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0살의 제시카는 넉 달 전 겪었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이트클럽에서 낯모르는 남성에게서 샴페인 한 잔을 얻어 마신 뒤 집단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영국 중부의 버밍엄시에서 비서로 근무하던 제시카는 당시 런던 중심가 소호지역의 나이트클럽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낯선 남성이 다가와 자꾸 치근거렸다. 이때 ‘백마 탄 기사’처럼 나타난 제이슨이란 멋진 남성이 치근대던 남자를 쫓아냈다. 그리고 술을 사겠다고 해 샴페인 한 잔을 받아 마셨는데….
반 잔 정도 마시자 제시카는 정신이 멍해졌다. 이어 무대로 나가 춤을 추다 쓰러졌고 그 이후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호텔로 끌려가 몇 명의 남성한테서 성폭행을 당한 것만은 기억한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제시카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직까지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투여
최근 런던에서는 제시카의 경우처럼 약물을 탄 술을 마시고 성폭행당하는 여성이 늘고 있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일간지 ‘가디언’과 민영방송 ‘채널4’는 최근 나이트클럽이나 선술집(퍼브)에 드나드는 16개 도시 75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4분의 1의 여성이 ‘약물 탄 술을 마신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술집에서 만난 초면의 남성에게서 술을 얻어 마셨는데,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같은 약물이 술에 이미 섞여 있었다는 것.
물론 술을 얻어 마신 여성 모두가 성폭행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와 함께 간 여성들은 친구의 부축을 받아 무사히 귀가했다. 그러나 혼자 갔거나, 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 경우 약물 탄 술을 마신 여성은 범죄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곤 했다.
가디언과 채널4는 또 전국 38개 성폭력상담소, 52개 경찰서, 산부인과 등을 방문해 피해 여성의 실태를 심층 조사했다. 이러한 포괄적인 조사가 그동안 영국에서 이뤄진 적이 없었기에 이 보고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사 결과 이런 식으로 성폭행당하는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웨일스의 중심도시 카디프로 나타났다. 취재팀이 이곳에 있는 한 진료소를 방문한 결과, 2003년에 이 진료소를 찾은 피해 여성의 수가 2002년과 비교해 2배 정도 늘었다는 것. 영국 중서부에 있는 유명한 해변 휴양지 블랙풀이 두 번째로 위험한 도시로 조사됐다. 블랙풀은 1년에 6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이런 통계를 토대로 취재팀은 일주일에 약 30명의 여성이 약물 탄 술을 마신 뒤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은 피해자의 대부분이 25살 이하의 여성이란 점이다. 약물을 탄 술을 마신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여성 가운데 80%가 이 연령층에 해당됐다.
1999년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래햄 라스키와 사이먼 라스키란 형제가 18년간 20명이 넘는 여성을 약물 탄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이들이 18년이란 긴 시간 동안 범죄를 저질러오면서도 체포되지 않고 버젓하게 생활했다는 점이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같은 해 체포된 상습범 티모시 헤이는 여성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뒤 복수심에 불탄 그는 나이트클럽이나 바를 전전하며 젊은 여성을 표적 삼아 수차례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24건의 약물 탄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한 범죄자를 연구한 법의학 전문의 앤 데이비스 박사는 “절반 정도가 상습범이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피해 여성들이 동일 인물을 지목하지 않는 한 범인 검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경찰 대책마저 미비한 형편이다. 지난 5년간 약물 탄 술을 마시게 한 뒤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범죄자는 겨우 15명에 지나지 않는다.
제시카 사건은 경찰 대책의 미비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제시카는 이 일로 큰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모르다가 겨우 용기 내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리고 간호사의 설득을 받아들여 성폭행 증거를 채취했다. 이어 마음을 다잡고 경찰서에 가 진술했지만, 경찰의 답변은 너무도 무성의했다.
