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5

..

“파괴형 참여정부는 민주주의 후퇴시킨 실패한 정부”

‘대통령직 위기와…’ 학술대회, 세계는 유목민적 질서로 재편, 대통령 새 리더십은 시대적 요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7-10-04 14: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파괴형 참여정부는 민주주의 후퇴시킨 실패한 정부”

    참여정부 초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9월19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17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는 무려 126명에 이른다. 이중에는 정치인은 물론 대학교수와 목사, 논픽션 작가, 청원경찰, 심지어 무직자도 있다. 아무나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지난 참여정부 4년 동안 대통령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권위주의를 탈피하려고 노력한 면도 있지만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과 정책 실패, 측근 비리 등으로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면서 위신에 상처를 입은 면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측근의 거짓에 속아 실언하기에 이르렀다. 5년 전 국민의 정부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은 물론 학계에서조차 대통령직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일고 있다. 과연 이 시대의 대통령이란 무엇일까. 대통령의 직위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국내 정치학자와 철학자들이 함께 이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섰다. 한국정치사상학회와 철학연구회 소속 교수 20여 명이 9월15일 서울 숭실대에서 공동 학술대회를 연 것. 주제는 ‘대통령직의 위기와 유목(遊牧)적 정치질서’였다.

    이날 교수들의 발표 내용은 사실상 ‘한국의 정치현실 속에서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연구 결과’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정치학적, 철학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정치적 공방과는 근본적으로 격이 다르다.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어떨까. 정치학자와 철학자들 사이에 오고 간 치열한 공방의 현장을 지상 중계한다.



    # 글로벌시대,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파괴형 참여정부는 민주주의 후퇴시킨 실패한 정부”
    이진우 계명대 총장이 먼저 기조발제에 나섰다. 제목은 ‘글로벌주의와 유목민적 리더십’. 이 총장은 “글로벌화는 지지하든 반대하든 우리의 현실이며 시대적 도전”이라고 전제한 뒤 “21세기 정치문화와 지형 변화에 대한 몰인식으로 인해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반문 형식을 빌려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탈(脫)이데올로기 시대에 여전히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같은 냉전적, 대립적 시각으로 현실을 본다면 변화의 현실과 의미가 제대로 파악될 수 있겠는가? 글로벌화는 우리의 현실인데도 여전히 식민주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연 미래의 방향을 올바로 설정할 수 있겠는가? 정당 간 이념적 간격, 그리고 지지층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데도 기존 집단과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편가르기를 일삼는다면 정부 정책에 대한 자발적 참여가 과연 가능하겠는가?”

    이 총장은 변화 원인을 정치문화가 ‘정주민적(定住民的) 질서’에서 ‘유목민적(遊牧民的) 질서’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다는 데서 찾았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정 지역에 정착해 산 ‘정주민 역사’는 6000년에 불과하고, 이제 다시 600만년의 역사를 가진 ‘유목민’으로 인류가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 배경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글로벌화다.

    그렇다면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는 대통령이 가져야 할 자질을 두 가지 면에서 접근했다. 행정을 총괄하는 인물로서 요구되는 자질과 고도의 통치행위에 필요한 자질이다.

    양 교수는 행정을 총괄하는 인물로서의 자질에 대해 “하부 부서의 보고서를 꼼꼼히 읽고 결재하는 식의 행위를 성실한 업무수행으로 믿는다면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간혹 필요한 경우만 하부 부처장의 보고를 받으면서, 질문하고 지침을 주는 일 외에는 일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게으름’이 대통령의 덕성일 수 있다는 것.

