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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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자체도 화제, 삼성미술관 ‘리움’

10월13일 개관 한남동 시대 개막 … 국내 최고 수준 소장품 손쉬운 만남 기대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10-14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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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자체도 화제, 삼성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이 중앙일보 사옥 지하 갤러리에서 서울 한남동 새 미술관 ‘리움’으로 이사했다. ‘리움’은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관장이 한국 미술계의 중심에서 세계 미술계의 권력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입구 모습.

    얼마 전까지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것은 삼성’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젠 틀린 말이 될 것 같다. 삼성은 이제 세계 미술계를 움직일 것이다.

    중앙일보사 사옥 지하에 위치한 ‘호암갤러리’ 대신 서울 한남동에 새로 문을 연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은 이런 의지의 표현이다. “‘리움’이란 이(Lee)씨 가에서 책임지고 영원히 잘 운영할 미술관(museum)이라는 뜻”이라는 삼성재단 임원의 설명이 귀에 거슬리긴 해도 새 미술관을 보면 세계 미술계에서 삼성 혹은 이씨 가가 가진 파워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 미술계의 대(大)컬렉터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관장은 ‘리움’을 통해 문화 후원자라는 대중적 명성도 누릴 것으로 보인다.

    10월13일 공식 개관하는 삼성미술관 ‘리움’은 무려 8년에 걸쳐 1300억원+α를 쏟아부은 대형 프로젝트였지만, 내용과 진행 과정은 거의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1995년 삼성이 이건희 회장 사저를 중심으로 한 한남동을 ‘삼성 공익 문화타운’으로 만들고, 그 안에 미술관이 포함된다는 것 정도가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었을 뿐이다.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남산과 한강으로 이뤄진 이 지역의 풍수 덕이라는 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삼성이 한남동에 유달리 애착을 보여왔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중간에 외환위기로 공사가 중단됐다는 소식과 미술관이 한남동 아닌 서울 종로구 운니동 삼성 땅으로 옮겨간다는 계획 등이 전해졌지만, 결국 2001년 한남동 공사가 재개되었고 예정보다 1년 앞당겨 삼성미술관은 개관하게 됐다.

    서울 지하철 6호선을 타고 한강진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삼성문화재단의 새 사옥이 보이고, 그 골목으로 올라가면 삼성생명병원을 지나 보이는 독특한 건축물이 바로 삼성미술관 ‘리움’이다.



    건물 자체도 화제, 삼성미술관 ‘리움’

    ‘리움’전경. ‘리움’의 소장품들은 특히 도자기와 세계적인 미니멀리즘 대가들의 작품에서 빛을 낸다.

    현대 건축 거장 3명 함께 참여

    ‘리움’은 건물 자체로도 세계 건축계에서 오랫동안 연구와 화제가 될 만하다. 또 미국 구겐하임 빌바오미술관처럼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이 한번쯤 방문하고 싶은 공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리움’은 세계 건축계를 대표하는 현대 건축의 거장 3명이 함께 참여한 프로젝트란 점에서도 세계 최초다. 스위스 출신으로 고전적 건축 문법을 표현한다는 마리오 보타(서울 강남 교보사옥,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와 도시적이고 세련된 예술로서의 건축물을 만드는 프랑스의 장 누벨(아랍문화원 등),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건물을 통해 대안적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인천국제공항 내부, L.A.박물관) 3인이 ‘리움’을 위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현대 미술관들의 기를 꺾어놓기에 충분하다.

    건물 자체도 화제, 삼성미술관 ‘리움’

    ‘아동교육문화센터’안의 검은 콘크리트 방.

    전체 미술관 컨셉트를 만든 이는 렘 쿨하스로 ‘공공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실현하기 위해 관객을 길에서 미술관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면서 외부의 아동교육문화센터(‘뮤지엄3’)와 데크를 형성했으며, 마리오 보타는 고미술 전시관이 될 ‘뮤지엄1’, 장 누벨은 현대미술을 전시할 ‘뮤지엄2’를 설계했다.