경찰과 내무부 뒤늦게 법석
첫째, 증거를 경찰서 혹은 경찰이 인정한 기관에서 채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둘째, 용의자의 정확한 인상 착의나 신상을 모르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운 점이 많다. 그것도 경찰에 신고한 뒤 석 달 만에 날아온 답변이었다.
영국 경찰은 아직도 이러한 유형의 범죄에 대한 통계도 내지 않고 있다. 피해 여성이 곧바로 경찰서를 찾았을 경우에도 피해 여성한테서 증거를 채취할 도구를 갖춘 경찰서는 절반 정도에 그친다.
또 하나의 문제는 피해 여성이 약물 복용 상태에서 깨어나려면 보통 12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점. 이때가 되면 약물이 여성의 몸에 남아 있지 않아 증거 채취가 어렵다. 범인들이 이러한 점을 노린 지능범일 가능성이 높다.
제시카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녀를 성폭행한 제이슨이라는 남자가 이튿날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와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는 점이다. 제시카는 이런 제이슨의 행동으로 보아 그가 상습범임이 틀림없다고 했다.
카디프시 왕립병원의 산부인과 재닌 로데릭 박사는 “피해 여성 상당수가 경찰서에 가지 않는다. 대개 성병이나 임신을 우려해 산부인과를 찾는다”며 “지난해 이곳에서 진단받은 피해 여성이 2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취재팀은 경찰의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포괄적이고 상세한 이번 통계를 제시하고 대책을 문의했으나 경찰의 답변은 신통치 않았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피해 여성이나 범인이 모두 과음했을 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며 “언론에서 조사한 것처럼 이런 범죄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언론 보도 이후 경찰은 자체적으로 이 범죄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또 내무부도 부랴부랴 피해 여성이 경찰서를 찾으면 곧바로 증거를 채취할 수 있도록 관련 장비를 전국 경찰에 배포하기로 했다. 또 각 술집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수상한 짓을 하는 남자를 식별하는 법에 관한 문서를 배포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범죄 수법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가끔 유사한 범죄가 발생한다. 나이트클럽이나 선술집에서 낯선 사람이 전하는 공짜 술은 절대 사절이다. 오, 노!
영국 중부의 버밍엄시에서 비서로 근무하던 제시카는 당시 런던 중심가 소호지역의 나이트클럽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낯선 남성이 다가와 자꾸 치근거렸다. 이때 ‘백마 탄 기사’처럼 나타난 제이슨이란 멋진 남성이 치근대던 남자를 쫓아냈다. 그리고 술을 사겠다고 해 샴페인 한 잔을 받아 마셨는데….
반 잔 정도 마시자 제시카는 정신이 멍해졌다. 이어 무대로 나가 춤을 추다 쓰러졌고 그 이후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호텔로 끌려가 몇 명의 남성한테서 성폭행을 당한 것만은 기억한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제시카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직까지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투여
최근 런던에서는 제시카의 경우처럼 약물을 탄 술을 마시고 성폭행당하는 여성이 늘고 있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일간지 ‘가디언’과 민영방송 ‘채널4’는 최근 나이트클럽이나 선술집(퍼브)에 드나드는 16개 도시 75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4분의 1의 여성이 ‘약물 탄 술을 마신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술집에서 만난 초면의 남성에게서 술을 얻어 마셨는데,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같은 약물이 술에 이미 섞여 있었다는 것.
물론 술을 얻어 마신 여성 모두가 성폭행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와 함께 간 여성들은 친구의 부축을 받아 무사히 귀가했다. 그러나 혼자 갔거나, 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 경우 약물 탄 술을 마신 여성은 범죄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곤 했다.
