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b> 경이가 만든 자전거 깃발. 설렘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며, 힘든 일도 기꺼이 하게 하는 힘이다. <br> <b>2</b> 둘째 날 아침 비양도를 뒤로하고 출발을 다짐. 가운데 노란 헬멧을 쓴 아이가 막둥이 경이.
여행 하나만 봐도 그렇다. 어른이 억지로 어딘가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난다. 돌 지난 아기가 엄마 따라 낯선 곳에 오면 처음에는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 있는 만큼, 설레는 만큼 치마를 놓고 조금씩 움직여본다. 아이가 좀더 자라면 집을 떠나고,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 그러니 부모는 자식이 곁에 있을 때는 있는 덕을 보고, 떠나면 떠나는 덕을 보아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 설렘은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우리 작은아들 상상이가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직접적인 계기는 제주도 사는 열두 살 경이의 소망 때문. 경이는 올해 가족끼리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싶어 했다.
이러한 소망이 이 집 가족신문을 통해 알려지고, 이를 본 상상이도 그 설렘에 전염이 됐다. 아내가 경이네로 연락을 하니 흔쾌히 함께해도 좋다고 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상상이가 두 살 어린 마을 동생에게도 이야기하니 함께 가겠다 했고. 이렇게 하다 보니 경이가 꿈꾸던 자전거 일주여행이 눈덩이처럼 덩치가 커져 아이만도 여섯이나 함께했다.
<b>3</b> 꿀맛 같은 간식 시간. <br> <b>4</b> “성산 가는 길인데 지금 우리 위치는?” 머리를 맞대고 지도 속으로 빨려든다. <br> <b>5</b> 자전거로 달리다가 잠시 쉬는 틈에도 바다를 관찰하는 아이.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 <br> <b>6</b> 제주도 해안을 자전거로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나. <br> <b>7</b> 정방폭포에서 땀도 식히고 사진도 찍고.
어른에 견줘 아이는 몸집이 작지만 그 안에 숨 쉬는 설렘은 크다. 이렇게 자전거 여행 이야기가 오고간 때가 지난 4월 중순, 경이가 자기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자.
‘5월1일부터 우린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를 돌려고 한다. 근데… 5월까지 기다리기가 싫다! 아~ 5월까지 기다려야 하다니ㅠ.ㅠ 나는 지금부터 막 떨리고 설레고….’
그러자 그 아래 댓글이 이어진다.
‘경이 언니 : 나도 처음엔 그냥 무덤덤했는데… 경이 막 신나 하고 그러니까 나까지 전염됐어!’
‘경이 엄마 : 경이야, 나는 별로 설레지 않았는데 설레는 네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니 덩달아 설렌다.’
우리 상상이도 경이 못지않았다. 이곳 무주에서 제주도는 먼 거리. 이런 여행을 하자면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가. 아이는 우선 돈부터 확인.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먹고 자는 데 드는 돈을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았다. 경이네서 잡은 예산은 3박4일 여행에 7만5000원. 솔직히 이 돈을 자신이 모은 돈으로 내자니 아이에게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설렘이 더 컸다.
그 다음은 체력 다지기. 상상이는 또래에 비해 몸도 약하고 마음도 여리기에 이번 여행이 자신의 지구력을 실험할 기회로 본다고 했다. 날마다 하루 한 시간 정도 산골 산등성이와 평지를 달리며 체력을 길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준비는 코스. 제주도 일주 코스를 짜는 건 경이네가 했지만 여기서 제주도까지 가는 길도 그리 만만치 않다.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배를 예약하고 수시로 경이네로 연락하면서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출발하던 날은 잠까지 설칠 정도.
먹이고 재워준 여러 어른이 참 고마워!
우리 부부 역시 아이 덕에 설레었다. 어떤 아이들과 어떻게 어울릴까. 이번에 자전거 여행에 참가한 아이들은 나이가 제각각이다. 열두 살부터 몇 개월 차이로 열여섯까지. 서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놀이를 즐길까. 물론 걱정도 없지는 않았다. 몸이 약한 아이가 제대로 일주를 할까.
사실 따지고 보면 걱정과 설렘은 동전의 양면이다. 똑같은 여행이라도 어른이 권했다면 걱정이 많겠지만 아이가 원했으니 걱정보다 설렘이 컸다. 제 힘만큼 하겠지. 뭐, 안 되면 말고. 목숨 걸 거야 있겠나? 아이 스스로 집을 떠나 먼 여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부모 처지에서는 충분히 설레는 일이다.
설렘에는 그 여진도 깊다. 여기 아이 둘은 예정된 날보다 이틀을 먼저 갔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돈 다음에도 경이네서 사흘을 더 머물며 이곳저곳 견학을 했다. 이렇게 설렘의 여진을 실컷 즐기다 돌아왔으니 여행에 대한 수다가 이어질 수밖에. 이틀쯤 지나 일상이 회복되자 아이에게 물어봤다.
“이번 여행에서 배우고 느낀 걸 간단히 정리해본다면?”
“너무 많은데…. 우선 기본 체력이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 끈기도 있어야 하고, 지리도 잘 알아야 할 거 같아요. 경이 아빠가 제주도 토박이에다가 사업을 하셔서 구석구석을 잘 아니까 길을 헤매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여행을 하려면 발이 넓어야겠구나 싶었어요. 하루만 텐트에서 야영하고 이틀은 경이네가 아는 사람들 집에서 잤거든요. 그러면서 귀하고 싱싱한 회도 공짜로 먹어보고. 나중에 돈이 남았다고 3만원씩을 돌려주더라고요. 이거 완전 공짜 여행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아이가 자기 몸과 마음에 맞게 싱그럽게 자라면 덩달아 설렘도 자랄 것이다. 자식 덕에 젊게 산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듯하다. 아이들의 설렘이 활짝 피어나게 기꺼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준 여러 어른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