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외조부 양임득씨(작중인물 이우철)는 일제 시기에 이름 날린 장거리 육상선수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생과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1940년 올림픽이 무산되자 양씨는 육상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이주했다. 작품에 표현된 대로라면 ‘고독이라는 골(goal)’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작중인물 ‘유미리’는 굿판에서 무당을 통해 불러낸 할아버지의 혼에게 묻는다. “나는 알고 싶어요. 왜 할배가 달리기를 그만두었는지, 왜 자기 나라와 가족을 버리고 혼자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왜 파친코 점을 경영했는지, 왜 쉰여덟 살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또 혼자서 귀국했는지, 왜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죽어야 했는지….”
유씨는 이 작품에서도 ‘생명’ ‘풀하우스’ ‘타일’ ‘가족시네마’ 같은 작품에서 즐겨 그려왔던 ‘부서진 가족’을 다루고 있다. 다만 4대에 걸친 애증사, 한국의 일제 식민지와 분단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해 영역이 한층 넓혀진 점이 새롭다. 그는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유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가족 이야기를 빼놓고 인간을 그리는 것은 절대 무리라고 생각한다. 가령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 하늘이 보이고 또 구름도 함께 보인다. 새만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을 그리게 되면 그의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등을 함께 묘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인간을 묘사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래서 가족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가족은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와 국가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8월의 저편’이 국가의 이야기로 배경을 넓혀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밤을 도와 죽도록 쉬지 않고 달려야 했던 할아버지처럼 유미리는 작가로서 ‘영원히’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할아버지의 영혼은 이렇게 말해준다. ‘왜 쓰느냐고? 큐큐 파파 그것은 너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그는 같은 운명이다. 죽도록 달리고, 쓰고, 사랑해야 할 운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