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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미리 보는 李-盧 내각

“망가진 계절 … 고개 못 들겠네”

중량급 인기 정치인들 행보 갈팡질팡 … 국민들 거센 비난 속 정치 입지 상실대선 정국의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망가진 계절 … 고개 못 들겠네”

“망가진 계절 … 고개 못 들겠네”

정계개편 과정에서 탈당, 당적 변경을 결행한 뒤 위기를 맞고 있는 김영배 이인제 의원, 김민석 전 의원(왼쪽부터).

”10월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내 김영배 의원실. 당시 김의원은 민주당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이하 후단협)의 좌장이어서 매일 오전 10여명의 기자들을 맞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이날은 김의원과 기자들과의 티타임이 길어져 점심식사로까지 이어졌다. 식사를 마친 뒤 김의원은 갑자기 기자들에게 “수첩, 볼펜 다 집어넣으라”면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노후보가 국민후보라고? 사기 치지 말라. 그게 어디 국민경선이냐. 자발적으로 참여한 국민이 몇 사람이나 되느냐. 후보들이 동원한 것이지.”

김의원의 ‘국민경선 사기극’ 발언은 다음날 신문에 보도됐다. 노후보측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김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사실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자꾸 건드리면 (국민경선) 내용까지 까발릴 거야. 내가 선거 관리한 사람이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1월4일 김의원은 “노후보로는 안 된다”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러나 노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자 11월26일 민주당에 복당했다. 국민경선의 사회를 본 중진 의원이 국민경선은 사기극이라면서 탈당을 하더니 22일 만에 ‘자칭 사기극 후보’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복당한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마디로 김의원이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다”고 말했다.

한때 대선 정국의 변수로 작용할 인사로 지목됐던 김영배, 이인제 의원과 김민석 전 의원이 요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모두 탈당이나 당적 변경 뒤 정치적 입지를 찾지 못한 채 위축돼 있다. 경우에 따라선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한때 중량감 있는 정치 이력의 소유자거나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사람들이어서 최근의 처지가 더 처량해 보인다.

후보단일화 패배 책임 떠안은 김민석 전 의원



11월26일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김영배 의원에게 복당 축하 만찬을 열어줬다. 이 자리에서 김의원은 “후단협의 모험이 있었기에 단일후보가 탄생했다”며 ‘탈당, 복당 미화론’을 폈다. 경선 사기극 발언에 대해서도 김의원의 측근은 “비보도를 전제로 한 비공식적 견해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의원은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일요일인 12월1일 저녁 늦게까지 지구당에 머물렀다. 중앙당 활동은 휴업 상태다. 상당수의 의원들을 거느리면서 대통령후보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한 달 전 위상은 지금 온데간데없다.

후보단일화 이후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는 ‘아름다운 패자’로 기억됐다. 그러나 아름다운 승복의 드라마를 연출한 후보단일화 협상의 주역 김민석 전 의원에겐 비난만이 돌아왔다. 시위에 나선 국민통합21 자원봉사자 100여명은 “여론조사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패배의 주역(?)으로 김 전 의원을 꼽았다. 김 전 의원은 정대표로의 후보단일화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다. 자신의 민주당 탈당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을 가장 괴롭힌 사람으로 통했다. “친정집에 너무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을 더 강력하게 몰아붙이지 못했다”면서 국민통합21의 1차 협상단을 비난해 사퇴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2차 협상단엔 자신이 직접 나섰다. 그러나 여론조사 패배 이후 패배 책임까지 뒤집어쓰게 됐으니 이는 그에게 또 다른 재앙이었다.

김 전 의원은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심정으로 민주당에서 국민통합21로 왔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노후보로 단일화가 되는 바람에 김 전 의원의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노후보의 정치적 동지였던 그가 노후보를 버린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후보단일화 합의 이후 김 전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민주당 의원들은 “민석이 때문에 얘기를 많이 못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국민통합21 내부와 민주당으로부터 동시에 따가운 눈총을 받는 처지다. 탈당으로 정치명분에 흠집을 남겼고, 정몽준 의원이 대통령이 되지 못함으로써 실익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정몽준 대표는 11월29일 당직개편을 단행, 그를 선거대책특보로 임명했다. 정대표의 신뢰가 그나마 위안거리다.

민주당 경선에서 노후보가 승리했을 때 이인제 의원의 마음은 이미 노후보에게서 떠나 있었다. 노후보가 경선 TV토론에서 “한나라당 후보 하실 분”이라며 이의원을 공격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 말에 이의원은 내심 충격을 받았다. 최근 한나라당이 도청기록이라고 주장하며 공개한 문건에는 이의원이 경선 당시 전화통화에서 노후보를 ‘포악한 사람’이라고 혹평한 것으로 돼 있다.

노후보 측근에 따르면 노후보는 경선 이후 “이인제 의원을 껴안으라”는 건의를 수차례 받았다. 노후보는 ‘전화나 한번 해봐라’는 반응이었고, ‘전화 연결이 잘 안 된다’고 하면 ‘알았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두 사람 사이에 왕래가 없었다.

이의원은 11월26일 저녁 민주당 김원기 정치고문, 정대철 선대위원장에게 “(탈당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겠다”고 말했다. 이의원 측근은 기자에게 “같은 당 두 원로가 직접 찾아와서 술 한잔 하자는데 그런 자리에서 매정한 말을 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며칠 뒤 한나라당이 공개한 문건에서 “경선 당시 김원기 고문이 박지원 청와대 특보에게 ‘노후보가 이인제보다 경쟁력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김고문은 한나라당의 조작이라고 반발했지만 이의원은 이를 빌미로 삼아 민주당 탈당을 감행했다.

경선 불복 두 번이나 당을 박차고 나간 이인제 의원

후보단일화가 성사된 이후 한나라당은 노-정 단일화 진영에 이인제 의원,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합류하는 시나리오를 가장 우려했다. 그러나 이내 “이의원은 절대로 노후보를 돕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보고가 당 지도부에 올라갔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이의원과 네댓 차례 접촉해 이의원 의중을 파악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은 노후보에 대한 ‘저주’에 가까웠다”고 평했다. 하나로국민연대 이규양 대변인은 기자에게 “이한동 후보에게도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이인제-자민련-이한동으로 이어지는 중부권 세력론이 다시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투표일 10여일 전 이의원, 김총재가 이회창 후보 지지선언을 해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의원이 먼저 자민련에 입당하더라도 이미 ‘반(反)노무현’을 선언한 이상 상관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의원 탈당의 최대 피해자는 노후보가 아니라 이의원 본인이 될 수도 있다. 이의원은 대통령후보 경선을 두 번 불복하고, 소속 정당을 두 번 탈당한 최초의 정치인이 됐다. 민주당 창당을 주도한 민주당의 ‘이념적 대주주’로서, 탈당은 자기부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5년 전엔 본인이 직접 대통령후보가 되어 500만표를 얻었지만 지금 그의 처지에선 탈당 이후 비전도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그에게 정계은퇴를 권유하고 있다. 나이는 ‘신세대’지만 정치행태는 ‘구세대’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김영배, 이인제 의원과 김민석 전 의원 앞에 놓인 위기의 본질은 탈당, 당적변경 행위에 대한 여론의 외면인지 모른다. 여론과 유권자는 명분, 약속, 도덕적 가치를 지키는 정치인에게만 지지를 보낸다. 정치인은 실수로, 판단착오로, 혹은 감정에 치우쳐, 혹은 실리에 눈이 어두워져 가끔 이런 원칙을 어기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웬만큼 노력하지 않고선 한번 등돌린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주간동아 363호 (p32~33)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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