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브랜드가 언론에 노출된 물리적 시간과 양을 따지면 엄청나다. “신정아가 입었던 브랜드가 뭐냐”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 신정아 씨가 귀국 후 검찰조사 당시 입고 있던 명품 재킷과 청바지는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br>2. 미국 뉴욕 공항에서 찍힌 사진 속 티셔츠와 가방은 강남 일대 명품 멀티숍에서 추가로 물량을 들여왔을 정도로 인기였다.<br>3. 신정아 씨와 변양균 씨의 숙소로 화제가 된 오피스텔과 레지던스 호텔.
이번 신씨 사태와 관련해 대표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신씨가 미국에서와 귀국 직후 들고 있던 B브랜드의 가죽가방이다. B브랜드는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위빙백으로 유명하다. 200만원을 호가하는 신씨의 가방은 지난해 출시돼 현재 몇몇 매장 외에는 구하기조차 어렵다. 한 관계자는 “매장에 찾아오는 고객 대다수가 ‘신정아가 메고 있던 가방’에 대해 말한다”면서 “같은 가방을 보러 왔다가 다른 종류의 가방을 사가는 경우도 많아 회사 쪽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뉴욕 공항에서 입고 있던 피에로가 그려진 M브랜드 티셔츠도 인기다. 젊은 층을 겨냥한 명품 브랜드로 티셔츠 하나가 20만원대에 달하는 M브랜드는 국내에 런칭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입명품 멀티숍 등에서 소량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신씨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나온 이후 문의가 많아져 “강남의 일부 명품 멀티숍과 중고명품 매장에서는 따로 구해 들여온 곳도 많다 ”고 한 백화점 관계자는 말했다.
얼마 전 귀국할 때 입고 있던 의상도 금세 관심을 끌었다. 처음에 신씨의 모습을 ‘운동화와 청바지의 수수한 차림’이라고 묘사했던 언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청바지는 40만원대 B브랜드, 재킷은 200만원대 D브랜드’ 식으로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신씨가 살았던 ㄱ오피스텔이나 신씨를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변양균 실장이 머무르던 S레지던스 호텔 역시 예외는 아니다. S레지던스 호텔 관계자는 “이용객의 70~80%가 외국인이었는데, 최근 들어 부쩍 (내국인들로부터) 많은 문의전화를 받는다”고 전했다.
1996년 린다 김 로비사건 때 그가 낀 선글라스가 크게 유행했다(왼쪽). 신창원 씨의 쫄티셔츠는 짝퉁 브랜드의 유행을 이끌었다.
중앙대 주은우 교수(사회학)는 이에 대해 “가치 판단이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냉소주의가 팽배하고 합의된 지배적 가치가 없는 상황에서 소비를 통해 따라하고 싶은 대상의 이미지가 착하고 이상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해당 브랜드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신정아 사태로 브랜드가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관련 업체들은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함께 언급되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특정 사건사고로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질 수는 있지만, 그것이 판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옷 로비 사건에 관련됐던 L사는 사건 이후 ‘고위층 부인들의 브랜드’라는 인식이 높아져 입점이 힘든 일부 백화점 본점에까지 들어갔고, 린다 김의 선글라스도 베스트 상품이 됐다. 하지만 신창원이 입었던 티셔츠를 만든 M사의 경우 오랫동안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데 고심해야 했다. 신창원 사건이 대중에게 생소했던 명품 M브랜드를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부유층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티셔츠는 물론 양말까지 M브랜드의 ‘짝퉁’만 쏟아져 나왔던 것.
더불어 명품 브랜드의 경우, 고급스러운 제품 이미지가 그 자체로 부각되지 못한 채 오히려 ‘불미스러운 사건’과 함께 각인되는 위험성도 있다. 브랜드 마케팅 전문업체 브랜드 앤 컴퍼니 이상민 대표는 “사건의 종류와 그 사건의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브랜드의 손익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트렌드 시장 소비자는 감성을 소비
“트렌디함을 강조하는 시장에서 소비자는 감성적으로 소비한다. 범죄라 해도 그것이 철저히 개인화된 것이거나 고위층 또는 뛰어난 스타일을 가진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브랜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이나 재해처럼 극심한 혐오와 공포를 주는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처해 있다면 브랜드에 미치는 피해도 크다.”
신씨 사태는 어떨까. 신씨가 잘나가는 큐레이터였다는 점에서 그가 사용한 제품이 명품이라는 인식이 대중에게 심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구입한 일부 제품은 디마케팅(소수의 우수 고객만 남기고 고객 수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마케팅 기법)을 할 정도로 본래부터 ‘아는 사람은 알고, 살 수 있는 사람만 사는’ 브랜드다. 따라서 해당 브랜드들은 광고비 한 푼 들이지 않고 홍보 특수(?)를 누린 점에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애매한’ 처지라며 침묵하고 있다.
“좋든 싫든 관련 브랜드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여선 안 된다. 섣불리 자사 브랜드를 홍보하려고 들 경우, 브랜드에 대한 반감만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의 침묵에 대한 이 대표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