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난 뒤 키스로 화해하는 침팬지.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비슷한 성행위를 하는 동물로 꼽힌다.
그러나 200여종의 영장류 가운데 어떤 동물도 인간과 같은 성적 욕망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인간처럼 배란하고 수정하지도 않는다. 대개의 영장류는 배란기가 되면 암컷이 신호를 보내 수컷으로 하여금 교미할 준비를 하게 한다.
암컷의 신호로는 흔히 회음부 빛깔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엉덩이(생식기) 부분이 벌겋게 부풀어오른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고 하는 노래는 배란기가 된 원숭이 암컷의 엉덩이를 노래하는 셈이다.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이 바람을 많이 피울까
침팬지 암컷도 배란기가 되면 엉덩이 부분이 핑크빛으로 큼직한 귤만큼 부어올라 수컷들을 흥분시킨다. 암컷 한 마리를 두고 스무 마리나 되는 수컷들이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서로 암컷과 먼저 교미하려고 싸우는 일은 별로 없다. 암컷과 먼저 교미한다고 해서 자기 씨가 수정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자기 씨를 수정시킬 수 있는 행운은 정자 수가 가장 많고 왕성한 수컷에게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침팬지들은 보통 다른 유인원에 비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고환을 가지고 있다. 고릴라나 오랑우탄보다 정자 수가 열 배 정도 더 많다. 생식기의 크기도 고릴라보다 세 배나 더 크다.
그런데 고릴라나 오랑우탄은 침팬지와 사뭇 다른 짝짓기 형태를 취한다. 암컷보다 두 배나 큰 수컷 고릴라는 암컷 떼를 독점하면서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므로 암컷이 배란기가 되었다고 엉덩이가 부풀어오른 채 신호를 보낼 필요가 없다. 오랑우탄은 일대일로 짝을 지으므로 역시 암컷이 신호를 보낼 필요가 없다.
영장류 가운데 인간의 성행위와 가장 비슷한 교미를 하는 동물로는 피그미 침팬지가 있다. 콩고의 깊은 우림 지대에 사는 이 놀라운 동물의 성생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피그미 침팬지들도 다른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배란기가 되면 엉덩이 부분이 부풀어오르는데 부기가 잘 가라앉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거의 1년 내내 하루에도 몇 번이고 교미를 한다. 그러니까 피그미 침팬지들은 인간처럼 암컷의 배란기와 관계없이 교미를 하는 유일한 영장류인 셈이다.
피그미 침팬지 암컷은 유인원들 가운데 가장 커다란 음핵을 가지고 있고 배란기 동안 그 위용을 드러내놓고 있다. 음핵은 성적으로 흥분하면 두 배로 커지고 수컷이 사정을 하는 순간에는 전체가 충혈된다.
음핵이 얼마나 큰지 두 암컷이 자기 음핵으로 상대방의 음핵을 문질러주기도 하고 수컷의 그것인 양 상대방의 생식기에 찔러넣기도 한다. 수컷과 암컷은 교미하기 전에 15분가량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교미 중에도 서로 눈을 맞춘다. 인간처럼 마주보는 자세로 교미하는 것을 즐긴다. 이런 교미 자세는 다른 영장류와 확연히 구별된다.
인간도 성교와 배란의 상관관계를 끊은 지 오래다. 사실 남자든 여자든 임신이 가능한 시기는 정확하게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임신을 원한다면 피그미 침팬지처럼 지속적이고 격렬한 성교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임신과는 상관없이 성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도 ‘지속적이고 격렬한 성교’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런데 영장류의 공통점은 일단은 암컷이 먼저 수컷을 유혹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고릴라나 오랑우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암컷이 가장 강한 정자를 수정시키기 위해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한다.
하지만 인간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이러한 본능이 제어를 받는다. 그러나 결혼도 인간의 본능인 성적 욕망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는 못한다. 기회만 있으면 본능은 결혼이라는 허약한 방벽의 틈을 비집고 새어나가게 마련이다.
그럼 유부남이 외도를 많이 하는가, 유부녀가 많이 하는가.
여러 학자들이 여기에 대해 연구를 해왔지만 여성의 혼외정사에 관한 조사가 어려워 정확한 통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마빈 해리스의 견해에 따르면 ‘결혼한 남녀가 얼마나 자주 불륜을 저지르는가를 실제 통계로 잡은 연구’가 세계에 단 하나 있다. 그것은 토마스 그레고어가 메히나쿠 인디언들이 사는 브라질 중앙의 작은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다.
브라질의 한 통계에선 여자가 혼외정사 더 즐겨
그 마을에는 남자 어른 20명과 여자 어른 17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레고어가 머무는 동안 남자는 적어도 한 번 넘게 혼외정사를 한 반면, 여자는 14명이 엇비슷하게 연루되었다. 개인별로 횟수를 따져보면 여자는 5.1회, 남자는 4.4회로 사실상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혼외정사를 했다. 그리고 연루된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다면 여자 한 사람당 평균 6.3회였다. 정사 혐의가 없는 여자들은 노인과 병자, 외모가 여성답지 않은 유부녀들이었다.
마빈 해리스는 마조리 쇼스탁의 자료에서 산(San)족 여인 니사가 하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여자는 자기 남편과 자기 애인을 똑같이 원해야 한다. 그것이 좋은 때이다.’
말하자면 여자가 혼외정사를 즐기는 애인을 두었다고 하여 자기 남편과의 사랑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외도 본능을 제어 당하지만, 실제로는 상당수가 불륜을 저지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남자들은 여자들이 스스로 구현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남자들이 원하는 모습대로만 여자를 보아왔다.’
다른 여자들은 몰라도 자신의 마누라만큼은 현모양처로 정숙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남자들이 귀담아들을 말이다.
혼외정사를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이 한다는 통계에 비추어볼 때, 신약 복음서에서 간음한 인물로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자’가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 기록에 보면 여자의 이름도, 상대방 남자의 인적사항도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는 정황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사회법으로는 분명하지만 신학적으로는 난제에 속한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난제를 예수에게 떠넘겼다.
예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뿔 사이로 피하기’ 논법을 구사하였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돌로 치라’고 했으므로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사실 그 현장에서 그 여자를 돌로 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유일한 사람은 예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도 그 여자를 심판하지 않았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마라.’
죄 없는 예수도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간음을 했거나 그런 욕망을 품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로마서 2:1)
예수야말로 남자들이 수천 년 동안 자기들이 원하는 모습대로만 보아온 여자의 실상을 볼 줄 알았고 여자의 본능을 이해할 줄 알았다. 그 은혜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진리의 삶을 비로소 가능케 하는 법이다. 정(正)에 해당하는 ‘은혜’와 반(反)에 해당하는 ‘성적 욕망’이 ‘진리’라는 합(合)을 이루는 기묘한 변증법을 우리는 요한복음 8장에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