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순결을 지지하는가? 결혼은 여자가 남자 가문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출산이야말로 여성의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믿는가? ‘어떤 경우’라도 낙태에 반대하는가? 여기서 ‘어떤 경우’란 산모가 처한 경제적, 사회적 상태뿐 아니라 출산에 따르는 고도의 육체적, 의학적 위험까지 포함한다.
모든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뱀파이어(흡혈귀) 가문의 입회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피를 빨 수 있는 면허와 영생의 권리도 받을 수 있겠다. 물론 농담이다.
전 세계 여성 관객, 특히 소녀 팬을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뜨린 로맨틱 판타지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4번째 작품 ‘브레이킹 던 파트 1’(이하 브레이킹 던 1)이 한국에 상륙했다. 스테파니 메이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첫 편인 ‘트와일라잇’부터 ‘뉴 문’ ‘이클립스’를 거쳐 이번 작품까지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미국의 십대 소녀들을 진원지로 폭발적인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소설과 영화가 성공하자 학자들은 앞다퉈 ‘트와일라잇 현상’을 연구한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열광적인 팬들을 가리키는 ‘트와이 하드(TwI-hard, 트와일라잇+다이 하드)’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편수를 더해갈수록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성(性)과 연애, 결혼에 관한 보수주의적 태도를 더욱 대담하면서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브레이킹 던 1’은 그 절정에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평범한 여고생이던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와 뱀파이어 청년인 에드워드 컬렌(로버트 패틴슨 분)의 사랑을 그린다. 전편에선 벨라가 에드워드뿐 아니라 오랜 친구이자 늑대인간 종족인 제이콥(테일러 로트너 분)과의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했다.
‘브레이킹 던 1’에선 드디어 벨라가 삼각관계를 끝내고 에드워드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영화는 결혼식과 신혼여행지(브라질의 ‘처녀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는 데 초반 40분을 할애한다. 객석을 압도적으로 메운 여성 관객에 대한 팬 서비스다. 최고의 미남미녀 스타가 등장하는 ‘웨딩 및 허니문 화보’는 지루하지만 멋지다.
새 작품에서 갈등의 씨앗은 벨라가 아직 뱀파이어가 되지 않은 인간의 몸으로 에드워드와 첫날밤을 치르고 난 후 잉태한 새로운 생명에서 비롯된다. 이상 속도로 빠르게 자라나는 태아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이다. 그대로 놔둔다면 벨라를 죽일 수도 있다. 늑대인간에게도 종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 같은 존재다. 에드워드와 제이콥은 태아를 포기하라고 벨라를 다그치고 늑대인간들은 불행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달려든다.
멋모르는 신랑들이 그렇듯 결혼 전야에 에드워드는 “고백할 게 있다”며 입을 뗀다. 벨라는 “혹시 총각이 아닌 거야?”라고 웃으며 반문한다. 그렇다. 이 영화가 강력하게 웅변하는 덕목은 ‘혼전순결’이다. 전편 ‘뉴 문’에서 애틋한 사랑의 행위를 나누던 남녀 주인공은 쾌락의 판도라 상자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난 결혼 전까지 너의 순결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첫날밤을 앞두고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벨라의 얼굴을 거듭 클로즈업한다. 십대에 결혼하고 섹스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은연중의 경고다. 결국 십대의 뱀파이어 부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린다. 결혼 열흘 만에 벨라의 배가 불러온 것.
다른 등장인물들은 ‘태아(fetus)’ 혹은 ‘그것(it, the thing)’이라고 부르는데, 유독 벨라는 이에 항변하며 배 속의 존재를 ‘아기(baby)’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지만 아기를 낳겠다고 한다. ‘낙태반대’는 ‘브레이킹 던 1’에 선명하게 각인된 메시지다.
에드워드가 속한 뱀파이어 종족의 모습에서 중세 유럽 왕실이나 귀족 가문의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선민인 뱀파이어(귀족)가 인간(평민)을 사랑하고 이들의 결합을 가문에서 승인한다. 신분을 극복한 여자는 혼인을 통해 뱀파이어가(家)의 일원이 된다. 고(故) 다이애나 황태자비나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자비를 떠올리게 하는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뱀파이어 버전과도 같다. 여기에 더해 벨라는 에드워드와 제이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성격이나 행동 동기도 부여되지 않아 실체 없는 여성 캐릭터로 그려졌다. 이 점에 대해 미국 자유주의자와 페미니스트들이 혹평을 쏟아낸다.
실제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영미계 언론의 영화 평에 자주 등장한다. ‘LA타임스’는 “‘브레이킹 던1’은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는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영화 속 혼전순결과 낙태반대, 여성차별 메시지를 조명했다. “트와일라잇의 벨라는 잘못된 여성 롤모델인가?”(더 위크), “정말 보수적인 ‘브레이킹 던1’(인디와이어)의 섹스와 러브, 그리고 뱀파이어 베이비 : 트와일라잇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글로브 앤드 메일) 등도 같은 맥락에서 작품을 해석했다.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할리우드에서 이 같은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던 이유를 원작소설 작가인 스테파니 메이어의 성향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인 작가는 블로그 등에서 “교리에 철저히 봉사하도록 작품을 썼다”고 자인했다. 또 다른 여성작가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대조한 흥미로운 비평도 있다. “‘트와일라잇’시리즈와 달리 ‘해리포터’는 숙명론과 순혈주의에 반대하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메이어와 달리 롤링은 책 집필 당시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싱글맘이었다. 또한 영국 보수당에 극렬 반대하는 진보적 정치관의 소유자였고, 책으로 번 소득의 상당액을 자신이 지지하는 노동당 및 각종 단체에 기부했다.
