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8

2002.04.04

현역 최고 필드의 사령관 “지존은 하나”

흠잡기 어려운 전천후 공격수 ‘막상막하’… 프로무대 데뷔 여덟 차례 우승도 똑같아

  • < 김한석/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 hans@sportsseoul.com

    입력2004-10-25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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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 최고 필드의 사령관 “지존은 하나”
    루이스 필리페 마데이라 카에이루 피구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소속72년 11월4일포르투갈 알마다에서 출생대표팀 백넘버 7번, 프로팀 백넘버 10번87년 유럽청소년(16세 이하)대회 우승91년 세계청소년(20세 이하)대회 우승98, 99년 스페인 프로축구 우승



    현역 최고 필드의 사령관 “지존은 하나”
    데이비드 로버트 조셉 베컴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75년 5월2일 영국 레이턴스톤에서 출생대표팀, 프로팀 백넘버 모두 7번‘스파이스 걸스’의 전 멤버인 부인 빅토리아 애덤스와의 사이에 1남(브루클린)프레미어리그 96~97시즌 ‘올해의 신인상’2000~2001시즌 소속팀 3연속 리그 정상



    세계 최고의 오른쪽 윙은 누구인가. 이 우문(愚問)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가 자랑하는 전설적인 축구 영웅들의 견해는 살짝 엇갈린다. 프란츠 베켄바워는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현존 최고 선수”로 지목하는 반면, 미셸 플라티니는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30·레알 마드리드)를 꼽는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 대표팀 감독들의 의견은 어떨까. 지난해 12월 국제축구연맹(FIFA)이 130개국 감독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2001년 올해의 선수’상에서는 250표를 모은 피구가 238표를 모은 베컴을 제쳤다. 그러나 91년 이 상이 생긴 이래 가장 근소한 차로 영광의 주인공이 갈렸을 만큼 두 스타의 명성과 기량은 거의 차이가 없다. 더욱이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똑같은 오른쪽 미드필더가 아닌가. 이제 세계 축구계의 시선은 이들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벌일 ‘2라운드’에 쏠린다.

    사실 윙 플레이어, 즉 ‘공격 날개’는 골잡이나 플레이메이커만큼 화려한 조명을 받는 포지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피구와 베컴은 스피드만 중요하게 여긴 윙의 역할을 공격 리더와 필드 사령관의 위치로 승화시켰다. 포지션의 컨셉트를 바꾼 두 사람의 천재성은 현란한 공간 돌파와 전광석화 같은 크로스(센터링)에서 빛난다. 여기에 벼락같은 장거리 슛, 자로 잰 듯한 프리킥과 코너킥, 특히 오른발 끝에서 뿜어나오는 촌철살인의 직접 프리킥 슈팅은 단연 세계 최고의 적중률을 자랑한다.

    새 천년 첫 축구 축제였던 ‘유럽판 월드컵’ 유로2000. 첫 경기인 포르투갈-잉글랜드전은 두 미드필더의 화려한 묘기가 불꽃 튀긴 명승부였다. 베컴이 크로스로 선취 2골을 어시스트하자, 피구는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네트를 갈랐다. 승부는 포르투갈의 3대 2 역전승. 베컴에 판정승을 거둔 피구는 결국 포르투갈을 4강으로 이끌며 대회 사상 처음으로 비(非)우승팀에서 MVP를 수상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그러나 절치부심한 베컴은 지난해 10월 월드컵 예선 9조 그리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다시 한번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흔든다. 2대 1로 지고 있던 후반 48분, 아크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 이 경기를 놓치면 전 경기에서 독일을 5대 1로 대파한 것도 허사로 끝나며 플레이오프로 밀려날 위기였다. 한 골을 기록한 셰링엄이 볼을 매만지자 베컴은 “이번엔 예감이 좋다”며 빼앗다시피 기회를 잡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오른발로 휘감아 올린 공은 그대로 왼쪽 네트에 꽂혔고, 이 한방으로 잉글랜드는 축구 종가의 명예를 회복하며 월드컵에 직행했다. ‘베컴에게 기사 작위를 줘야 한다’는 잉글랜드 팬들의 극성스런 환영 물결이 선수단이 귀국하는 히드로 공항을 가득 메웠다.

    리그에서도 2~3경기에 한 번씩 프리킥이나 크로스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이들 ‘오른발의 마술사’에게는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대표팀에서 주장 완장을 차는 야전사령관이며, 오른쪽이 ‘안방’이지만 언제든지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패스를 찔러주고 직접 기습 슈팅을 날리는 프리맨 스타일이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후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이끈 횟수도 공교롭게 여덟 차례로 똑같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슈팅 강도와 크로스 각도는 베컴이 더 위력적으로 보인다. 97년 리그 첼시전에서 기록한 시속 156km의 슈팅 속도는 가공할 만하다. 90년 월드컵 최고의 슈팅 속도를 자랑한 황보관의 시속이 114km였음을 기억하면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96년 리그 개막전 윔블던과의 경기에서 터진 55m 장거리 슛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황금골이었다.

    반면 피구의 강점은 시야와 활동 공간이 넓고 슈팅 타이밍이 빠르며, 왼발-오른발 로빙 크로스와 땅볼 종패스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지단에 비견되는 플레이메이킹도 이 때문에 가능한 일. 피구는 유로2000은 물론 지난 시즌 프리메라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비공식으로 어시스트를 가장 많이 한 선수로 꼽혔다. 유로2000이 끝난 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인 5600만 달러를 받은 것도 전천후 공격력 덕분이다.

    폭발력에서도 피구의 우세가 돋보인다. 91년 대표팀 데뷔 이후 79경기 26골 기록(이는 포르투갈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으로 66년 월드컵 득점왕인 에우제비오(41골)에 이어 포르투갈 대표 역대 골랭킹 2위에 올라 있는 것.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도 9경기에서 6골을 터뜨려 팀 내 2위다. 베컴도 월드컵 예선 7경기에서 3골을 기록해 팀 내 2위를 마크하긴 했지만 96년 대표팀 데뷔 이후 48경기에서 6골을 기록한 것을 보면 공격 파워에선 피구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베컴에게는 적극적인 수비 가담까지 하며 전후반 90분을 달려도 지칠 줄 모르는 ‘강철체력’이 있다. 일본의 트루시에 감독이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 세미나에서 아시아 각국 지도자들에게 강의할 때 ‘세계 표본’이라 칭찬하며 사례를 들 정도로 소문난 체력이다. 6년 동안 A매치에서 활약하면서 교체 멤버로 뛴 것은 불과 세 번. 베컴이 주당 3만5000파운드였던 자신의 리그 몸값을 8만 파운드(1억5000만원)로 파격적으로 인상시키며 4년 재계약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강철체력 덕분이었다.

    11세 때 ‘보비 찰턴 축구기술대회’ 최우수상 수상을 첫 인연으로, 60년대 잉글랜드의 영웅 보비 찰턴의 전설을 이어받을 인물로 성장한 데이비드 베컴. 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 우승 이후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를 이끌어온 에우제비오의 후계자로 16년 만에 처음 오른 월드컵 본선에서 우승을 노리는 루이스 피구.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선보일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이들 두 사람의 오른발 끝에서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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