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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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납치 공포에 떤다

10박11일 현지 리포트 … 반미감정 최고조 외국인 집중표적, 한국군 파병 반응도 ‘떨떠름’

  • 김재명·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입력2004-07-01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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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침공 15개월을 넘긴 이라크는 안정은커녕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드는가. 6월28일 점령자인 미국의 손에서 주권을 넘겨받은 지금에도 이라크 전역은 유혈이 그치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6월24일에는 저항세력이 일제히 대규모 공세를 벌여 하루 동안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겨났다. 그 뒤로도 희생자는 줄을 잇고 있다.

    6월의 이라크는 체감온도가 40℃를 넘는다. 답답한 날씨도 날씨려니와, 거리의 살벌한 분위기는 때로 숨을 막히게 만든다. 기자가 6월 이라크에 머문 10박11일 동안 어디선가 차량폭탄이나 총격전으로 희생자가 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6월30일을 앞뒤로 저항세력의 공세가 벌어질 것에 대비, 경찰서를 비롯한 이라크 관공서와 연합군 기지들은 초비상 상태다. 이라크 임시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조차 고려할 정도다.

    저항세력들은 “알라위 총리를 우두머리로 한 이라크 임시정부는 외국 점령군이 세운 꼭두각시 정권”이라 여긴다. 회교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와 반미노선을 함께하는 영향력 큰 바그다드의 회교성직자 카심 알 카비에게 “이제 곧 출범하는 이라크 임시정부가 이라크 민중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도 통치위나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지배를 합리화해주는 다리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미국의 정치적 도구다.”

    취재과정에서 느꼈지만 이라크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일찍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에 고대문명을 꽃피웠던 이라크다. 그런 이라크에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수치로 여긴다. 사담 후세인 독재체제가 무너진 것을 잘한 일로 여기는 사람들도, 그와 관계없이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의 주둔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올 들어 불거진 아부 그라이브 감옥 학대사건은 그런 반미감정에 불을 질렀다.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그런 정서를 맘껏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수감자 학대 사건 이후 사태 악화 … 저항세력 더 극성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일어난 수감자 학대사건에 대해 이라크 사람들은 필자가 바깥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필자는 바그다드 도착 첫날, 아부 그라이브 감옥 수감자 학대사건을 고발하는 이라크 예술인 22명의 거리 전시회에 가보았다. 그곳에서 만난 화가 카심 엘세프티는 “여성문제나 성(性)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인 아랍인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며 아부 그라이브 사건이 이라크 사회에 던진 충격의 깊이를 전했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이런 흉흉한 이라크 반미감정, 나아가 반외세 감정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외국인을 그들의 공격 과녁으로 삼는 듯하다. 필자가 이라크에 머물던 6월 중순 무렵, 그곳에 머물던 외국인들은 외신기자든 비즈니스맨이든 ‘혹시나 무장세력에 납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한 영국인 비즈니스맨은 “납치 공포증에 시달려 식욕을 잃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빨리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4월 바그다드가 함락된 뒤 들어온 외국인들이 제일 많이 타고 다니는 차가 6인승 흰색 4륜 구동차다. 그러나 올 봄 들어 외국인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이들 4륜 구동차에 집중되면서 새로운 경향이 생겨났다. 일부러 보통 이라크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일반 승용차, 그것도 벤츠 같은 고급차가 아닌 중고 자동차,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이미 단종된 기아자동차 콩코드 같은 것을 타고 다닌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도 외국인은 표가 나게 마련이다. 필자는 이라크 취재 중간에 통역을 바꾸었다. 대학 여교수 출신인 첫 통역자가 너무나 조심해서 필자에게 부담을 준 탓이었다. 이를테면 일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갈라치면, 그녀는 말렸다. “그냥 차에 남아 있어라. 내가 식당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다 주겠다. 가능한 한 무장세력의 눈에 띄지 않아야 타깃이 되지 않는다.”

