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김영민 외신대변인을 ‘선택’한 것은 외신과의 소통 경험,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 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5월7일 목요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맥주바 바비런던. 30~50대로 보이는 다양한 외국인 남녀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맥주바로 들어섰다. ‘파이낸셜 타임스’(FT)와 AP, AFP, 로이터, 블룸버그 통신 등 서구 주요 언론사에서 파견된 한국 주재 특파원들이다. 이들은 한 달에 한두 차례 서울시내 호텔 바 등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다진다.
이날은 기획재정부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과 김영민 외신대변인, 임진홍 외신업무팀 서기관 등도 참석했다. 신 차관보 등 한국 관료들은 다른 외신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맥주 값을 치르고 자리에 앉았다. 김 외신대변인이 원어민 수준의 영어로 참석자 소개 등 짧은 스피치를 마치자 첫 만남의 어색함은 이내 사라졌다. 이어 각국 기자들은 신 차관보를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 정부는 한국경제의 회복 시기를 어떻게 예측하고 있나?”
“최근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다자화 공동기금’에서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이 16%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 배경이 뭔가?”
신 차관보도 유창한 영어로 각국 기자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모임 내내 신 차관보와 김 외신대변인은 외신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몇 개월 만에 180도 바뀐 시선
“한국 정부가 위기를 은폐하는 데만 급급하다”(월스트리트저널) “한국경제의 위험도가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동유럽의 헝가리, 폴란드와 비슷한 수준”(이코노미스트) 등 올해 초 해외 언론들은 돌아가면서 한국경제에 몰매를 퍼부었다.
그러나 최근 해외 언론의 보도는 “한국경제가 안정을 보이고 있고 연말쯤 경기가 회복될 것 같다. 다만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등 중립적이거나 다소 호의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보도 자체만 놓고 보면 불과 몇 개월 만에 180도 바뀐 것이다.
기획재정부 주최로 4월27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한국경제 투자설명회’.
재정부가 4월13일 외신대변인을 선임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재정부는 대변인실 산하에 외신업무팀을 두고 있었지만, 외신대변인 구실을 하는 외신업무팀장은 지난해 5월 이래 1년 가까이 공석(空席)이었다.
재정부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를 기점으로 외신들의 ‘한국 때리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강만수 전 장관의 지시로 외신대변인제 부활에 나섰다. 언론·홍보 관련 업무 외에도 국제경제와 금융, 경제정책 등에 대한 소양을 갖춰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 때문인지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했다. ‘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라 급여 수준이 정해지기 때문에 민간만큼 능력에 상응하는 급여 등 처우를 제공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이유였다.
적절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자 정부는 외신대변인 모집 공고를 다시 내면서 직책은 과장급이지만 보수는 ‘전문계약직 가급’으로 계약직 공무원으로선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후 12명의 우수 자원이 몰렸고, 결국 4월13일 김영민(50) 씨가 외신대변인으로 선임됐다.
앞서 5일 어린이날 오전. 김영민 외신대변인은 아침 일찍부터 한국의 한 외신 특파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에 참석한 윤증현 재정부 장관의 인터뷰 기사 중 하나가 문제였다. 윤 장관은 4일(현지시간) 현지에서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한 서구 통신사가 추가경정예산과 관련된 윤 장관의 발언을 당사자의 의중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형태로 보도한 것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한국 정부가 올해 안에 추가로 추경을 꾸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윤 장관은 국회와 국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줄곧 “올해 안에 또 다른 추경은 없다”고 밝혀온 만큼, 김 외신대변인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평소 안면이 있는 해당 통신사 한국 주재 특파원에게 문제점을 설명했고 2시간에 걸쳐 해당 통신사의 미국 본사 데스크, 한국 주재 특파원, 인도네시아에서 윤 장관을 인터뷰한 기자, 김 외신대변인 간에 의견 교환이 이어졌다. 결국 김 외신대변인의 요구가 반영된 기사가 다시 보도됐다. 자존심 강한 서구 통신사가 오보라고 말하기 어려운 기사를 선뜻 고쳐준다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외신대변인은 “내신의 오보는 국내 문제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외신에서 오보가 나면 국가 신용도 하락 등 국가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외신에 한국이 보도되는 빈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그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해 돕기 위해 최선 다할 생각”
외신 보도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에서 정정까지의 과정에서 김 외신대변인의 경험은 큰 힘을 발휘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료한 김 외신대변인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통일부에서 외신대변인 업무를 맡은 경험이 있다. 김 외신대변인은 96년 김영삼 정부 때 박사 과정을 밟던 중 국제관계전문 공무원으로 선발돼 통일부 공보관실에서 외신을 담당했다. 이 기간에 벌어진 북핵 위기,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은 국제사회의 이목을 한국으로 집중시켰다. 이때 외신 기자들을 상대하며 쌓은 경험은 김 외신대변인에게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다.
6년 동안의 공무원 생활 이후 2001년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김 외신대변인은 한국의 한 철강회사 미주 법인장을 맡는 등 민간 영역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는 이 회사와 캐나다 합작법인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김 외신대변인의 업무는 외신에 대한 모니터링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주재 외신 특파원뿐 아니라 한국에 특파원을 두지 않는 각국 언론사 기자들과도 직접 통화를 하며 한국경제를 알리는 전도사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특파원들과의 정기 기자간담회 등 소통과 신뢰의 폭을 넓히는 것도 김 외신대변인의 역할이다.
김 외신대변인에 대한 외신 기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한 외신기자는 “한국 공무원들은 전화 메모를 남겼을 때 ‘콜백(call back)’을 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한국 재정부가 최근 외신대변인을 둔 뒤부터 재정부 관료에 대한 전화 연결 등 취재가 훨씬 편해진 게 사실이고, 외신대변인을 통해 구체적인 배경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외신대변인은 “한국 기자건 외국 기자건 나쁘게 쓰겠다고 마음먹고 기사를 쓰는 기자는 없다”며 “외신 기자들은 한국 기자들보다 한국의 정책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