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도움으로 시베리아 북한 벌목장에서 탈출, 귀순한 전모(39) 씨는 얼마 전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탈북자 이모(57) 씨에게 사기를 당해 집이 경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전씨는 “인간의 탈을 쓴 쓰레기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어떻게 북에 두고 온 부모와 가족을 데려왔다고 사기를 쳐서 돈을 빼앗을 수 있느냐”며 지금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씨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은 비단 전씨만이 아니다. 나름의 정보력과 검증 능력을 자부하는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은 물론,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까지 이씨에게 꼼짝없이 농락당했다.
이씨는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를 졸업하고, 북한군 평양지구 고사포병사령부 예하 고사포병여단 정치부 소속 상좌(남한의 중령과 대령 사이의 계급)로 제대한 뒤 노동당 작전부 청진연락소 대외사업과장을 지내다 탈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언론, 제보 믿고 보도했다 오보 망신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이씨의 경력뿐 아니라 탈북 사실 자체도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이씨의 탈북 과정에 뭔가 말 못할 속사정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씨와 국정원의 긴밀한 관계는 이씨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마음대로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2001년 12월 아들과 함께 탈북한 이씨가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9월부터다. 당시 모 언론사의 북한 관련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하던 이씨는 같은 탈북자 전씨에게 6000만원을 빌렸다. 이후 3400만원을 더 빌린 그는 전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기발한 사기수법을 동원했다. 전씨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전씨 명의로 이전한 것. 하지만 이씨는 이미 그 집을 담보로 수협에서 1억원을 대출받은 상태였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전씨는 또 한 번 이씨에게 사기를 당했다. 중국을 자주 오가던 이씨가 그해 8월 중국에서 “북한에 있는 부모와 동생 등 가족들을 중국으로 데려왔는데 급히 돈이 필요하다”고 연락해온 것. 전씨는 급한 마음에 급전을 구해 500만원을 이씨에게 송금해줬다가 결국 떼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씨의 이 같은 사기 행각은 2004년부터 최근까지 국정원 고위급 간부와 국내외 언론사를 상대로 한 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씨는 평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책상 위에 올라간 문서를 다음 날 바로 전달받을 정도로, 북한의 깊숙한 내부와 통하는 정보라인을 갖고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다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책임서기(비서실장)인 강상춘 씨가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양형(의형)”이라는 것. 국정원이 이씨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도 이씨의 이 같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사기행각은 점점 대담해져 갔다. 국정원과 언론사가 솔깃할 만한 소재거리를 찾아 돈을 뜯어내기 시작한 것. 한때 이씨의 사기행각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 사람은 북한 핵과학자로 유명한 김광빈 박사. 다음은 이씨가 자주 쓰던 수법 중 하나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김광빈 박사와 북한 군부의 최고위급 장성을 탈북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작업 중이다. 작업은 거의 다 끝났는데 자금이 조금 부족하다. 빌려주면 작업이 끝난 후 정부로부터 거액의 대가를 받아 돌려주겠다.”
이 같은 이씨의 감언이설에 속아 국내 모 일간지 기자 두 명이 각각 1억원과 3000만원씩 모두 1억3000만원을 건넸다가 사기를 당했다. 북한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은 일본 외신기자 중 몇 명도 사기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피해 당사자와 액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흔적은 확인된다. 2004년 6월 일본의 시사주간지 ‘주간현대’는 “북한 핵과학자 김광빈이 중국을 거쳐 제3국으로 망명했다”는 기사를 실었지만 허위로 밝혀졌다.
더욱 황당한 사건은 국내 북한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 고위간부가 이씨에게 속아 1억5000만원을 뜯긴 일. 해당 간부는 국정원의 대(對)북한 정보활동을 위해 편성된 예산에서 지급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씨에게 경비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측은 이에 대해 “이씨와 관련된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확인해줄 수 없다”며 일절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씨는 이후에도 국정원과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을 지속적으로 유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냈다. 하나같이 확인되기만 하면 남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길 만한 내용들이었다. 가령 이런 내용이다.
“국내 한 정부기관 최고책임자가 85년 김일성에게 충성하겠다는 내용의 충성 맹세문에 사인한 문건과 북한 노동당 깃발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사진을 확인했다.”
“북한 노동당 핵심인물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고정간첩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관리하고 있는 간첩명단까지 확인했다.”