    뿐만 아니라 건축평론가 전진삼씨가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구현하기 위한 건축주의 맹목적이라고 할 만한 성실한 배려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할 만큼 ‘리움’은 세계 건축계가 주목할 만한 새로운 시도들-이는 돈과 시간, 인내를 의미한다-로 가득하다.

    한국 도자기를 상징하기 위해 고미술관(‘뮤지엄1’)의 벽돌을 만드는 데 테라코타를 구워 사용했고, 마리오 보타가 고미술품을 마치 보석처럼 볼 수 있게 한 첨단 쇼케이스를 직접 설계했다든가,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따뜻하고 검은 ‘녹슨’ 스테인리스 스틸-‘녹슨’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니, ‘미션 임파서블’이 아닌가-을 현대미술관(‘뮤지엄2’)에 썼다든가, 아동교육문화센터(‘뮤지엄3’) 내부에 검은 콘크리트 방을 띄워놓았다든가 하는 것은 놀라울 뿐이다.

    여기에 모든 관람객들은 세계 최초로 미술관에 응용했다는 PDA를 들고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리움’을 위해 새로 개발했다. 이쯤 되면 “독자적 미술관을 갖고 싶어 한이 맺혔다”는 삼성문화재단 한용외 사장(전 삼성전자 사장)의 말이 실감난다. ‘리움’의 가치는 소장품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50년대부터, 이건희 회장이 70년대부터 수집해온 삼성의 고미술품 컬렉션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경기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에 소장돼 있어 감상이 쉽지 않았는데 새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리움’ 개관전에 공개된 국보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나 ‘청자도형연적’ 같은 소장품은 감상자를 흥분시킬 만큼 화려하고 아름답다. ‘뮤지엄1’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고졸’함과 ‘소박’함으로 표현되는 한국 고미술품에 대한 인상이 바뀔 정도다.

    김재열 부관장(고미술)은 “‘리움’의 고미술품들은 다른 데서 경험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소박하다는 이미지만을 갖고 있던 한국 고미술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자체도 화제, 삼성미술관 ‘리움’

    14세기의 ‘아미타삼존도’.

    건물 자체도 화제, 삼성미술관 ‘리움’

    고려시대의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

    건물 자체도 화제, 삼성미술관 ‘리움’

    마크 로드코의 ‘무제’.



    건물 자체도 화제, 삼성미술관 ‘리움’

    장 누벨, 마리오 보타, 렘 쿨하스 (왼쪽부터)

    1년간 시험 운영 입장객 제한

    현대미술품 컬렉션은 대개 홍라희 관장과 삼성미술관 연구원들에 의해 이뤄졌는데, 개관전 컬렉션은 소문대로 현대 미국 미니멀리즘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면서 새로운 관심의 중심이 젊은 한국 작가들에게로 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홍라영 수석부관장(현대미술)은 “삼성 컬렉션은 로드코, 저드, 자코메티 같은 미니멀의 대가들이다. 앞으로도 해외미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구실을 계속하겠지만 앞으로 강한 에너지를 가진 젊은 작가들에게 공간을 내줄 것”이라고 밝혔다.

    ‘리움’ 개관으로 미술관 건축을 둘러싼 루머들은 일단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씨 가의 ‘개인 미술관’으로 ‘멤버십’으로 운영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이건희 회장이 곧 이사할 계획인 데다, 1년 동안의 시험 운영 기간 동안 입장객 수를 제한(하루 100명)한다는 미술관 측의 공식 발표로 해명이 되었다.

    그러나 진짜 소문은 이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많은 관람객이 몰릴 경우에 대비한 시뮬레이션도 필요하고, 파격적인 형태를 가진 ‘뮤지엄2’의 공간과 미술품의 관계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또 어떤 작가들이 내년의 기획전에 참여할 것인지 벌써 미술계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누가 이 미술관을 찾고, 즐거워할 것인가이다. ‘리움’이란 이름이 결국 ‘소수의, 소수를 위한 세계 최고의 럭셔리 미술관’이라는 소문의 근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삼성의 고민은 깊고도 커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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