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몰아치는 최철한 7단의 인파이팅은 마치 전설의 복서 조 프레이저를 연상케 한다. 저돌적으로 파고들며 시종 난타전을 펼쳐 몇 차례 상대를 휘청거리게 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렇지만 이창호 9단의 맷집 또한 대단해 미세하게 따라붙은 장면. 종반으로 갈수록 이창호표 슈퍼컴의 연산처리 능력이 빛을 낼 것이고, 그렇다면 이번에도 ‘흑번필승’이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다들 생각하는 찰나, 흑2의 붙임수가 떨어졌다. A의 단점을 노리고자 한 수. 그러나 이 수가 이제까지 치열하게 전개되던 박빙의 접전을 단 한 방에 끝나게 만든, 허망한 패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흑1·3으로 두는 게 정수였다. 이랬으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좌상귀 흑대마의 사활과 연관하여 백3이 절대선수라는 점을 깜빡했을까. 위쪽과 연결이 확실해진 백은 거침없이 5에 끼웠고(이 수로 흑7에 이어 A의 단점을 노리는 활용은 사라졌다), 흑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6 이하로 버텼으나 백17에 이르자 중앙 흑대마가 밑동 잘린 거목처럼 한순간에 나가떨어졌다. 뭇매에도 잘 버티던 흑이 카운터블로 한 방에 녹아웃되는 순간이었다. 188수 끝, 백 불계승.