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가운데 이어령의 ‘디지로그’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후기정보화사회에 관한 책이라 흥미롭다. 저자는 문학평론가로 출발해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등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건 그의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각종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얼리어댑터라는 점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태블릿 판에 아노토펜으로 메모를 하고, 책을 읽다가 메모할 부분이 생기면 스캔을 받아 저장한다. 이어령은 한국사회를 두고 농경사회, 산업사회 그리고 정보화사회를 한 몸에 지닌 압축파일이라고 하지만, 저자 자신이야말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디지로그’는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통해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를 밝히고 이를 후기정보화사회와 연결시키는 독특한 사고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후기정보화사회의 본질과 방향성이 명확하게 실체를 드러낸다.
이어령이 문화적으로 후기정보화사회를 진단했다면, 다니엘 핑크의 ‘새로운 미래가 온다’는 비즈니스적으로 후기정보화사회를 살피고 있다. 이어령이 후기정보화사회를 디지로그라고 명명했다면, 다니엘 핑크는 하이컨셉트, 하이터치 사회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다니엘 핑크는 (피터 드러커가 지식근로자라고 이름 붙인) 변호사, 의사, 공인회계사 같은 이들은 이제 소멸하고 창작 및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우뇌형 인간이 뜨는 사회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책은 미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변화의 증후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데서 설득력을 얻는다. 1970년대 다니엘 핑크의 부모는 그에게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고 싶으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훌륭한 전문인이 되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니엘 핑크는 20세기 후반 반복적 대량 산업 업무가 모두 해외로 아웃소싱 됐듯이 지식근로자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고 말한다. 이어령에 따르면 한국인은 가장 디지로그적인 민족이지만, 아직도 지식노동자가 되기를 권하는 한국인들이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