    이틀쯤 지나 그녀에게 무장세력과 미군 사이의 전투가 벌어져온 팔루자와 나자프를 취재할 계획임을 밝히자, 얼굴을 찌푸렸다. “팔루자나 나자프 같은 곳엔 위험하니 가지 말자. 오후 늦게까지 여기저기 취재 다니는 것도 위험하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바그다드의 중심가에서만, 그것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간대인 오전에만 맴돌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잔 말인가? 끝내 그녀와 헤어졌다.

    교사 출신의 새로운 통역자 카짐도 조심을 하는 모습이었다. 느긋한 성격인 그에게 왜 그렇게 조심하느냐고 묻자 “이곳은 이라크다. 무슨 일이든 순식간에 생길 수 있다”고 짧게 대꾸한다. 돌이켜보니, 맞는 말이다. 누구라도 김선일씨가 당한 불행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예고된 비극이었다.

    물론 필자는 김씨를 죽인 이라크 저항단체가 이라크인들의 정서를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이라크 지식인들 가운데 온건한 사람들은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의 이라크 주둔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긴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당장 이라크 치안에 구멍이 생겨난다는 점에서다.

    “파병지는 왜 하필 친미성향의 쿠르드 지역인가”

    이라크에서 발행되는 최대 일간지 ‘아자만’ 신문사 부설 전략연구소 압둘 와하브 알 카사브 사무총장도 미군의 이라크 점령정책에 사뭇 비판적인 지식인이다. 그럼에도 미군 주둔이 적어도 당분간 필요하다고 여긴다. “후세인 정권의 부정적 이미지와 지금의 혼란은 우리 이라크 지식인들로 하여금 미 점령자들을 절대적으로 부인하지 못하게 하는 딜레마를 안겨줬다”고 말한다.

    바그다드 엘나하레인 대학 에마드 알 살렘 교수(정치경제학)도 “지금의 상황은 우리 지식인들로 하여금 현실주의자가 되도록 요구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주의’란 “외국군의 이라크 장기주둔엔 반대하되, 적어도 당분간은 치안 안정을 위해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론이 힘을 얻는 속에서도, 이라크 사람들에게 한국군 자이툰부대의 파병에 대해 물으면 대체로 탐탁지 않은 듯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물론 친미적 성향의 쿠르드족 출신 정치인만큼은 자이툰부대 파병을 반긴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자이툰부대가 주둔하기로 돼 있는 이라크 북부 아르빌 지역의 지배 정치세력은 ‘쿠르드 민주당(KDP)’이다. KDP 바그다드지부 부지부장인 파라이 알 하이다리만은 “미국은 이라크 정치발전에 필요한 존재며,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의 자이툰부대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1991년 걸프전쟁 뒤 미국이 설정한 ‘비행 금지구역’ 안에서 정치적 자치와 안정을 누려왔기에 미국에 비판적일 이유가 없다. 알 하이다리만은 “우리 쿠르드 사람들은 곧 있을 한국군 자이툰부대의 아르빌 주둔을 기대한다”고 전하면서 다음과 같은 토를 달았다. “그런데…, 인력보다는 물자를 많이 보내줬으면 좋겠다.” 1991년과 2003년, 12년 터울로 일어난 두 차례의 걸프전쟁 과정에서 실리를 챙기는 데 익숙해진 쿠르드족의 얼굴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라크 사람들은 멀리서 온 손님을 잘 대접하는 문화를 지녔다. 가난해도 아꼈던 음식물을 내놓으며 권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군 파병에 대해 물으면 예의상 대놓고 불편한 소리를 하는 것은 삼가는 표정들이다. 그럼에도 한 대학교수는 파병반대 의사를 뚜렷이 밝혔다. 전투부대가 아닌 의료와 공병부대가 온다고 대충 둘러댔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면박을 주었다. “그런 부대는 이미 나시리야에 와 있지 않나. 이번엔 전투 병력을 보낸다면서?”

    기왕에 한국에서 병력을 보내려면 전란의 피해를 거의 보지 않은 쿠르드 지역보다는 미군의 침공 당시 피해를 본 이라크 중남부 지역에, 그것도 순수한 ‘이라크 재건단’ 성격의 의료·공병부대만 보내는 게 보기에도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여러 사람한테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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