이씨는 이런 내용을 언급하면서 항상 자금이 부족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씨는 2004년 11월 사기를 당한 전씨와 국내 일간지 기자 두 명의 고소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지만 사기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음해 8월15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자마자 언론사 기자들에게 또다시 정보 제공을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이씨가 국내외 언론사에 들고 다닌 문건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지시’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 등 두 건(사진 참조). 이 가운데 B5 용지 3장 분량의 조선노동당 비서국 지시 문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철이 결정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기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씨는 문건의 신뢰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찢어져 있는 문건을 스카치테이프로 교묘히 붙여서 갖고 다녔다.
이씨는 ‘주간동아’ 기자에게도 이 문건을 제시하면서 “현재 중국 옌지(延吉)에 북한 핵 연구원 한 명과 사단장급 군 간부 한 명을 보호 중인데 자금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며 돈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간동아’는 이씨의 의도 자체가 불순할 뿐 아니라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결국 이 문건은 2006년 2월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현대’에 게재됐고, 같은 해 3월 국내 월간지 ‘월간조선’에 실렸다. ‘월간조선’은 ‘주간현대’의 보도내용을 인용해 전문을 보도하면서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의 분석까지 덧붙였다.
“탈북자 한국행 주선” 사기 단골메뉴
이씨의 행방을 쫓고 있는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씨는 최근까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전씨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들으니 이씨가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에게 남한으로 데려가주겠다며 사기를 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도 이씨를 묶겠다(잡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잡히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씨의 입장이 궁금했지만 연락이 불가능했다. 그의 휴대전화는 착신금지된 상태. 이씨는 사기혐의로 구속됐을 당시 재판부에 이렇게 호소한 바 있다. “좋은 일 좀 한다는 것이 이렇게 됐습니다. 잘못한 일은 처벌받겠습니다. 다만 최대한 약하게 해주면 빨리 나가서 계획한 일도 하고, 돈도 갚겠습니다.”
하지만 이씨는 석방된 이후 빌린 돈을 한 푼도 갚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피해를 봤다는 사람만 늘고 있다. 棟탈북자 이씨가 본지 기자에게 돈을 요구하며 보여줬던 출처불명의 문건과 국가정보원 본부 앞의 원훈석.김정일과 김정철에 대한 기사를 실은 일본 ‘주간현대’ 인터넷판.
이씨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은 비단 전씨만이 아니다. 나름의 정보력과 검증 능력을 자부하는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은 물론,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까지 이씨에게 꼼짝없이 농락당했다.
이씨는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를 졸업하고, 북한군 평양지구 고사포병사령부 예하 고사포병여단 정치부 소속 상좌(남한의 중령과 대령 사이의 계급)로 제대한 뒤 노동당 작전부 청진연락소 대외사업과장을 지내다 탈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언론, 제보 믿고 보도했다 오보 망신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이씨의 경력뿐 아니라 탈북 사실 자체도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이씨의 탈북 과정에 뭔가 말 못할 속사정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씨와 국정원의 긴밀한 관계는 이씨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마음대로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2001년 12월 아들과 함께 탈북한 이씨가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9월부터다. 당시 모 언론사의 북한 관련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하던 이씨는 같은 탈북자 전씨에게 6000만원을 빌렸다. 이후 3400만원을 더 빌린 그는 전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기발한 사기수법을 동원했다. 전씨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전씨 명의로 이전한 것. 하지만 이씨는 이미 그 집을 담보로 수협에서 1억원을 대출받은 상태였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전씨는 또 한 번 이씨에게 사기를 당했다. 중국을 자주 오가던 이씨가 그해 8월 중국에서 “북한에 있는 부모와 동생 등 가족들을 중국으로 데려왔는데 급히 돈이 필요하다”고 연락해온 것. 전씨는 급한 마음에 급전을 구해 500만원을 이씨에게 송금해줬다가 결국 떼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씨의 이 같은 사기 행각은 2004년부터 최근까지 국정원 고위급 간부와 국내외 언론사를 상대로 한 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씨는 평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책상 위에 올라간 문서를 다음 날 바로 전달받을 정도로, 북한의 깊숙한 내부와 통하는 정보라인을 갖고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다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책임서기(비서실장)인 강상춘 씨가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양형(의형)”이라는 것. 국정원이 이씨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도 이씨의 이 같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사기행각은 점점 대담해져 갔다. 국정원과 언론사가 솔깃할 만한 소재거리를 찾아 돈을 뜯어내기 시작한 것. 한때 이씨의 사기행각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 사람은 북한 핵과학자로 유명한 김광빈 박사. 다음은 이씨가 자주 쓰던 수법 중 하나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김광빈 박사와 북한 군부의 최고위급 장성을 탈북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작업 중이다. 작업은 거의 다 끝났는데 자금이 조금 부족하다. 빌려주면 작업이 끝난 후 정부로부터 거액의 대가를 받아 돌려주겠다.”