그렇다면 ‘진보적 소년 마법사’와 ‘강경 보수 흡혈귀 십대 커플’을 다룬 두 영화는 전 세계 젊은이에게 각각 좌우 이념의 날개 구실을 한 셈인가.
모든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뱀파이어(흡혈귀) 가문의 입회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피를 빨 수 있는 면허와 영생의 권리도 받을 수 있겠다. 물론 농담이다.
전 세계 여성 관객, 특히 소녀 팬을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뜨린 로맨틱 판타지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4번째 작품 ‘브레이킹 던 파트 1’(이하 브레이킹 던 1)이 한국에 상륙했다. 스테파니 메이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첫 편인 ‘트와일라잇’부터 ‘뉴 문’ ‘이클립스’를 거쳐 이번 작품까지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미국의 십대 소녀들을 진원지로 폭발적인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소설과 영화가 성공하자 학자들은 앞다퉈 ‘트와일라잇 현상’을 연구한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열광적인 팬들을 가리키는 ‘트와이 하드(TwI-hard, 트와일라잇+다이 하드)’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편수를 더해갈수록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성(性)과 연애, 결혼에 관한 보수주의적 태도를 더욱 대담하면서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브레이킹 던 1’은 그 절정에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평범한 여고생이던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와 뱀파이어 청년인 에드워드 컬렌(로버트 패틴슨 분)의 사랑을 그린다. 전편에선 벨라가 에드워드뿐 아니라 오랜 친구이자 늑대인간 종족인 제이콥(테일러 로트너 분)과의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했다.
‘브레이킹 던 1’에선 드디어 벨라가 삼각관계를 끝내고 에드워드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영화는 결혼식과 신혼여행지(브라질의 ‘처녀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는 데 초반 40분을 할애한다. 객석을 압도적으로 메운 여성 관객에 대한 팬 서비스다. 최고의 미남미녀 스타가 등장하는 ‘웨딩 및 허니문 화보’는 지루하지만 멋지다.
새 작품에서 갈등의 씨앗은 벨라가 아직 뱀파이어가 되지 않은 인간의 몸으로 에드워드와 첫날밤을 치르고 난 후 잉태한 새로운 생명에서 비롯된다. 이상 속도로 빠르게 자라나는 태아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이다. 그대로 놔둔다면 벨라를 죽일 수도 있다. 늑대인간에게도 종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 같은 존재다. 에드워드와 제이콥은 태아를 포기하라고 벨라를 다그치고 늑대인간들은 불행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달려든다.
멋모르는 신랑들이 그렇듯 결혼 전야에 에드워드는 “고백할 게 있다”며 입을 뗀다. 벨라는 “혹시 총각이 아닌 거야?”라고 웃으며 반문한다. 그렇다. 이 영화가 강력하게 웅변하는 덕목은 ‘혼전순결’이다. 전편 ‘뉴 문’에서 애틋한 사랑의 행위를 나누던 남녀 주인공은 쾌락의 판도라 상자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난 결혼 전까지 너의 순결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첫날밤을 앞두고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벨라의 얼굴을 거듭 클로즈업한다. 십대에 결혼하고 섹스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은연중의 경고다. 결국 십대의 뱀파이어 부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린다. 결혼 열흘 만에 벨라의 배가 불러온 것.
다른 등장인물들은 ‘태아(fetus)’ 혹은 ‘그것(it, the thing)’이라고 부르는데, 유독 벨라는 이에 항변하며 배 속의 존재를 ‘아기(baby)’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지만 아기를 낳겠다고 한다. ‘낙태반대’는 ‘브레이킹 던 1’에 선명하게 각인된 메시지다.
에드워드가 속한 뱀파이어 종족의 모습에서 중세 유럽 왕실이나 귀족 가문의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선민인 뱀파이어(귀족)가 인간(평민)을 사랑하고 이들의 결합을 가문에서 승인한다. 신분을 극복한 여자는 혼인을 통해 뱀파이어가(家)의 일원이 된다. 고(故) 다이애나 황태자비나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자비를 떠올리게 하는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뱀파이어 버전과도 같다. 여기에 더해 벨라는 에드워드와 제이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성격이나 행동 동기도 부여되지 않아 실체 없는 여성 캐릭터로 그려졌다. 이 점에 대해 미국 자유주의자와 페미니스트들이 혹평을 쏟아낸다.
실제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영미계 언론의 영화 평에 자주 등장한다. ‘LA타임스’는 “‘브레이킹 던1’은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는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영화 속 혼전순결과 낙태반대, 여성차별 메시지를 조명했다. “트와일라잇의 벨라는 잘못된 여성 롤모델인가?”(더 위크), “정말 보수적인 ‘브레이킹 던1’(인디와이어)의 섹스와 러브, 그리고 뱀파이어 베이비 : 트와일라잇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글로브 앤드 메일) 등도 같은 맥락에서 작품을 해석했다.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할리우드에서 이 같은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던 이유를 원작소설 작가인 스테파니 메이어의 성향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인 작가는 블로그 등에서 “교리에 철저히 봉사하도록 작품을 썼다”고 자인했다. 또 다른 여성작가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대조한 흥미로운 비평도 있다. “‘트와일라잇’시리즈와 달리 ‘해리포터’는 숙명론과 순혈주의에 반대하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메이어와 달리 롤링은 책 집필 당시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싱글맘이었다. 또한 영국 보수당에 극렬 반대하는 진보적 정치관의 소유자였고, 책으로 번 소득의 상당액을 자신이 지지하는 노동당 및 각종 단체에 기부했다.
그렇다면 ‘진보적 소년 마법사’와 ‘강경 보수 흡혈귀 십대 커플’을 다룬 두 영화는 전 세계 젊은이에게 각각 좌우 이념의 날개 구실을 한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