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범 지음/ 예담 펴냄/ 212쪽/ 9000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가보면 우리말 어원이나 유래 등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온다. 특정 단어나 관용 표현의 정확한 어원이나 유래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고 답변도 줄을 잇고 있다.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에는 국어학자인 저자의 세심한 고찰이 녹아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어에서부터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비속어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의 유래와 어원을 유쾌·상쾌·통쾌하게 밝혀낸다.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면서도 뒤에서 은밀히 온갖 짓을 다 하는 것을 표현한다면? 질문에 합당한 답변으로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다’가 떠오른다. 그런데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는 것과 은밀히 온갖 짓을 다 하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손으로 호박씨를 까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물며 뒷구멍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속담이 의도하는 바는 겉으론 표가 나지 않게 은밀하게 일을 꾸미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고 을씨년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을씨년스럽다’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날씨나 분위기가 스산하고 쓸쓸한 의미로 사용된다. 을씨년은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긴 1905년 을사년(乙巳年)이다. 이른바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일제 손아귀에 들어간 해다. 민족의 슬픔과 허탈함과 울분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백성들은 희망을 잃고 을씨년스러운 그해 가을을 한숨으로 지냈을 것이다.
경제가 너무 어렵다. 극심한 내수 부진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주머니엔 먼지만 날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쓰고 나면 먹고 죽으려 해도 그럴 돈이 없다. 이런 경우를 ‘거덜이 났다’고 한다. 거덜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가마나 말을 관리하는 일을 하던 종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비록 낮은 신분이지만 지체 높은 사람들을 직접 모시다 보니 우월감에 사로잡혀 몸을 흔들며 우쭐거렸다. 몸을 몹시 흔들거리며 걷던 모습이 가장 큰 속성이었다. 재산이나 살림도 흔들리면 허물어진다. 또 거덜은 ‘하려던 일이 여지없이 결딴남’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잔뜩 기대하고 나갔던 미팅에서 제발 폭탄(아주 못생긴 사람)만 걸리지 말라고 기도하는 찰나, 미팅 주선자가 그 사람을 꼭 찍어 파트너로 정했을 때 요즘 10대는 ‘대략 낭패’라 표현한다. 계획된 일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기대에 어긋나 매우 딱하게 된 상태가 낭패인데, 대략 낭패라니? 낭패(狼狽)는 사전에서 ‘이리’를 지칭한다. 그러나 낭과 패는 전설의 동물이다. 뒷다리가 없는 낭(狼)과 앞다리가 없는 패(狽)는 공생해야 살 수 있다. 행여 마음이 맞지 않으면 꼼짝없이 굶어죽는다. 그래서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꼬이거나 실패로 돌아간 경우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인데…’라는 표현을 한다.
얼굴 가운데에 위치한 코는 관상이나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코는 남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코값을 하다(대장부답게 의젓하게 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남자다움의 상징이다. 코는 남성의 성기(性器)와 동일시한다. ‘큰코다치다’에서의 큰코는 바로 남성의 성기를 지칭한다. 남성의 가장 중요한 곳을 다쳤으니 큰 봉변이고 무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다. 뜻도 모르고 쓰는 우리말이지만 알고 쓸수록 재미있다. 저자는 우리말 어원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한편, 잘못된 우리말의 쓰임을 바로잡고 엉뚱한 가설이 정설로 둔갑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외래어 중독에 빠져 있는 당신, 감칠맛 나는 우리말 똥침 한 방 맞으시죠.
Tips
호박씨 당질대사에 크게 관여하며 비타민B 복합체가 많이 들어 있다. 특히 뇌와 깊은 관계가 있는 B1이 많다. B1 이 부족하면 정서불안, 초조, 긴장을 불러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기억력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