이 같은 이씨의 감언이설에 속아 국내 모 일간지 기자 두 명이 각각 1억원과 3000만원씩 모두 1억3000만원을 건넸다가 사기를 당했다. 북한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은 일본 외신기자 중 몇 명도 사기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피해 당사자와 액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흔적은 확인된다. 2004년 6월 일본의 시사주간지 ‘주간현대’는 “북한 핵과학자 김광빈이 중국을 거쳐 제3국으로 망명했다”는 기사를 실었지만 허위로 밝혀졌다.
더욱 황당한 사건은 국내 북한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 고위간부가 이씨에게 속아 1억5000만원을 뜯긴 일. 해당 간부는 국정원의 대(對)북한 정보활동을 위해 편성된 예산에서 지급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씨에게 경비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측은 이에 대해 “이씨와 관련된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확인해줄 수 없다”며 일절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씨는 이후에도 국정원과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을 지속적으로 유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냈다. 하나같이 확인되기만 하면 남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길 만한 내용들이었다. 가령 이런 내용이다.
“국내 한 정부기관 최고책임자가 85년 김일성에게 충성하겠다는 내용의 충성 맹세문에 사인한 문건과 북한 노동당 깃발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사진을 확인했다.”
“북한 노동당 핵심인물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고정간첩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관리하고 있는 간첩명단까지 확인했다.”
이씨는 이런 내용을 언급하면서 항상 자금이 부족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씨는 2004년 11월 사기를 당한 전씨와 국내 일간지 기자 두 명의 고소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지만 사기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음해 8월15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자마자 언론사 기자들에게 또다시 정보 제공을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이씨가 국내외 언론사에 들고 다닌 문건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지시’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 등 두 건(사진 참조). 이 가운데 B5 용지 3장 분량의 조선노동당 비서국 지시 문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철이 결정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기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씨는 문건의 신뢰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찢어져 있는 문건을 스카치테이프로 교묘히 붙여서 갖고 다녔다.
이씨는 ‘주간동아’ 기자에게도 이 문건을 제시하면서 “현재 중국 옌지(延吉)에 북한 핵 연구원 한 명과 사단장급 군 간부 한 명을 보호 중인데 자금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며 돈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간동아’는 이씨의 의도 자체가 불순할 뿐 아니라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결국 이 문건은 2006년 2월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현대’에 게재됐고, 같은 해 3월 국내 월간지 ‘월간조선’에 실렸다. ‘월간조선’은 ‘주간현대’의 보도내용을 인용해 전문을 보도하면서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의 분석까지 덧붙였다.
“탈북자 한국행 주선” 사기 단골메뉴
이씨의 행방을 쫓고 있는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씨는 최근까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전씨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들으니 이씨가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에게 남한으로 데려가주겠다며 사기를 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도 이씨를 묶겠다(잡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잡히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씨의 입장이 궁금했지만 연락이 불가능했다. 그의 휴대전화는 착신금지된 상태. 이씨는 사기혐의로 구속됐을 당시 재판부에 이렇게 호소한 바 있다. “좋은 일 좀 한다는 것이 이렇게 됐습니다. 잘못한 일은 처벌받겠습니다. 다만 최대한 약하게 해주면 빨리 나가서 계획한 일도 하고, 돈도 갚겠습니다.”
하지만 이씨는 석방된 이후 빌린 돈을 한 푼도 갚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피해를 봤다는 사람만 늘고 있다. 棟탈북자 이씨가 본지 기자에게 돈을 요구하며 보여줬던 출처불명의 문건과 국가정보원 본부 앞의 원훈석.김정일과 김정철에 대한 기사를 실은 일본 ‘주간현대’ 인터넷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