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힘, 가족 사랑을 잇다](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09/10/200409100500097_1.jpg)
‘베른의 기적’은 스포츠 영화를 넘어서고 싶어하는 스포츠 영화다. 영화는 단순히 승패의 대결을 보여주는 대신, 월드컵과 축구가 전화(戰禍)의 잔해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를 쓰던 패전국 서독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이야기한다. 물론 영화는 ‘베른의 기적’을 그 뒤에 이어진 ‘라인의 기적’과 연결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아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영화의 진짜 주인공들은 축구팀에서 멀어져간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유일하게 의미 있는 캐릭터로 묘사된 축구 선수인 헬무트 란이 아니라, 그를 우상처럼 따르는 소년 마티아스의 가족이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11년 동안 소련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던 마티아스의 아버지가 돌아오지만, 완전한 가족이 되기를 원했던 그들의 희망과 달리 전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남아 있던 가족의 갈등은 커져만 간다. 거의 파국으로 흐르던 이들 가족을 연결해주는 것은 가족들 축구 사랑과 베른월드컵이다. 영화는 심지어 이런 가족이 품기 시작한 희망과 사랑이 축구 경기에서의 서독의 승리와 연결돼 있다는, 조금 낙천적인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
굉장히 낙천적이고 기분 좋은 이 비전은 ‘베른의 기적’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기적을 강조하는 수많은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피가 흐르는 드라마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대신 영화는 가족영화 장르의 익숙한 클리셰(판에 박은 듯한 문구나 진부한 표현)를 모아 드라마로 위장한 뒤 추억이라는 달콤한 당의정을 입혀 내놓는다. 사람들을 진력나게 기다리게 했다가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축구 경기 역시 스포츠 영화의 클리셰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 않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연출한 클리셰처럼 보이는 역전의 드라마가 사실은 실화였다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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