    반면 양 교수는 고도의 통치행위 주체로서 대통령이 가져야 할자질이나 덕목에 대해서는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신의 고급 정보를 국가 상황과 관련해 정확히 판단하고 국가 운영의 새로운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능력의 바탕이 되는 역사의식 및 인간과 사회를 보는 기본 소양, 언제나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양 교수는 “현재 상황을 종합해볼 때 한국에서 이처럼 이상적인 인물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면서 대선 출마자들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가 통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나 진정한 자질, 능력은 고사하고 대통령직에 대한 두려움이나 중압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대통령을 하겠다는 욕망을 버리는 게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다행이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이 어떤 우연이나 행운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면 한 가지 충고하고 싶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모든 국가업무를 잘 짜인 관료체제와 사회체제의 자율에 맡기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한 가지 쉬운 일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우두머리의 머리에 따라서는 부지런함이 아니라 게으름이 덕성이다.”

    # Session 1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기조발제가 끝나고 정치학 교수와 철학 교수들 간의 토론에 들어갔다. 정치학 교수가 발표하면 철학 교수가 반론을 제기하고, 철학 교수가 발표하면 정치학 교수가 이를 반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세션마다 교수 세 사람의 발표와 반박이 이어졌다.

    첫째 세션의 주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타개책’. 세 명의 교수 논문 중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철학)의 ‘한국 정치에서의 좌파 민주주의 전망’이라는 논문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진보 성향의 학자가 바라본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였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평가는 냉혹했다.

    이 교수는 “참여정부는 좌파가 아니라 중도우파 정부”라고 규정한 뒤 참여정부를 사실상 실패한 정부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의 발표 내용 중 일부다.

    “참여정부는 출범부터 현재까지 계속해 ‘정권의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버텨온 게 신기할 정도다. 민생경제, 비정규직, 청년실업,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다. 누구는 청계천 복원이라는 전시효과적 업적 하나만으로도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됐는데, 이와 비교할 수도 없는 북핵 문제를 해결한 업적은 별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신자유주의에서 해답을 찾았다. 민주적 개혁의 과제를 안고 탄생한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고, 이를 이어받은 참여정부는 한발 나아가 국민적 저항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켰다는 것.

    이 교수는 “이 때문에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정부로서는 성공했다”며 “그로 인해 비정규직 증가, 사회적 양극화 강화, 민생경제 악화 등 사회적 폐해를 수반했다”고 말했다.

    “결국 참여정부는 지지기반을 상실했고, 본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추진 주체였어야 할 보수세력과 한나라당은 그에 따른 비난에서 자유로웠을 뿐 아니라 참여정부 실정의 반사이익까지 챙기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부연 설명이다.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참여정부의 민주적 개혁실험은 실패했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면서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에 통합신당이 패배할 경우 보수적인 한나라당과 대결해야 할 정치적 역할의 많은 부분이 좌파세력에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김남국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관습적으로 보장하는 권위주의는 해소했다”면서 노 대통령의 역할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김 교수는 노 대통령을 ‘발칸형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발칸반도에서 유래한 발칸은 뭔가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역사적으로 발칸형 대통령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면서 “노 대통령이 비난받아야 할 것은 오히려 더 많은 구태(舊態)를 파괴하지 못한, 역사 속에서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평가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의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얘기다.

    “파괴형 참여정부는 민주주의 후퇴시킨 실패한 정부”

    한국정치사상학회·철학연구회 공동 주최로 9월15일 서울 숭실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가한 교수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 Session 2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

    ‘정치 지도자의 품성론’을 주제로 진행된 둘째 세션에서는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학)의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가 관심을 모았다.

    박 교수는 노 대통령의 정책이나 리더십이 아닌 언행 스타일에 평가의 초점을 맞췄다. 정책이나 리더십의 경우 가치개입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다.

    박 교수는 노 대통령의 언행 스타일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정제되지 않은 ‘막말’을 사용하는 직설화법과 정리되지 않은 구상을 즉흥적으로 발표하는 ‘미숙함’, 그리고 언제든지 투쟁을 꺼리지 않는 ‘복수심’에 불타는 임전태세다.

    박 교수는 이 같은 언행 스타일을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 노 대통령이 ‘막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박 교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나는 그의 고집을 겸손보다는 솔직함이 더 중요하다고 본 의식적 결단의 결과라고 본다. 겸손이라는 덕목은 미묘한 것이어서 자칫 억압적 평등주의와 혼동하면 겸손 자체의 윤리적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사세에 순응하는 처세술만 남게 된다. 노 대통령은 그런 위선에 대한 반감이 강한 만큼 그 반작용으로 위악(僞惡)에 가까운 솔직성이 표출되고 있다고 본다.”

