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음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은퇴,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던 그였다. 이런 그를 움직인 것은 정권을 놔야 할지도 모르는 자민당의 위기였다.
9월1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갑작스런 사퇴 표명 이후 나락에 빠진 자민당은 후쿠다 총리가 보여온 ‘안정감’에 기대를 걸었다. 실제로 내각 출범 후인 9월25~26일 각 신문이 실시한 조사에서 후쿠다 내각의 지지율은 53~59%에 이르러 일단은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고 평가된다. 지지 이유는 역시 ‘안정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후쿠다 총리의 등극으로 일본에서는 첫 ‘부자(父子) 총리’가 탄생했다. 선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는 1977년 일본의 군사대국화 포기와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약속한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한 뒤, 78년 중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한 인물.
그러나 후쿠다 총리는 정치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초 동생 이쿠오(征夫)가 가업을 이을 예정이었지만, 건강 문제로 쓰러지면서 장남인 그에게 잔이 돌아왔던 것.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17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한 그는 1976년(40세) 부친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 90년(54세) 2월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뒤 6선을 거듭했다.
2000년 10월 모리 요시로(森喜郞) 정권에서 관방장관으로 입각한 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까지 1289일간 같은 직을 수행하며 뛰어난 조정능력을 보였다.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의 연대를 강화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론이 그의 지론. 대북 관계에서도 압력보다는 대화를 중시하는 만큼 국교 정상화 같은 극적인 관계 변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