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2

2016.06.15

스포츠

흑자 전환 코앞 넥센 히어로즈의 반란

꼴찌 후보에서 3위 질주…천덕꾸러기에서 롤모델로 변신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6-06-13 14: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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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할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베스트셀러 경영 지침서 ‘머니볼’의 소제목은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이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 마이클 루이스는 미국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손꼽히게 가난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다저스 등 빅마켓 부자구단을 상대로 어떻게 더 많은 승리를 거두는지 빌리 빈이라는 혁신적인 단장을 통해 주목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논란의 대상이었고 새로운 흐름의 선구자로도 꼽힌 빈 단장의 철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억 원 이상으로 폭등한 슈퍼스타들의 연봉은 도무지 감당 안 되고 계약금이 부족해 신인도 마음대로 뽑지 못하니 명성이나 체격 등이 아닌, 승리에 가장 큰 보탬이 되는 다양한 기준을 세워 선수를 선발하고 기용한다는 원칙이다.  

    그 바탕에는 스카우트의 눈이 아닌, 철저히 통계를 기반으로 한 선수들의 데이터 평가가 있다. 운동 능력과 신체적 우월성, 특히 투수의 경우 포심 패스트볼이 과연 시속 몇km까지 찍히느냐가 전통주의자들 관점이라면 빈 단장은 이 같은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양한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여기에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등 여러 지표가 사용됐는데, 이에 따라 40홈런 타자는 계약할 수 없어도 그와 비슷한 출루율을 올릴 수 있는 타자를 훨씬 싼값에 영입하고, 두 선수의 승리 기여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 등을 보여줬다.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머니볼’은 2003년 출간돼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됐다. 하지만 2015년까지 빈 단장이 이끄는 오클랜드는 우승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조롱의 대상이던 ‘머니볼’의 혁신은 이제 구단 대부분에서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재해석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자본주의시장의 가장 잔혹한 부분들이 집약된 프로스포츠 리그에서 재력의 경쟁이 ‘머니볼’ 소제목처럼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도시가 연고지이든, 아니든 리그 수입 대부분을 똑같이 나눠 갖는 미국 미식축구리그(NFL)와 비교하면 메이저리그는 분명 차별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는 어떨까. 넥센 히어로즈(공식 기업명은 서울 히어로즈)는 지난해 310억 원 매출을 올렸다. 임직원과 프로야구 선수를 모두 포함해도 전체 구성원이 200여 명인 중소기업이다. 이 작은 기업 히어로즈는 연매출 200조 원 이상을 기록하는 초대형 글로벌기업 삼성, 150조 원 이상인 현대자동차 등 대한민국 굴지의 대그룹에 속한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빈 단장의 오클랜드에 비해 훨씬 더 ‘불공정한 게임’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히어로즈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그 어떤 구단도 하지 못한 순수한 흑자 달성을 올해 목표로 하고 있다. 수십여 개 계열사를 가진 모그룹에서 지원해주는 광고비로 이룬 흑자가 아니다. 단 한 개의 관계사도 없이 프로야구 구단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히어로즈는 올 시즌 개막 전 최하위 후보로 꼽혔다. 지난 2년간 3, 4, 5번 타자에 이어 주전 마무리 투수까지 팀을 떠났다. 외국인 선발 에이스는 일본으로 갔고, 국내 토종 1선발 투수는 부상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상태. 누구나 힘겨운, 그리고 잔혹한 시즌을 예상했다. 그러나 히어로즈는 4위권과 큰 격차를 유지하며 꾸준히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프로야구 팀이 돈을 아꼈다는 것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큰 지출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히어로즈는 철저히 지갑을 닫은 상태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3년간 히어로즈 구단 매출은 200억 원 초반에서 300억 원을 넘어섰고, 팀은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 기간 해마다 선수 영입에만 수백억 원을 쏟아부은 한화 이글스는 가을야구를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500억 원대 매출 올리면 흑자 전환 가능

    올해는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의 이적료 약 150억 원과 메인 스폰서 넥센타이어 등 각 기업의 광고비 및 후원금, 입장 수익금, 중계권료 등을 더해 400억〜500억 원 이상 매출을 목표로 한다. 5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면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 물론 박병호의 이적료가 더해진 결과다. 매년 박병호 같은 선수를 미국으로 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프로야구 구단의 자생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난해까지 리그 전체에서 가장 파격적인 모그룹 지원을 받았던 삼성 라이온즈는 2015년 총 576억 원 매출을 올렸다. 이 중 그룹 광고비 등 사업 수입이 482억 원이다. 삼성은 이 기간 146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3년 연속 100억 원 이상 적자다. 물론 야구단을 통해 사회공헌 및 그룹 브랜드 이미지 등 적자를 상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반면 히어로즈는 이마저도 기댈 곳이 없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프로스포츠 구단이라면 재정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모기업 최고 경영진의 새로운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히어로즈와 똑같은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히어로즈의 놀라운 행보는 바로 성적이다. 성적이 나야 관중이 많이 오고 기업 광고도 늘어난다. 이장석 히어로즈 대표는 서울 목동에서 팀의 투타 전력을 타자친화적인 구장에 맞추는 장기 변화로 큰 성공을 거뒀다. 올해 서울 고척스카이돔으로 홈구장을 옮겼고,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박병호 등 홈런 타자를 연달아 메이저리그로 보낸 뒤 기동력 있는 팀으로 탈바꿈시켜 강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현장 책임자인 염경엽 감독의 장기 비전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매년 FA선수가 떠날 수 있고 해외 진출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대체 전력 육성에 공을 들였다. 염 감독은 10개 팀 사령탑 가운데 유일하게 스프링캠프에서 미리 주전 선수를 정하고 이를 통보한다. 그 대신 염 감독은 백업 선수 혹은 2군에서 시작해야 할 선수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우리는 네가 몇 년 후 주전으로 성장하길 원한다. 지금은 그 과정이다.” 베테랑의 경우 “2군에서 열심히 하면 트레이드도 시켜준다”고 말한다. 주전에서 이탈했다고 낙오하기보다 대체 전력으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이해시켜 동기 부여를 한다는 전략이다. 장기 성장 프로그램을 소화한 유망주는 1군과 동행하고 집중 훈련을 통해 팀 전력으로 자리 잡는다. 올 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오른 투수 신재영, 새로운 선발 투수 박주현,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거듭난 김세현 등이 그 성과다.

    이효봉 스카이스포츠 야구해설위원은 “염경엽 감독은 몇 년 전부터 홈런 타자들의 이적을 예상하고 빠른 기동력을 준비해왔다. 매년 새로운 투수도 발굴한다. 장기적 시각에 따른 준비와 대처 능력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개막 전 최하위 후보로 거론될 때 염 감독은 직접 우린 차를 나눠주고 옅게 웃으며 “위로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투수와 타자 파트 모두 많은 선수가 떠나고 부상했지만 목표 승수에는 변함이 없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믿는다. 올해는 젊은 선수들이 이기는 과정을 더 많이 배우는 시간이길 바란다. 2018년과 2019년 더 큰 목표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 얘기가 현실적으로 크게 와 닿지 않았지만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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