    ‘미숙함’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은 두뇌가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의미로 어느 정도 사유의 개방성과 실험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야운동권 시절 몸에 밴 행태 중에서 대통령에게 적합하지 않은 요소들을 충분히 털어버리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라는 것.

    박 교수는 ‘복수심’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서 지켜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감쌌다. 오히려 보수 언론이 그런 노 대통령을 ‘포퓰리스트 승부사’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왜곡했다는 게 박 교수의 시각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노 대통령의 언행을 이처럼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때로 반체제 선동가 시절의 흔적이 엿보이고, 언론이 아무리 적대적이었다 하더라도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해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한 것은 현실 정치인으로서는 분명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노 대통령의 이런 태도의 원인을 교과서 정치와 선험주의 정치의식에서 찾았다.

    이에 대해 장은주 영산대 교수(철학)는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평가 자체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평가를 할 정도까지 의미가 있느냐”는 것.

    장 교수는 오히려 “정당정치와 정책정치, 이념정치, 합리적 정치 등을 약속하고도 실현하지 못한 노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열린우리당을 깨버린 이른바 ‘386’들의 모리배적 행태에 분노하고, 관습이나 인맥 같은 전통적 요소들에 대한 불철저한 대결에 치를 떤다”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 Session 3 진리의 정치 · 노사모가 참여정부에 끼친 영향

    마지막 세션은 ‘디지털 소비사회와 민주주의 쇠락’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발표자로 나선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진리의 정치와 삶의 정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참여정부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견된 ‘진리의 정치’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윤 교수의 발표 내용 중 일부다.

    “비주류 정치인이던 노무현과 386 정치인들에게 ‘권력장’ 진입이라는 극적 사건은 ‘진리의 정치’의 승리로 각인됐다. 자신들의 권력 장악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라는 역사의 소명으로 이해한 이들 민주화 운동권 출신 인사에게 참여정부 출범은 진리정치 이념의 정당성을 확인해주는 계기였다. 자신들이 진리정치의 화신이라는 자의식 과잉을 빼놓고는 줄기차게 지속된 이들의 독선과 오만함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정적들을 정치적 비진리 자체(수구반동 세력)라고 단죄하는 것은 전략 측면과 함께 이들의 강고한 내적 확신이 반영된 것이다.”

    윤 교수는 이어 “정권 말기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참여정부의 파탄상과 지리멸렬함은 결국 도식적 진리의 정치이념이 얼마나 시대착오적 방식으로 현실정치 세계를 황폐화하는지를 웅변하는 사태”라고 덧붙였다.

    이현아 이화여대 교수(정치학)는 ‘노사모 현상을 통해 본 한국 참여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의 논문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노사모의 활동이 과연 민중의 자발적인 활동이었는가, 아니면 그 역시 대중조작에 의한 활동이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여러 과정을 거쳐 이 교수가 내린 결론은 크게 세 가지다. 노사모처럼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볼 수 있는 현상도 끊임없이 ‘우연’과 ‘동원’에 노출됐다는 점, 정치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합의돼 유포된 지역주의라는 이름의 ‘엘리트주의’에 의해 움직였다는 점, 그리고 반지역주의 담론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 세력 역시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결국 이 교수는 “노사모의 선택은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엘리트주의의 문제를 또 다른 엘리트에 의해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이 바로 노무현 정권의 풍파에 가장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라는 것.

    이에 대해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는 “노사모의 조작된 인식이 노 정권 풍파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지만 핵심은 아니다”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박 교수는 “오히려 핵심 원인은 의사소통적 권력과 작별한 참여정부의 행정권력 강화”라고 지적하고 “권력과 폭력의 경계에서 우왕좌왕하는 동안 참여정부가 정당 없는 정권의 소유자로 전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