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7

2001.11.01

“금강산 가는 길 누구 맘대로 뚫어” 있다

북한 군부, 안보 부담 육로관광에 부정적 … 이산 상봉 연기는 김정일의 ‘軍心 달래기’

  • < 김 당 기자 > dangk@donga.com

    입력2004-11-16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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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가는 길 누구 맘대로 뚫어” 있다
    지난 6월 금강산관광사업을 추진해 온 남북한 주체인 현대아산과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가 금강산 육로관광 및 관광특구 지정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을 때 정부 당국자들은 이를 크게 환영하면서도 내심 경계의 빛을 감추지 않았다. 입김이 드센 북한 군부가 너무 쉽게 ‘비준’을 해준 것 아니냐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월 중단 이후 6개월 만인 9월15일에, 그것도 미국에서 전대미문의 테러참사가 발생한 지 나흘 만에 남북 장관급회담(5차)이 예정대로 개최되었을 때만 해도 군부의 반발 움직임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금강산 육로관광을 포함한 남북관계 개선 현안을 둘러싸고 북한 군부의 입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북한측 대표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것은 지난 10월3∼5일 금강산에서 열린 제1차 금강산관광 활성화 당국간 회담에서였다. 사실상 모든 쟁점을 2차 회담으로 미루는 데 ‘합의’한 이날 1차 회담에서 남북한 양측이 입장 차이를 보인 핵심 쟁점은 육로관광 및 이를 보장할 군사실무회담, 그리고 대가금 지불과 당국의 역할을 둘러싼 것이었다.

    우선 남측은 군사분계선 근처의 단절된 도로구간을 보수하는 방식으로 임시도로를 건설해 육로관광을 연내 시범실시하고, 본도로는 임시도로 공사와 병행해 근접한 지역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건설하자고 제의했다. 일단 연내 시범실시를 목표로 조속한 시일 내 군사실무회담을 갖고, 임시도로 공사와 본도로 공사를 병행할 것을 제의한 것. 그러나 북측은 육로관광 실시에 대한 원칙적 공감만 표시할 뿐, 군사실무회담과 관련해서는 군의 소관사항이라는 이유를 들어 특별한 언급을 회피했다.

    “금강산 가는 길 누구 맘대로 뚫어”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 대가금 지불과 당국의 역할과 관련해 북측은 대가금 지불에 대한 우리측 정부 차원의 보장을 요구하며 금강산사업을 남북 당국이 책임지는 사업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남측은 금강산사업은 민간사업이므로 남측 당국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한 남북한 당국이 합의한 것은 10월19일에 2차 회담을 개최키로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 군부의 반발 움직임은 이미 금강산 회담 당시 북측 대표단의 발언에서 예고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당시 북측 대표 중 한 사람인 방종삼 무역성 부국장 겸 금강산관광총회사 총사장의 발언이 주목을 끌었다는 것. 방종삼 총사장은 현대아산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는 북측 실무 총책임자. 다음은 10월4일 남측 대표단과 기자단이 삼일포·해금강 일대를 참관할 때 육로관광에 대해 의견을 묻자 방종삼 대표가 했다는 발언의 요지.



    “해로관광에 이미 수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다시 육로관광 문제를 꺼내면 되겠느냐.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겠냐. 조건은 다 되어 있는데 실천이 따르지 않아 안타깝다. 어떻게 하면 뱃길관광을 살릴 방안이 있는지 연구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발언 의도는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육로관광은 금강산사업 대가에 대한 남측 당국 차원의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또 이는 카지노, 면세점, 스키장, 골프장 등 남측(현대)의 관광 활성화 조처가 선행되면 뱃길관광으로도 사업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북측의 인식과 함께 뭍길관광에 대한 의지 결여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할 것은 뭍길관광에 대한 북한 군부의 부정적 반응 때문에 군부를 설득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1차 금강산 회담 마지막날인 10월5일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남조선 강점 미군은 조국통일의 장애물’이라는 제목의 보도물을 통해 “미국이 반북·반통일 책동에 남조선의 군부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판해 관심을 끌었다. 이 보도물은 주로 미국의 ‘반북 책동’을 겨냥한 것이지만 남한 군부를 거론함으로써 지난해 주적(主敵) 파문 이후 잠잠했던 불편한 심기를 다시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정부 당국자들은 금강산사업 활성화 당국간 회담(1차)에서 이 사업에 필요한 절차와 방법을 토의할 군사실무회담의 조기 개최 합의에 실패한 것도 군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금강산 가는 길 누구 맘대로 뚫어” 있다
    금강산관광 활성화의 기본 골격은 육로 개설과 관광특구 지정. 따라서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군부의 동의와 군사적 측면에서의 여러 요인들을 선행적으로 마무리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측 안(案) 의 핵심은 동해안 국도 7호선 중 남측 통일전망대와 북측 고성군 온정리를 잇는 비포장 임시도로 13.7km를 조속히 개통해 시범관광을 실시하고, 곧이어 도로포장 공사에 들어가자는 것. 물론 이런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비무장지대(DMZ) 개방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DMZ를 개방하는 문제는 남북한을 비롯해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와도 연관돼 있다. 남과 북, 유엔사는 이미 지난해 5차에 걸친 군사실무회담을 열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작업에 따른 DMZ 개방 절차와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어 금강산 지역의 DMZ를 여는 문제는 법적으로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문제는 법적인 규정과 절차를 떠나 여기에는 양측 군부의 미묘한 내부 감정이 얽혀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측 복안에 따르면 육로관광에 필요한 도로폭은 약 50m. 전문가들은 이것이 산술적인 측면에서는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군사적 측면에서는 엄청난 전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앞서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남북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해 사업을 개시하자 일부 극우 인사들이 “북(北)의 남침 루트를 깔아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듯 금강산 육로관광 도로 개설은 ‘미군과 남(南)의 북침 루트를 깔아주는 것’이라는 북한 극좌 인사들의 비난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DMZ 개방은 양측 군부 입장에서 보면 일정구역에 한해 무장을 해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히 북한의 군부 인사들은 DMZ 개방을 곧 자신들에 대한 무장해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관광도로가 개설될 동부 해안지역의 군사 시설물을 제거하는 대신 인근 지역에 대체 시설물을 설치하는 데 필요한 지형 조건이나 물리적인 요인들도 양측 군부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군부로서는 달러도 좋지만 안보에 조금이라도 구멍이 뚫려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로관광 도로를 개설하기 전에 필요한 사전조치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98년 금강산 뱃길을 개방할 때도 사전에 금강산 온정리 일대의 주민을 소개(疏開)하고 담을 쌓는 등 격리작업을 철저히 준비한 바 있다. 이를 종합하면 북한 군부가 아직은 금강산 관광도로를 개설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기를 통보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방을 주도해 온 ‘아태’에 불만을 피력해 온 군부의 손을 들어준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김정일의 비준이 없이는 비무장지대 풀 한포기도 뽑지 못한다‘고 말하기 않았는냐”면서 ”이산가족 교환방문 같은 중대한 사업의 연기를 결정할 수 있는 인물은 김정일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남한에 ‘남남갈등‘이 있듯 북한에도 ‘북북(北北)갈등”이 존재하며 그 갈등의 핵은 북한 군심(軍心)이고 이산가족 연기는 김정일의 군심(軍心)달래기 일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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