가디언과 채널4는 또 전국 38개 성폭력상담소, 52개 경찰서, 산부인과 등을 방문해 피해 여성의 실태를 심층 조사했다. 이러한 포괄적인 조사가 그동안 영국에서 이뤄진 적이 없었기에 이 보고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사 결과 이런 식으로 성폭행당하는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웨일스의 중심도시 카디프로 나타났다. 취재팀이 이곳에 있는 한 진료소를 방문한 결과, 2003년에 이 진료소를 찾은 피해 여성의 수가 2002년과 비교해 2배 정도 늘었다는 것. 영국 중서부에 있는 유명한 해변 휴양지 블랙풀이 두 번째로 위험한 도시로 조사됐다. 블랙풀은 1년에 6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이런 통계를 토대로 취재팀은 일주일에 약 30명의 여성이 약물 탄 술을 마신 뒤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은 피해자의 대부분이 25살 이하의 여성이란 점이다. 약물을 탄 술을 마신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여성 가운데 80%가 이 연령층에 해당됐다.
1999년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래햄 라스키와 사이먼 라스키란 형제가 18년간 20명이 넘는 여성을 약물 탄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이들이 18년이란 긴 시간 동안 범죄를 저질러오면서도 체포되지 않고 버젓하게 생활했다는 점이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같은 해 체포된 상습범 티모시 헤이는 여성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뒤 복수심에 불탄 그는 나이트클럽이나 바를 전전하며 젊은 여성을 표적 삼아 수차례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24건의 약물 탄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한 범죄자를 연구한 법의학 전문의 앤 데이비스 박사는 “절반 정도가 상습범이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피해 여성들이 동일 인물을 지목하지 않는 한 범인 검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경찰 대책마저 미비한 형편이다. 지난 5년간 약물 탄 술을 마시게 한 뒤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범죄자는 겨우 15명에 지나지 않는다.
제시카 사건은 경찰 대책의 미비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제시카는 이 일로 큰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모르다가 겨우 용기 내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리고 간호사의 설득을 받아들여 성폭행 증거를 채취했다. 이어 마음을 다잡고 경찰서에 가 진술했지만, 경찰의 답변은 너무도 무성의했다.
경찰과 내무부 뒤늦게 법석
첫째, 증거를 경찰서 혹은 경찰이 인정한 기관에서 채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둘째, 용의자의 정확한 인상 착의나 신상을 모르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운 점이 많다. 그것도 경찰에 신고한 뒤 석 달 만에 날아온 답변이었다.
영국 경찰은 아직도 이러한 유형의 범죄에 대한 통계도 내지 않고 있다. 피해 여성이 곧바로 경찰서를 찾았을 경우에도 피해 여성한테서 증거를 채취할 도구를 갖춘 경찰서는 절반 정도에 그친다.
또 하나의 문제는 피해 여성이 약물 복용 상태에서 깨어나려면 보통 12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점. 이때가 되면 약물이 여성의 몸에 남아 있지 않아 증거 채취가 어렵다. 범인들이 이러한 점을 노린 지능범일 가능성이 높다.
제시카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녀를 성폭행한 제이슨이라는 남자가 이튿날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와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는 점이다. 제시카는 이런 제이슨의 행동으로 보아 그가 상습범임이 틀림없다고 했다.
카디프시 왕립병원의 산부인과 재닌 로데릭 박사는 “피해 여성 상당수가 경찰서에 가지 않는다. 대개 성병이나 임신을 우려해 산부인과를 찾는다”며 “지난해 이곳에서 진단받은 피해 여성이 2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취재팀은 경찰의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포괄적이고 상세한 이번 통계를 제시하고 대책을 문의했으나 경찰의 답변은 신통치 않았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피해 여성이나 범인이 모두 과음했을 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며 “언론에서 조사한 것처럼 이런 범죄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언론 보도 이후 경찰은 자체적으로 이 범죄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또 내무부도 부랴부랴 피해 여성이 경찰서를 찾으면 곧바로 증거를 채취할 수 있도록 관련 장비를 전국 경찰에 배포하기로 했다. 또 각 술집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수상한 짓을 하는 남자를 식별하는 법에 관한 문서를 배포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범죄 수법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가끔 유사한 범죄가 발생한다. 나이트클럽이나 선술집에서 낯선 사람이 전하는 공짜 술은 절대 사절이다. 오,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