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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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7-01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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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착신아리’는 국내에 처음으로 개봉되는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다. 그의 극단적인 B급 정서에 열광하는 팬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운 선택이라고 해야겠는데, 신작 ‘착신아리’는 ‘링’과 ‘주온’의 전통을 잇는 모범적인 일본식 귀신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히 불평할 이유는 없다. 국내에 퍼져 있는 미이케 다카시의 팬들은 이미 부천영화제나 그 밖의 매체를 통해 그다운 영화들을 마스터했을 테니 신경 쓸 필요 없고, ‘착신아리’는 최근에 만들어진 그의 영화들 중 가장 대중적인 외피를 입고 있는 영화라 흥행도 어느 정도 안심할 만하기 때문이다.

    ‘링’과 ‘주온’에서 그랬던 것처럼 ‘착신아리’도 끊임없이 증식하고 전파되는, 굉장히 재수없는 귀신의 학살극이다. 영화에서 귀신의 증식을 돕는 매개자는 휴대전화. 이 점에 대해서는 ‘폰’이 우선권을 주장할 수도 있을 듯하다. 후반에 ‘여고괴담’의 클라이맥스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하나 나오기도 하니, 이제 한국 호러영화도 슬슬 해외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성장한 모양이다.

    스토리 전개는 예고편을 보지 않아도 예측 가능하다. 소개팅에 나온 대학생이 수수께끼의 음성 메시지를 받는다. 사흘 뒤의 미래에서 날아온 메시지는 휴대전화 주인이 죽기 직전에 남긴 (또는 남길) 마지막 목소리를 담고 있다. 사흘 뒤 휴대전화의 주인은 수상쩍은 상황에서 죽고, 희생자의 친구들도 한 명씩 비슷비슷한 내용의 음성 메시지를 받고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받은 주인공 유미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싸우면서 휴대전화의 미스터리를 풀어야 한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평범한 이야기지만, ‘착신아리’는 생각 외로 이 진부한 아이디어를 잘 살린 편이다. 학생들이 한 명씩 죽어가는 도입부는 안이하고 도식적이다. 하지만 일단 영화가 세 번째 희생자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속도와 힘을 얻는다. 저주 걸린 메시지를 받고 공포에 떠는 학생을 생방송에 밀어넣는 텔레비전 방송국의 이야기는 시청률을 살리기 위해선 인간 생명의 존엄성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매스컴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거의 찬란하기까지 한 폭력적 클라이맥스를 위한 교묘한 설정이기도 하다. 이 장면의 폭력적 창의성은 거의 다리오 아르젠토를 연상시킬 정도다.

    영화는 그 뒤로도 속도를 잃지 않고 전진한다. 미이케 다카시가 사용하는 도구들은 호러 관객들이라면 모두 질리게 봐왔던 것들이지만, 그래도 그는 노련하기 그지없는 테크닉으로 이 낡은 도구들을 다룬다.



    ‘링’ 순수주의자들은 후반부의 몇몇 공포도구에 불만을 품을지 모르겠고, 캐릭터가 관객들을 충분히 설득할 만큼 흡인력이 풍부하지도 않지만, 전체적으로 ‘착신아리’는 상당히 효과적인 호러영화다. 이 정도면 뻔한 기성품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미이케 다카시에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라고 기성품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고 이런 종류의 기성품 영화는 언제나 필요한 법이니까.

    Tips | 미이케 다카시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의 거장으로 꼽힌다. V시네마는 극장용 영화가 아닌, 비디오 배급을 위해 제작된 영화로 완성도나 정제미는 떨어지지만 연출자의 자유로운 개성이 살아 있어서 1990년대 일본 영화의 독특한 한 장르이자 자양분이 되었다. 미이케 다카시는 고등학생과 야쿠자의 황당무계한 대결을 다룬 ‘후도’로 마니아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가 박찬욱 감독 등과 함께 제작하는 다국적 감독 옴니버스 영화 ‘쓰리’도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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