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와 최고의 만남.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과 조장희 박사가 결합해 설립된 가천의과대학교(이하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첨단 의과학의 결정체인 퓨전영상시스템으로 노벨상을 꿈꾸는 두 주인공을 만났다.
조장희 박사가 누구인가. 한국인 가운데 노벨상(생리·의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세계 최고의 뇌 영상 전문가가 아닌가. 조박사가 연구하는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 기술과 MRI(자기공명영상장치) 기술을 결합한 3차원 퓨전영상시스템이 상용화된다면 그야말로 부와 명예는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는 지난 42년간 해외생활을 하며 한국 국적을 유지한 남다른 ‘애국심’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그런 과학자의 그릇을 알아보고, 한국에 정착하게 한 이번 ‘거사’의 주인공은 가천길재단의 이길여 회장(사진)이다.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의료인으로 꼽히는 이회장은 가천 길병원 산하 4개 자병원과 학교법인 가천학원과 경원학원을 운영하는 의료사업가이자 교육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천의대는 조박사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뇌연구소인 가천 뇌과학연구소를 설립해 치매나 중풍, 파킨슨병 등의 조기 진단은 물론 신약 개발과 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해간다는 방침이다.
“뇌과학 아직도 미지의 세계 … 투자 가치 충분”
10월6일 가천 길병원에서 만난 이회장은 가천길병원의 원훈 격인 ‘박애 봉사 애국’에 관한 얘기부터 꺼내며 “조박사 스카우트와 뇌과학연구소 설립은 의료인이자 교육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자라나는 우리 학생들을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세계 최고를 추구하는 용기와 사명감을 가진 과학자로 키워내고 싶다”며 “조박사가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게 돕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국으로, 그는 황우석 박사보다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문을 열었다.
-가장 성공한 의료사업가로서 뇌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58년 인천에서 처음 병원을 열었을 때부터 갖가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접해왔다. 특히 뇌를 다친 사람은 회복이 어려워 의사로서 좌절감도 많이 느꼈다. 사실 치매·중풍 등 각종 노인성 질환을 비롯해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인체에서 생기는 질병 가운데 40%는 뇌가 근원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 치매 치료와 그에 따른 의·과학 장비 연구로 2002년 한 해에만 무려 2000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해마다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다. 현재 뇌과학 분야가 아직도 미지의 세계 속에 있어 가시적 성과가 없지만,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게 됐다.”
- 가천의과대학교 뇌과학연구소의 목표는 무엇인가.
“98년 가천의대를 설립한 뒤 대학 특성화 방안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러다 2년 전 뇌 영상과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조박사를 만나게 돼 여기에 이르렀다. 뇌과학연구소의 설립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조박사의 뇌 영상기술이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에 연구 환경만 충분히 갖추어주면 한국에 또 하나의 노벨상을 안겨주리라는 믿음이며, 다른 하나는 가장 훌륭한 메디컬리서치센터를 설립해 특히 노인들을 신경질환에서 해방시키고 싶은 개인적 욕망이다.”
전폭적 지원 약속으로 조장희 박사 영입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한 가천의과대학교. 1998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해냈다.
“아직 생소한 분야라 그렇지, 따지고 보면 가천의대 같은 소규모 대학이 연구에 제격이다. 뇌과학 분야가 나노공학이나 생명공학 못지않게 미래가 확실한, 떠오르는 분야라는 사실도 우리의 전망을 밝게 한다. 의과학적으로도 전도 유망한 학문이기 때문에 앞으로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들 것으로 본다. 뇌과학 연구에 미국을 중심으로 연구 과학도가 해마다 20%씩 늘어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지난 한 해 동안 약 5만명이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생명공학 분야를 능가하는 수치로, 우리나라의 젊은 인재들 역시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 확신한다.”
-과연 투자비를 뽑을 수 있겠는가. 대단한 모험인데, 이 같은 자신감의 배경이 궁금하다.
“사실 이 같은 첨단과학 연구는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할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일개 대학이나 재단이 손대기에는 버겁기 그지없다. 일본 과학계가 뇌 영상기술 분야에서 조장희 교수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 벨연구소의 세이지 오가와 박사를 2년 전 일본으로 초청하여 국립 ‘오가와연구소’를 설립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국가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을 민간이 시도할 경우 차후에 국책사업 차원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PET와 MRI를 결합한 ‘퓨전영상시스템’의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사실 퓨전영상시스템 개발은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다. PET는 뇌 세포 유전자의 움직임을 촬영해 읽어내는 기술이고, MRI는 뇌 구조의 다면만을 영상화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성격이 달라 이를 동시에 습득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조박사는 두 기술을 섭렵한 세계 유일의 학자인 셈이다. 이미 조박사의 머릿속에는 상당한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모셔온 것이고, 세계적인 기업 지멘스까지 우리를 따라왔다. 일단 2년 안에 이론적 기틀을 완성할 예정에 있다.”
가천의과대학교 뇌과학 연구소 (조감도)는 2005년 완공될 예정이다.
“굉장히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정성을 한곳에 쏟으면 불가능한 일도 없다고 본다. 나는 목표를 세우면 그것을 위해 모든 혼과 열정을 다 바쳐왔다. 내가 노벨상을 목표로 삼았으니 분명히 탈 것이고, 꼭 타게 만들겠다. 내 능력이 되는 한 물심양면으로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다.”
-조박사를 스카우트할 수 있었던 비결과 비화가 궁금하다.
“조박사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로부터 공동연구를 제의받았던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스카우트하기로 결심하고 조박사를 만났을 때, 과학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자존심이 아주 세 보였다. 그가 아직도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과학 현실을 설명하면서 여생을 한국의 과학을 위해 봉사해줄 것을 호소한 셈이다. 요구 조건을 물었더니 뇌과학 전문연구소 설립과 15년간 연 30만 달러씩 지원비 장기계약을 제의하기에 선뜻 응했던 것이 비결인 셈이다.”
지난 9월6일 열린 가천의과대학교와 독일 지멘스 간의 협력 조인식 장면
지멘스와 가천의대 간의 산학기술협력 조인서에는 여러 조건이 들어 있다. 퓨전영상시스템 개발에 성공했을 경우 모든 영상기술을 공유하고, 영상기 제작에 따른 특허권을 5대 5로 하며, 기계 제작은 한국에서 한다 등이다. 지멘스 측은 퓨전영상시스템 대당 가격을 2500만 달러(약 290억원)로 보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적어도 200대 정도는 판매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연 1조 달러의 뇌질환 치료 및 장비 판매 시장으로, 만약 성공을 거둘 경우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