살아났다(아래). SGI제공

1924년 4월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카르나본이 느닷없이 모기에 물려 죽었다. 투탄카멘의 미라가 들어 있는 관을 개봉한 지 6주 만의 일이었다. 모기에 물린 자리는 공교롭게도 투탄카멘의 얼굴에 나 있는 상처 부위와 똑같았다.

이로부터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투탄카멘의 파라오가 잠들어 있던 관 뚜껑에는 이런 글귀가 씌어 있었던 것이다. ‘파라오의 잠을 깨우는 자에게는 죽음의 저주가 내리리라.’

고고학에서 관을 열고 미라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인 듯하다. 미라 자체야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 즉 인간이었던 흔적에 불과하지만, 거기에는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수백, 수천년 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를 깨워 바깥공기를 쐬게 한다는 점에서 미망에 붙들리기 쉽다.

그러나 정작 고고학자에게는 이런 심리적인 부담보다는 미라를 다루는 데 따른 물리적인 부담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미라를 관찰하려면 관을 열고 미라를 들어낸 뒤 몸을 둘러싸고 있는 옷이나 헝겊(linen)을 조심스럽게 벗겨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미라의 옷이나 헝겊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시체의 일부가 헝겊에 엉겨붙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잃어버릴 위험성이 높다.

1500개 단면 영상 찍은 뒤 합성



‘미라의 저주’, 첨단  기술엔 안 통해!

특수장비를 갖춘 남자가 리얼리티 센터 안에서 도시계획에 활용할 3차원 영상을 살펴보고 있다.

심지어 옷이나 헝겊을 떼어내기도 전에 공기만 쐬어도 바스러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갑자기 공기를 쐬면 보존 상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미라의 잠을 깨우지 않고도 미라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X선 촬영 방식. 그러나 X선 방식 역시 완전한 형태의 미라를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X선은 미라를 만들 때 몸 속에 채워넣은 딱딱한 송진과 진흙덩이를 투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이집트 유물을 연구하는 존 테일러 박사가 기원전 800년 무렵 지금의 룩소르 지방의 제사장으로 알려진 미라 ‘네스페레너브(Nesperennub)’를 관 속에 그대로 둔 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오닉스 3000’이라는 슈퍼컴퓨터와 연결해 단층촬영한 데이터를 실제 모습과 다름없는 고해상도의 3차원 이미지로 전환시켜주는 장비 ‘리얼리티 센터’를 이용해 미라를 가상현실로 옮겨놓은 것.

‘미라의 저주’, 첨단  기술엔 안 통해!

미라의 저주를 비켜갈 슈퍼컴퓨터오닉스 3000.

테일러 박사는 미라가 든 관을 런던의 국립신경외과병원으로 옮겨 컴퓨터 단층촬영 장치에 넣은 뒤 1500개의 단면 영상을 찍은 다음, 미국 SGI사의 ‘리얼리티 센터’를 이용해 이들 영상을 자연스럽게 합성하여 3차원 이미지로 만들어냈다. 대영박물관이 1899년 이집트에서 옮겨온 뒤 그대로 창고에 보관해온 네스페레너브를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이다. 오닉스 3000은 ‘반지의 제왕’ ‘진주만’ ‘파이널 판타지’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구현하는 데 사용된 그래픽 전용 슈퍼컴퓨터.

이번에 테일러 박사가 네스페레너브를 3차원 입체영상으로 재현해냄으로써 대영박물관은 뜻밖의 성과를 얻어냈다. 1960년대에 대영박물관이 네스페레너브의 미라를 X선으로 촬영했을 때 미라의 머리 부위에 모자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까지는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상징으로 여겨 보관해오다가, 그가 죽은 뒤 미라와 함께 넣은 그의 태반일 것으로 추측되어 왔었다. 그런데 이번 테일러 박사의 촬영으로 그 물체는 작은 도자기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 도자기는 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화를 밝혀줄 새로운 열쇠로 기대되고 있다.

또 가상현실 기술로 도자기 아래를 들춰본 결과 두개골의 관자놀이에 구멍이 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구멍이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상을 확대하면 피부의 혈관이나, 도자기 겉에 묻어 있는 잔모래 같은 것도 볼 수 있을 정도다.

미라 두개골에 난 구멍도 확인

테일러 박사는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이 1986년부터 추진해온 ‘비저블 휴먼 프로젝트(Visible Human Project)’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라를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하는 작업을 추진해왔다. 비저블 휴먼 프로젝트는 인체를 직접 해부하지 않고도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인체를 3차원의 가상현실로 만드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서울대, 아주대, 한국전산원, 디지털아리아 등의 기관과 공동으로 한국인 고유의 인체에 대한 정보를 담는 입체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남자의 영상을 제작하고, 2004년까지 여자의 영상 제작을 완료할 계획이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표준 체형의 남자 시신을 골라 급속 냉동시킨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1mm 간격으로 절단한다. 그러면 몸 전체에서 1750장 정도의 얇은 단면이 나오는데 이를 한 장 한 장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3차원으로 복원하면 입체영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부와 오장육부는 물론 모세혈관에 이르기까지 몸 전체가 입체 디지털 영상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해서 얻은 입체영상은 인체를 연구하거나 교육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죽었던 사람이 사이버 공간에서 제2의 생명을 얻는 셈이다.

테일러 박사는 이번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내친김에 네스페레너브의 나이와 사망 당시의 건강 상태를 추정해내고, 나아가 얼굴 모습까지 복원할 계획이다. 대영박물관은 또 ‘리얼리티 센터’ 기술을 기반으로 3차원 가상현실을 구현해 관람객이 3차원 영상으로 재현된 미라를 직접 관찰하고, 마치 이집트에 있는 것처럼 미라 사이를 걸어다닐 수 있게 하는, 갖가지 이색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제 과학자들은 ‘파라오의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미라를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저주가 이제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미라의 주인이 살아 있을 때 그토록 갈구했던 영원한 생명을 이제 입체 영상의 형태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363호 (p96~97)

허두영/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 huhh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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